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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인가

여행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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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이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삶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터닝 포인트를 받아들이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난관을 이겨낼 능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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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이다. 그 당시 잘나가던 증권회사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생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나 직장 그만두어야겠다.”
“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직장생활이 다 그런 것 아냐?”
“그래도 난 이 일이 싫어.”

내가 봐도 그 직장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

“음, 어쩌면 지금이 네 인생의 터닝 포인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둬.”

결국 그 친구는 직장을 그만둔 후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몇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몇 차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다. 현재의 삶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타의에 의해서든 자의에 의해서든 전환 시점이 생기는데 그 순간이 왔을 때에는 과감하게 결정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주로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시점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20대 중반의 한 여성은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실연을 당한 후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어 떠났다고 했다. 번듯한 직장에 다녔지만 상처가 너무 컸던 그녀는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번 돈을 다 털어서 호주로 갔다. 염세적인 도피는 아니었다. 1년간 어학연수라는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이것저것 챙긴 짐이 엄청나게 많았으며 스물다섯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안고 잤던 테디 베어 인형을 갖고 가기도 했다. 온갖 한국 음식들은 물론 참기름 1킬로그램짜리 통까지 가지고 갈 정도였다. 완벽주의자인 그녀는 호주에서 여행을 할 때도 쓰지 않을 물건들을 한 트렁크씩 들고 다녀서 여행보다도 짐을 어디다 맡길까가 늘 고민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열심히 공부했고 거기서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다. 한국이 미국 옆에 있는 줄 아는 일본인 룸메이트로부터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곧 마음을 터놓는 좋은 친구가 되었고 그런 가운데 과거를 서서히 잊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시드니 시내에 있는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가는 배에서 파란 바다를 올려다보며 ‘내가 선택한 길에 서 있다’는 만족감에 강렬한 기쁨을 느꼈다. 통장 잔고는 비어가고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지만 그런 자신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녀는 본다이 비치에서 혼자 배낭을 베고 누워 해변을 바라보며 한없는 자유를 느꼈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1년 동안의 호주 생활을 마친 후 돌아온 그녀는 변했다. 모든 게 자기중심적이었고 물건 욕심이 많았으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던 그녀는 짐을 많이 챙기는 습관부터 버렸다. 물건 욕심이 많아지면 여행도 삶도 피곤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늙어서는 트렁크 두 개에 들어갈 정도의 간소한 물건만 두고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머니가 해주는 밥 한 끼, 반찬 하나도 맛있게 먹었고 작은 일에도 감사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딛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호주에 있다 돌아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는 갈등과 고민을 겪었고 앞으로의 진로 문제, 집안 문제 등으로 겪는 힘겨움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책임지며 혼자 살아본 경험으로 자신의 세계를 찾은 그녀는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살면서 자신의 뜻대로 ‘저지른’ 경험이 있기에 앞날이 두렵지 않다. 삶이란 그렇게 부딪히며 헤쳐나가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가는 궤도 안에서 살 때는 그 길을 벗어나면 큰일 날 줄 알았지만, 그곳을 벗어나 다른 세상에서 자기 식대로 살아보니 세상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길이 있으며 대로가 아닌 작은 길, 휘어진 길 안에서도 즐거운 삶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렇게 살아가다 언젠가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한 때가 오면 또 ‘저지를’ 각오를 하고 있다. 인생이란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운동권 출신으로 감옥에도 가보았다는 어떤 남자는 인도 여행에서 삶의 전환점을 찾았다. 인도를 유랑하다가 반려자를 만났고, 지금은 그 반려자와 함께 여러 권의 여행 가이드북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넘어야 할 산들이 계속 있겠지만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젊은 시절 궤도를 벗어난 삶을 살아본 데에서 오는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30대 중반이나 40대 초반에 터닝 포인트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직장에 잘 다니던 이들이 부모의 반대와 걱정을 뒤로하고 유럽으로, 동남아로 떠날 때 그 고민은 얼마나 심했을까?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만족스럽게 살고 있고 즐겁게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격이 잘 안 맞는 룸메이트를 만나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좋은 현지인들을 만나 아름다운 인연도 맺으면서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이들이 수없이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직장 잘 얻어서 안정되게 살아가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단순한 삶의 유지가 아니라 진정한 내 인생, 그리고 기쁜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떠났고 몇 차례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30대 초반에는 무작정 떠나 돌아다니는 것에 인생을 걸었고 40대 초반에는 글쓰기에 온 힘을 다 쏟았다. 그리고 다시 터닝 포인트가 다가오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치고 나갈까 궁리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저지르는 것이 인생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여행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 여행이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삶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터닝 포인트를 받아들이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난관을 이겨낼 능력을 갖게 된다. 만약 그런 순간이 운명처럼 다가왔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계산은 필요하지만, 열정이 앞서야 한다. 그 열정으로 밀고 나간다면 터닝 포인트는 자신의 삶을 보람차게 만드는 귀한 순간이 된다.

그런 순간들이 없다면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당신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인가?

* 저자 이지상의 블로그 - 이지상의 여행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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