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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박물학자’의 경제 박물지

경제적 사유인 로버트 프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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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협업’을 중요시하는, ‘협업’에 능한 경제학자다. 번역된 그의 책 세 권 가운데 두 권은 2인 공동저서다. 『이코노믹 씽킹』은 그의 단독저서이나, 더 많은 공저자를 ‘거느리고’ 있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협업’을 중요시하는, ‘협업’에 능한 경제학자다. 번역된 그의 책 세 권 가운데 두 권은 2인 공동저서다. 『이코노믹 씽킹』(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7)은 그의 단독저서이나, 더 많은 공저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진행하는 경제학 개론의 과제물을 바탕으로 한다.

로버트 프랭크가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내준 ‘경제학 박물학자’라는 과제에 대한 학생들의 보고서 가운데 흥미로운 것들을 골라 해설을 붙였다. 그래도 로버트 프랭크는 거저먹지 않는다. 질문 옆에 학생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몇몇 질문은 경제학자의 저서나 논문에서 가져왔다. 이름이 없는 것은 그의 ‘작품’이다. 문체를 통일하여 가독성을 높일 목적으로 학생들의 글을 전부 다시 다듬고 고치긴 했다.

‘경제학 박물학자’ 과제의 요구사항은 이렇다. “일상에서 개인적으로 목격한 특정 사건이나 행동양식 등과 관련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제시하되, 경제학 개론 수업에서 논의된 바 있는 경제 원리를 이용하라.” 로버트 프랭크는 과제물 작성요령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단어 수는 500단어를 넘기지 말 것. 선배들의 탁월한 보고서는 그보다 더 짧은 경우가 많았음을 상기할 것. 복잡한 전문용어로 치장하려고 하지 말 것. 경제학 강의라고는 들어 본 적도 없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에게 들려준다고 상상하고 작성할 것. 최고의 보고서는 그런 사람들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보고서에는 대수학이나 그래프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 것.”

또한, ‘경제학 박물학자’ 과제는 “인간 두뇌의 특수성은 정보를 스토리 형태로 흡수하는 데 있다”는 스토리 학습 이론의 핵심적인 주장에 딱 들어맞는다. ‘경제학 박물학자’ 과제의 보고서 제목은 질문 형태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제시하게 하는 것은 세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다.

“첫째,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려면 학생들은 많은 수의 예비 질문들을 고려해봐야 한다. 이 자체가 유용한 연습이다. 둘째, 학생들이 과제에 더 많은 재미를 느끼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게 된다. 셋째, 학생들이 자신의 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가능성이 높다. 강의실 밖에서 사용하지 않는 개념은 머릿속에서 곧 사라지는 법이다. 반면 한번 사용해본 개념은 영원히 자기 것이 된다.”

프롤로그에서 로버트 프랭크는 “모든 경제학 개념의 모체는 비용편익(Cost-Benefit)의 원리”라고 ‘전제’한다. “비용편익의 원리에 따르면 ‘어떤 행위든 그에 따르는 추가비용보다 그로부터 얻는 편익이 큰 경우에만 합리화된다.’ 이 얼마나 간단한 원리인가? 그럼에도 그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다.”

이 책에는 핵심 경제원리에 근거를 둔 특정 사건이나 행동양식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이 가득하다. “은퇴하고 자녀들을 출가시킨 이후에 더 큰 집구입하는 까닭”은 이혼의 증가와 관련 있다.

“과거보다 이혼이나 재혼이 훨씬 늘어난 요즘 의붓부모의 부모까지 포함하면 많은 아이들이 여섯 명 이상의 조부모를 갖게 된다. 즉 손자들을 기다리는 조부모는 늘었지만, 손자들의 방문 횟수는 늘지 않았다. 따라서 조부모들은 손자들이 방문하기 편리한 위치에 넓은 집을 삼으로써 손자들이 더욱 자주 방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식당에서 팁을 주는 것은 웨이터의 더 나은 서비스를 장려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식당 주인은 세심하고 친절한 웨이터의 급료를 올려줄 것이고, 더 높은 보수를 바라는 웨이터는 친절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서비스의 질을 직접 살피기 어려웠다. “따라서 음식값을 조금 내리고 손님들에게 서비스가 만족스럽다면 웨이터에게 팁을 주라고 하는 편이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고등학교졸업생 대표를 뽑지 않는 이유는?” 시험점수로 학생들을 줄 세우느라 바쁜 우리 교육관계자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결국 학교 측은 졸업생 대표가 되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어 있으며, 내신성적을 높이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희생하는 학생 역시 지나치게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 측은 졸업생 대표를 선정하지 않음으로써 소모적인 성적 경쟁이 사라지길 희망하고 있다.”

프로 데뷔 첫해 맹활약을 펼친 야구선수가 이듬해 성적이 떨어지는 ‘2년생 징크스’는 통계학자들이 말하는 ‘평균으로의 회귀’ 현상의 한 예다. 로버트 프랭크는 2002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거머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3루수 에릭 힌스키(Eric Hinske)를 2년차에 죽을 쑨 사례로 꼽는다.

타율만 보더라도 에릭 힌스키는 0.279(2002)에서 0.243(2003)과 0.248(2004)로 떨어진다. 힌스키는 『최훈의 MLB 카툰』(미토스북스, 2005)에도 등장한다. 2004년 시즌 타율은 그저 그랬지만 3루수 필딩율은 리그 1위를 기록한다. 『최훈의 MLB 카툰』에서 힌스키의 2004년 타율은 『이코노믹 씽킹』보다 2리가 낮은 0.246다.

어쨌거나 힌스키가 감독과 나눈 대화 한마디.

힌스키 - “감독님! 저 수비에서 1등 먹었어요~!”
감독 - “하, 하. 근데 수비 못하던 때의 네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야구팀 감독들이 유니폼을 입는 까닭은 프로스포츠 감독들의 복장에 대한 선례가 없어서다. 야구 감독들은 굳이 선수와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투수 교체와 심판 판정에 항의하기 위해 빈번하게 경기장 안을 드나드는 것은 또 다른 이유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어달라는 저자의 주문에 부응할 순서다. “왜 택시 기사들은 비 오는 날에는 일찍 일을 마치는 것일까?”에서 택시 기사들이 비가 오면 영업시간을 줄이는 이유는 “택시 기사들은 날마다 정해진 목표액을 채울 때까지만 일을 하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택시 승객이 많아져 더 빨리 목표액을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에는 오랫동안 일을 할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택시 기사들은 일찍 일을 끝내버린다”고 안타까워(?)한다. “특정기간 동안(예를 들면, 한 달) 최단 시간 내에(즉 택시 운행 시간을 최소로 줄이고) 목표액에 이르는 것이 택시 기사들의 목표라면 비 오는 날에는 가능하면 운행 시간을 늘리고 맑은 날에 더 쉬워야 할” 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간과하는 측면이 하나 있다. 바로 안전이다. 비 오는 날에는 교통사고가 나기 쉽다. 그런 날, 운행시간을 늘리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자살행위가 될 수도 있다. 경미한 접촉사고도 부담스럽다. 비용이 편익보다 커지는 셈이다. 따라서 비 오는 날엔 목표액을 채우자마자 택시 운행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 아닌가 싶다.

한편, 판매자가 “구매자들에게 할인을 받으려면 장애물을 뛰어넘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 들이는 노력만큼의 낭비를 수반하다”는 로버트 프랭크의 지적은 유의미하다. 이 책에 실린 과제들은 이해타산을 따지거나 지나치게 이익만을 추구하려 한다는 혐의가 없지 않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로버트 프랭크는 살짝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사실 부부관계를 계산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또 상담가들이 부부관계를 비용편익의 측면에서 생각하도록 부추기면 그 관계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도록 진화해온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로버트 프랭크가 벤 버냉키와 공저한 『버냉키?프랭크 경제학, 3판』(곽노선?왕규호 옮김, 한국맥그로힐, 2006)은 읽히는 ‘경제학 원론’이다. 한국어판이 앨런 그린스펀으로부터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직을 이어받은 버냉키를 앞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로버트 프랭크의 기여와 역할을 무시해선 곤란하다. 적어도 책이 읽히는 힘과 관련해선 그렇다.

“벤 버냉키(Ben Bernanke)와 내가 점자 자판이 부착된 현금인출기에 대한 빌 타이요아의 가설을 우리의 『경제학』에 소개하고 나서 얼마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이코노믹 씽킹』, 31쪽)라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경제학』은 ‘경제학 박물학자’의 ‘감식안’을 도입한다. 『경제학』에선 『이코노믹 씽킹』의 원제목이기도 한 ‘경제학 박물학자(Economic Naturalist)’를 “경제적 사유인”으로 옮겼다.

“본질적으로 경제학은 세상에 대해서 사고하는 방법”이며, “경제에 대해서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예측하기 힘든 대규모의 변화가 계속해서 있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프랭크와 버냉키가 이 책을 펴낸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잡다하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훨씬 더 많이 배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프랭크와 버냉키 『경제학』의 기본 전제는 “몇 가지의 핵심 원리들만 이해할 수 있으면 경제학의 대부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으므로, 범위를 좁혀 그러한 핵심 원리들에 대하여 반복하여 초점을 맞춘다면 학생들이 실제로 한 학기 만에도 경제학을 마스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경제학 원론 교과서 집필 전략은 많은 아이디어를 피상적인 수준에서 다루기보다는, 소수의 핵심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각기 다른 여러 상황에서 각 핵심 아이디어를 반복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강조하는 경제학의 핵심 원리로는 희소성의 원리, 비용-편익의 원리, 유인의 원리, 비교우위의 원리, 기회비용 체증의 원리, 균형의 원리, 효율성의 원리 등이다. 이 가운데 세 가지 핵심 원리의 내용은 이렇다.

희소성의 원리(공짜 점심은 없다는 원리):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는 무한하지만, 주어진 자원은 유한하다. 따라서 하나를 많이 가지면, 다른 것을 적게 가져야 한다.

비용-편익의 원리: 개인(기업 혹은 사회)은, 특정 행동을 선택했을 때 발생하는 추가적인 편익이 추가적인 비용보다 작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그 행동을 선택하여야 한다.

유인의 원리: 개인(기업 혹은 사회)은, 한 행동의 편익이 증가하면 그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증가하고, 반면에 한 행동의 비용이 증가하면 그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감소한다. 요약하면, 유인이 중요하다.

1955년 폰티액을 자신의 첫 번째 승용차로 구입한 “젊은 경제적 사유인”과 네팔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젊은 경제적 사유인”은 동일인물이다. 바로 로버트 프랭크다(『이코노믹 씽킹』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아래의 서술은 그의 경험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여러분 각자 해보시길.

“네팔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모든 일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네팔 사람들은 가난한 것이다.”

읽을 만한 절판도서의 재출간이 꾸준하다. 그런데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의 『승자독식사회』(권영경?김양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는 제임스 A.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이종인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8)와는 다르게 ‘옮긴이의 말’에서 재출간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책을 새로 펴낸 출판사에서 웬만한 독자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판단했을까? 하긴 『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권영경?김양미 옮김, CM비지니스, 1997)는 ‘재야’ 스테디셀러였다. 내 주위만 해도 두세 명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리거나 복사해서 읽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독자에게서 내가 갖고 있는 책을 팔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는 어느 매체에 이 책을 언급한 일이 있는데, 그 독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책이고, 번역자가 같아도 『승자독식사회』『이긴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의 번역 문장은 많이 다르다. 2008년 판의 번역과 본문 판면이 세련되게 정련됐다면, 1997년 판은 투박하다. 나는 세련된 문장보다 투박한 문장에 더 호감이 간다. 세련된 문장과 깔끔한 편집은 어딘지 모르게 이 책이 지닌 ‘야성(野性)’을 눅이는 듯해서다.

『승자독식사회』의 원제목(The Winner-Take-All Society)은 스웨덴 출신 혼성 4인조 그룹 ‘아바’의 히트 곡을 떠올린다. 미국의 어느 프로스포츠 결승전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에 울려 퍼진 ‘아바’의 <The Winner Takes It All>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약간 슬프게 느껴진, 다소 비감한 멜로디는 승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바’의 히트넘버가 울려 퍼진 곳은 1993년, 월드시리즈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구장 스카이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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