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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닮은 아이들

석가모니불이든 아미타불이든 관음보살이든 그 모든 부처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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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이 불상들의 형상을 상상하고 만들어낸 조각가나 화가들이 가장 신성하고 순결하며 아름다운 불타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겠는가?

신은 내가 그를 바라보는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부여나 공주, 호남에 가게 되면 계백 장군이나 서동 왕자의 얼굴을 찾아 헤매게 된다. 경주 같은 영남 쪽으로 여행을 가면 김유신이나 선덕여왕의 얼굴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북부 인도인들의 얼굴에서 샤키아국 왕자였던 젊은 싯다르타를 찾아보려 노력했고, 세상에서 만난 이스라엘 여행자들에게서 혹시 나사렛 동네의 가난한 목수 아들 예수의 얼굴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위대했던 분들의 얼굴을 알현할 수 없는 바에야 그분들이 태어나고 활동하셨다는 동네의 사람들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편이 그나마 타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 방법밖에는 달리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아는 한, 기독 신앙과 불교 모두 그 종교가 창시되고 부흥하기 시작한 얼마 동안은 그들이 받드는 성인의 얼굴과 형상을 만드는 데 상당한 고심과 갈등이 있었다. 도대체 그 위대한 성인들의 얼굴을 어떻게 한낱 조악한 붓과 물감 따위로 그려낼 수 있으며 그 앞에 사람들이 무릎을 꿇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종교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불어난 신도와 대중을 결집하기 위해 각각의 종교는 차츰 절대적인 형상이나 상징이 필요했을 것이다. 손에 잡히는 이미지 없이 오로지 관념과 철학으로 신을 숭배하기란 어려운 노릇이었으리라. 마침내 교회와 성당에 예수의 프레스코화와 모자이크가 양식화되기 시작했고, 스투파(탑) 형식으로부터 시작된 불교미술에서도 차츰 석가모니의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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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도 많은 화가와 조각가는 혹시 자신이 성자의 얼굴을 잘못 그리는 불경한 죄를 짓게 될까 봐 고민했으며, 조금 과감한 화가들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예수가 등장하는 성화의 민중 속에 자신의 모습을 슬쩍 그려 넣기도 했고, 조금 더 짓궂은 이들은 그분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과감히 그려 넣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은 20세기 이후 예수가 등장하는 영화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처음엔 예수의 얼굴을 분간할 수 없게 원경으로 처리하다가 차츰 예수를 닮았다고 생각되는 배우를 예수의 배역으로 과감히 쓰게 되었다.

불교 쪽에서 보자면 서쪽(헬레니즘)으로부터 전래된 아름답고 멋스러운 유행과 형식을 따라 석가모니의 얼굴을 형상화하기 시작했으며 몇 가지 약속과 규칙을 만들어가면서 이웃나라로 차츰 그 양식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남방불교인 인도차이나와 인도, 네팔 쪽의 불상이 다르고, 북방불교인 중국, 한국, 일본의 불상이 다르다. 남방불교 쪽에는 와불과 거대한 불상 등이 흔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살진 몸을 한 좌상의 불상이 일반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얀마에서 가장 성스럽고 위대한 유적들이 남아 있는 ‘탑들의 도시’ 바간은 메마른 들판에 무수한 스투파, 파고다와 그 안에 봉안된 갖가지 불상으로 인해 황홀한 불국토를 이룬다. 이 유적들 역시 유네스코가 그냥 지나칠 리 없어서 도시 전체가 인류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그 규모나 수, 의의로 본다면 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며 그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유적지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고 훨씬 덜 조명받고 있는 숨겨진 유적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불교국가라고 하는 미얀마는 스리랑카와 흡사한 남방불교를 받아들였는데 바간은 그러한 불교왕국 미얀마에서 최초의 통일왕국을 이룬 도시다. 예나 지금이나 신심이 깊은 미얀마 사람들은 점차 사막화되어가는 이 불모의 땅에 수십 수백 개의 사원을 지어 위대한 왕국에의 꿈을 갈망하고 대중을 결집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바간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후미진 시골 마을의 인상을 짙게 풍긴다. 가없는 지평선에 늘어선 유적들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관광객을 상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밥벌이 이상은 아니다. 그 유적을 답파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 역시 말이 끄는 달구지이거나 페달을 밟아 끌게 되어 있는 인력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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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원에 들어서거나 바간의 한적한 동리를 지나칠 때마다 나그네는 나뭇잎처럼 빛나고 나무 그늘처럼 상큼한 바간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더러는 심하게 호객을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싱그러운 얼굴을 만나다가 사찰 안으로 들어서면 나그네는 종종 흠칫 놀라곤 했다. 사찰 안에 사방팔방으로 모셔진 부처의 얼굴에서 어쩐지 좀 전에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금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석가모니불이든 아미타불이든 관음보살이든 그 모든 부처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이 깃들어 있다. 그렇지, 이 불상들의 형상을 상상하고 만들어낸 조각가나 화가들이 가장 신성하고 순결하며 아름다운 불타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순수를 지닌 그들, 아이들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다시 경주에 가게 되는 날, 경주 남산 기슭의 무수한 부처님 얼굴 속에서 티 없이 맑았던 신라의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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