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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릿세로 받은 딸기 한 접시

나는 병원 앞 노점상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자릿세를 뜯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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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은 한 달로 치면 2, 3만 원꼴이고 1년이면 거의 30만 원쯤 되는 적지 않은 돈이다. 내가 영세민을 갈취하는 조폭도 아닌데 이렇게 가외수입 아닌 수입으로 자릿세를 뜯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나는 병원 앞 노점상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자릿세를 뜯고 있다. 그 돈은 한 달로 치면 2, 3만 원꼴이고 1년이면 거의 30만 원쯤 되는 적지 않은 돈이다. 내가 영세민을 갈취하는 조폭도 아닌데 이렇게 가외수입 아닌 수입으로 자릿세를 뜯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5년 전의 일이다. 친구들과 낙향하여 안동에서 병원을 개원하기 전에 적당한 입지를 찾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에 태화동 구도심에 있는 빈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지방도시들이 대개 그렇듯이 안동도 새로 구획된 옥동 쪽은 사람이 많아지는 반면 태화동과 같은 구도심은 점점 슬럼화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제법 큰 건물을 병원 입지로 고를 수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병원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빈 건물이었던 탓에 건물 입구에서 과일을 파시던 분이 병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생활 터전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중 일이야 그렇다 치고 우선 공사를 위해 인부들이 들락거리고 장비들이 출입하면서 상인들은 저절로 건물 모퉁이로 밀려났다.

어느 날 공사가 한창인 건물에 들어서는데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체구가 자그마한 아저씨 한 분이 내 옷깃을 붙들었다.

“원장님이니껴? 저 미안치만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

끝말을 얼버무리며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얼굴에는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원장님, 보시다시피 지가 몸이 안 좋아서 일을 못 하니더. 지가 할 수 있는 일이래야 자전거에 과일상자나 실어 나르는 정도라서 노가다도 못 나가니더. 정말로 입이 안 떨어지지만 원장님요……, 우리가 절대로 방해를 안 할 테니 저 병원 구석에서 이 장사를 조금만 하면 안 되겠니껴?”

그때 아저씨의 표정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 경우는 내가 하라 말라 요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살리는 곳에서 사람을 죽어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저씨네 과일노점은 우리 병원 모서리 처마 밑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래봐야 벌이는 신통치 않았지만 그때부터 아저씨 내외의 상납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봄이면 딸기가, 여름이면 수박이, 가을이면 천도복숭아가 한 꾸러미씩 내 책상 옆에 놓였다. 처음에는 몇 번 돌려드리려고도 했고 아예 과일 값을 지불하려고도 해보았지만 두 분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지기로 했다. 그게 그분들에게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직원들이 사는 척 위장해서 과일을 조금씩 사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 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겨울이면 우의처럼 생긴 비닐을 두 분이 같이 뒤집어쓴 채 칼바람을 맞았고, 여름에는 30도를 넘는 무더위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장사를 거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난 5년간 매일 아침 출근길에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인사를 하시던 두 분이 보이지 않더니, 그것이 일주일, 한 달로 길어졌다. 그제야 이리저리 수소문을 한 끝에 들은 소식은 뜻밖이었다. 아저씨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버리셨다는 것이다.

골이 깊게 파인 순박한 얼굴과 누런 이빨을 드러내던 사람 좋은 웃음 뒤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고민과 아픔이 감춰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집은 어디인지, 아저씨는 왜 마음의 병을 얻었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한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아주머니가 응급실 모퉁이에 좌판을 차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예전처럼 허리를 90도로 굽히면서 인사를 하셨다.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마주 인사를 나누고 병원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직원들이 빨간 딸기 한 접시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옆에 아주머니가 원장님 드시랍니다.”

아주머니의 상납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콧등이 찡했다. 그날 비록 늦었지만 퇴근길에 아주머니에게 드리려고 작은 부조 봉투를 만들었지만, 결국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지나쳐버렸다.

이 부조 봉투가 전해지면 아주머니는 다시 딸기 서너 상자쯤 상납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박경철 저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시골의사 박경철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이후 2년 만에 내놓는 에세이집. 작가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따로 쓴 몇 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작가 박경철은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그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다양한 일 중에서 하나만 택하라면 당연히 외과의사를 하겠다고 할 만큼 ‘의사’로서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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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후 2년 만에 내놓는 에세이집. 작가가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따로 쓴 몇 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작가 박경철은 두 편의 에세이에 이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경제방송을 진행하는 방송인, 증권사 신입사원에게 투자를 가르치는 애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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