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호수로 나아갔고 아침마다 꼬마 어부를 만났다. 냐웅슈웨 마을에서 배를 타고 좁은 수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갑자기 시야가 탁 틔면서 산과 하늘이 한데 물 안쪽으로 안겨버리는 거대한 인레 호수가 나타났고 그 물길을 따라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아이는 호수 한가운데서 여지없이 노를 저으며 나그네를 기다렸다.
호수는 척박하거나 스산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언제나 물고기와 물풀과 아름다운 수상의 마을들과 호수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여행자들로 넘쳐나서 호수 위 홀로 노를 젓는 아이가 그다지 외롭거나 적막해 보일 리는 없었다. 수면 위에 작은 몸뚱이를 반사하며 부서지는 햇살을 등에 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다운 앙증맞음이나 귀여움보다 어딘지 황홀하고 거룩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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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다녀온 사람들을 붙잡고 물으면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가장 아름다웠고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당연히 인레 호수지요.”
세상의 많은 물과 호수를 보아왔지만 이토록 사람에게 많이 베풀고 또 베푸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사람과 가까이 친구 되어 살아가는 호수를 달리 기억해낼 수가 없다. 인레 호수는 거기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 삶의 공장이요 학교이자 놀이터다. 또한 친구이자 애인이자 선생님이자 누님, 그리고 어머니라고 말한다면 과언이 될 것인가?
호수에는 수많은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호수의 남쪽에는 인뗑이나 남판이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마을들에서 번갈아가며 5일장이 서곤 한다. 샨족이나 인타족 등 호수 인근 소수민족이 만들어내는 장터의 풍경은 퍽 흥미롭고 즐겁다.
호수의 또 다른 명물은 물 위에 떠 있는 토마토 농장이다. 어디나 수심이 2~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호수 밑바닥의 물풀 더미를 쌓아 호수 위에 밭을 만든 것이다. 직접 그 밭 위로 올라서는 일 없이 배를 바짝 대어 토마토를 관리하고 수확하며 밭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물풀을 쌓아 올린다. 그러고는 수확할 때가 되면 한 배 가득 탐스러운 토마토 상자를 싣고 냐웅슈웨나 인근 마을로 가서 팔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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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 형성된 마을들에는 오로지 배를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한 수상가옥들이 늘비하다. 고물과 이물이 서로 양쪽으로 달아나려는 듯 길쭉하게 생긴 배들이 이 가옥들과 수로를 따라 마을을 오간다. 이따금 배가 들르는 곳은 원시적인 형태로 풀무질을 하여 은을 세공하는 공장, 종이를 만드는 공장, 담배를 만드는 공장, 칼을 만드는 공장 등인데 가내수공업식의 볼거리로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이들 수상가옥의 삶을 체험한 여행자들이 마침내 허기를 느낀다면 역시 호수 위에 떠 있는 풍광 좋은 식당에 앉아 호수의 물고기로 시장기를 달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진귀하고 아름다운 풍광에도 불구하고, 인레 호수의 가장 멋진 풍경은 호수와 함께 호수의 어려운 조건들을 이겨내면서 호수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며 살아온 인타족의 독특한 고기잡이 풍경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위태위태하게 작은 배의 고물 위에 서서 사람의 몸뚱이보다 조금 큰 대나무 통발을 호수에 담갔다가 꺼내며 고기를 잡는 것인데, 특이하게도 한쪽 발로 얕뫀 호수에 담근 노를 밀치며 젓고 다른 손발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다.
아침저녁으로 명암이 강렬한 햇살을 받을 때의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저 밀레의 <만종>을 호수에 옮겨놓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언젠가 보았던 미얀마 소개 책자의 표지를 장식했던 사진도 바로 인레의 고기잡이 풍경이었다.
그런데 고기 잡는 인타족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꼬마 어부의 노 젓는 모습이다. 아침마다 호수에 나간 사흘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이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아이는 고기를 낚기 위해 호수에 떠 있다기보다 드넓은 호수가 시작되는 초입에서 호기심에 찬 여행자와 관광객의 시선과 관심을 낚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듯싶었다.
이윽고 아이의 배가 힘차게 노를 저어 나그네의 배 쪽으로 다가왔다. 나그네의 배는 이미 한 인타족 어부의 배에 바짝 다가가 그의 능숙한 고기잡이 솜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어부는 고요하고 근엄했으며 밀짚모자를 눌러쓴 그늘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부의 모습은 예언자이거나 선지자의 모습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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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솜씨로 발을 이용해 노를 젓는 아이는 이내 나그네에게 다가왔고 아이의 뒤편에는 동생인 듯 보이는 더욱 어린 꼬마가 연꽃처럼 활짝 핀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었다. 노 젓는 꼬마 어부는 자신이 잡은 줄무늬 물고기를 나그네에게 들어 보였다. 펄펄 뛰는 놈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대나무 통발로 고기 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은근히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뭔가를 구하는 빈손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때 이 모습을 죽 지켜보았던 것인지, 예의 선지자의 톤 낮은 호통이 등 너머로 들려왔다. 나그네 역시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그늘진 얼굴에서 아이를 나무라는 표정이 읽혔다. 아이는 이내 손을 거두었다. 아마도 잘 아는 동네 어른이거나 먼 친척 어른이었을지 모른다.
머쓱해진 아이는 천천히 배를 저어 호수 쪽으로 멀어졌다. 선지자의 얼굴은 이내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알아들을 수 없었던 선지자의 일갈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던 걸까?
이튿날도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뒤에 있던 어린 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나그네를 향해 내밀던 검게 그을린 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검게 탄 얼굴만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배가 떠나갈 때 멀리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의 모습. 그를 비추고 있는 호수의 수면이 살랑살랑 가볍게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아침마다 호수에 나가 그 아침마다 마주치곤 했던 호수의 꼬마 어부. 호수의 선지자는 호수의 삶이 비굴하지 않고 늘 당당하기를 아이에게 일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대로 이어져온 종족의 고기잡이가 한낱 여행자들의 놀림거리로 전락하지 않게 되기를 타일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로 인타족 어부들의 삶이 섬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