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콧물에 비벼 먹는 국수의 맛은 어떨까?

툭바 가락과 함께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자신의 콧물을 역시 입 안에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콧물에 비벼 먹는 국수의 맛이라. 그거라면 나그네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맛이다.

확대경으로 보면 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해요.
자, 갈증을 참겠소? 확대경을 깨뜨려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간덴甘丹 사원에 거대한 탱화가 걸리는 큰 행사가 이튿날 열릴 거라고 라싸의 여행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새벽 일찍 간덴 사원으로 향하는 버스가 사원 부근에 있을 거라며, 라싸의 여행자들은 모두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밤마다 가던 바에 들러 맥주나 한잔 기울이려던 나그네도 하는 수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버스를 타고 라싸에서 40여 킬로미터 동쪽에 있다는 간덴 사원 입구에 다다르자, 일찍이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행렬 때문에 극심한 교통정체가 빚어지고 있다. 라싸를 비롯해 인근의 여러 촌락에서 꼭두새벽같이 달려온 티베트인들에 의해 간덴 사원으로 올라가는 비좁고 가파른 산길은 뱀의 몸뚱이처럼 꿈틀거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아예 걸어 올라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되었다. 비록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숨이 가빠오고 뒷목이 땅겨오는 고산병 증세 탓에 절 입구까지 이르는 멀고도 가파른 산길이 결코 만만치 않겠지만 말이다. 나그네뿐만 아니라 산으로 기어오르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아침 안개에 휩싸이면서 간덴 사원으로 오르는 산허리의 풍경은 가히 장엄한 화엄華嚴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올랐을까? 절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티베트식 국수(툭바)를 파는 노점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시골 잔칫집에라도 온 양 티베트 사람들이 국수를 한 그릇씩 사 들고, 산등성이 풀밭 여기저기에 흩어져 앉아 도란도란 늦은 아침의 허기를 달랬다. 주린 배가 아니었다면 이방의 나그네에겐 썩 내키지 않을 식사였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한 시간 넘게 버스를 달렸으며 가쁜 숨을 참으며 올라온 길이었다. 배를 채우지 않고는 더 이상 올라갈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텁텁한 속으로 툭바를 훌훌 털어 넣고 있는데 문득 건너편의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게걸스럽게 툭바를 먹는 아이 곁에서 아이의 엄마가 그를 다독여준다. 천천히 먹으라고, 그렇게 먹다가는 체하겠다고, 물과 함께 먹으라고. 하지만 허기져 보이는 아이의 거침없는 식탐은 잠시라도 멈출 줄을 몰랐다. 툭바 가락과 함께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자신의 콧물을 역시 입 안에 쪽쪽 빨아들이고 있었다. 콧물에 비벼 먹는 국수의 맛이라. 그거라면 나그네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맛이다.

어릴 적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달려온 집 부엌에서 부뚜막을 뒤지고 찬장을 뒤져 어머니가 해놓은 고구마며 감자, 누룽지와 떡 같은 것을 게걸스럽게 먹던 어떤 때, 콧물이 그 음식들의 달콤한 소스가 되어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매서운 한겨울 날, 하염없이 콧물을 흘리면서도 뛰어놀기에 목숨을 걸었던 그 시절에 콧물은 소매로 훔칠 새도 없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상한 일인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어쩐지 콧물 따위가 아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설사 콧물이 있더라도 그게 입속으로 들어가는 일 따위는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왜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러했는데 요즘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이토록 다른 것일까? 그것이 좋고 나쁘고, 위생적이고 비위생적이고, 잘살고 못살던 때라는 걸 다 떠나서 말이다. 콧물 섞인 국수를 먹는 아이를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간덴 사원 쪽에서 울려 퍼지는 우렁찬 티베트 나팔 소리! 아, 이제 곧 의식이 시작될 모양이다. 허출한 속을 어느 정도 달랜 나그네는 빈 국수 그릇을 노점에 가져다주고는 짐을 들고 일어났지만 아이는 아이인지라 아직도 한창 먹는 중이다. 나팔 소리에 놀란 듯 아이의 콧물 국수가 더 빠르게 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현자가 된 아이들

<이희인> 글,사진10,800원(10% + 5%)

베테랑 카피라이터이자 여행가인 이희인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 얼굴을 담은 사진들을 함께 실어둔 포토 에세이이자 여행 에세이. 몽골 초원과 시베리아 벌판,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의 실크로드, 신들의 거처가 있을 법한 티베트 등 아시아 각지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거..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