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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와 뮤의 「The Zookeeper's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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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개 끝까지 가보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 반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아는 한, 멋진 소설 중에 술에 물 탄 듯 살아가는 주인공은 하나도 없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다들 자기가 아는 한, 가장 먼 곳까지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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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개 끝까지 가보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 반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아는 한, 멋진 소설 중에 술에 물 탄 듯 살아가는 주인공은 하나도 없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다들 자기가 아는 한, 가장 먼 곳까지 가본다. 문학이란 그런 일들을 하려고 행하는 일이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토는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는 질문하고 여행할 권리만 있을 뿐이다. 이게 다냐고 묻고 다른 삶을 찾아볼 권리.

정말 이게 다인가?

우선 삶이 있다. 삶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다. 우선 충분한 경제력. 돈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충분한 애정.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 사회적 성공 역시 중요할 것이다. 요소들의 리스트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가족, 친구, 멋진 집, 건강 등등. 이런 것들이 필요한 까닭은 만족을 위해서다. 바꿔 말하자면, “이게 다냐?”고 묻지 않기 위해서.

그 다음에는 이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가본다. 그렇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리가 아는 상식에 의하면, 최악의 상태까지 몰린 인간은 절망에 빠져 그대로 죽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자살하는 경우에도 과연 최악의 상태까지 몰린 그 사람의 삶이 행복인가, 불행인가를 따져보게 되면 선뜻 둘 중 하나를 택하기가 어렵다. 바로 여기에 소설의 묘미가 있다. 이건 인생의 묘미이기도 하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는 말 그대로 끝까지 가보는 소설이다. 1977년 6월 21일, 인도 마드라스를 떠나 캐나다로 향하던 파마나 선적의 일본 화물선 ‘침춤 호’가 마닐라를 떠나 태평양으로 접어들어 나흘째 되던 날 폭발로 가라앉았다. 폰티체리의 동물원 주인의 아들인 피신 물리토 파텔, 하지만 영어 표현 ‘pissing’ 즉 ‘오줌 싸는’이라는 뜻과 헷갈리는 이름 때문에 스스로 파이 파텔이라고 이름을 고친 소년이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올라타게 된다. 하지만 그 구명보트에 올라보니 소년이 처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내 가족도 죽었다. 해가 지는 순간, 믿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고통과 슬픔으로 바뀌었다. 가족은 죽었다. 나는 그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가슴에 품기에는 얼마나 지독한 일인가? 형을 잃는 것…. 함께 나이 드는 경험을 하고, 형수와 삶의 나무에서 새로운 가지를 칠 조카들을 선사해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 길잡이가 되어 도움을 주고, 가지를 받쳐주는 기둥처럼 나를 든든히 받쳐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 그것은 머리 위의 태양을 잃는다는 것. 미안하지만 더 이상 얘기하지 못하겠다. 나는 방수포에 누워서, 양팔을 얼굴에 묻고 밤새 슬퍼하며 울었다. 하이에나는 밤새 얼룩말을 먹었다.

구명보트에는 폰디체리의 동물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미국의 동물원에 팔려고 배에 태운 동물들 중 몇 마리가 타고 있었다. 위에 나오다시피 하이에나와 얼룩말 등. 굶주린 하이에나는 구명보트에 타고 있던 또 다른 동물인 우랑우탄도 먹어치웠다. 그것만으로도 파이 파텔은 정신이 멍해서 미칠 지경인데, 구명보트에는 동물이 하나 더 타고 있었다. 그건 바로 몸무게가 200킬로그램도 넘는 벵골호랑이 리처드 파커였다. 태평양 한가운데를 떠다니는 구명보트에 남은 동물이 하이에나와 벵골호랑이와 소년이라면,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갈 데까지 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이런 것이다. 벵골호랑이는 하이에나를 먹어치운다. 그 다음에는 파이를 먹어치울 것이다. 약육강식. 자연도태. 정글의 논리. 뭐,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웠고, 또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이 세상의 논리들대로 말이다. “너는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몰라.”라고 말할 때, 그 뒤에 숨겨진 논리들. 맞다. 이런 게 바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소설의 독자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므로 소설은 결국 죽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의 논리. 하지만 그럼에도 왜 자꾸 이런 재미있는 소설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건 상상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우리의 소년 파이를 구하기 위해 최대한 상상해보자. 일단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사정없이 죽여 버린 하이에나는 벵골호랑이가 먹어치우게 내버려두는 게 좋겠다. 그 다음에는 호랑이가 파이를 먹어치우겠지. 그렇다면 구명정을 뒤져보자. 거기에는 당연히 위급 시 사용할 수 있는 비상품들이 구비돼 있을 것이다. 그 식량과 물을 벵골호랑이와 사이좋게 나눠먹으면 어떨까?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결론은 똑같다. 그 식량이 다 떨어지면 벵골호랑이는 소년을 먹어치울 것이다. 그럼 두 번째. 그렇다면 로빈슨 크루소처럼 자연을 이용하자. 빗물을 받아 물을 얻고, 고기를 잡아서 호랑이의 배를 채워주자.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거나 호랑이가 며칠 굶주리면 결국 호랑이는 소년을 잡아먹을 것이다.

뒤집어진 맥주병에서 오직 맥주만 쏟아지듯이 어떻게 하든 파이는 결국 벵골호랑이의 손에 죽는다는 결론뿐이다.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이게 다라는 생각이 들 때, 바로 그때가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내가 끝까지 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누구나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면, 뭔가를 생각해낸다. 살아야겠다는, 정말 단순한 생각이어도 좋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가장 놀라운 상상력이다. 아래의 문장은 스포일러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 문장이 스포일러라는 걸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꽤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죄다 말하겠다. 여러분에게 비밀을 털어놓겠다. 마음 한편으로 리처드 파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밉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이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리처드 파커가 없었다면, 난 오늘날 이렇게 살아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왜 성모님이었을까?

덴마크에서 온 밴드 뮤(Mew)의 노래에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이 부유한다. 연주는 포효하는데, 보컬은 지상에서 몇 미터 살짝 떠다니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어울리지 않아야만 할 텐데, 어쩐지 그들의 음악은 지구가 생겨났을 때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늑대처럼, 여우처럼, 기린이나 타조처럼. 그들이 도대체 어떤 세계를 노래하는지 알고 싶다면 <And The Glass Handed Kites>를 플레이어에 걸어놓고 처음부터 일곱 번째 트랙까지 쉬지 말고 쭉 듣기를 바란다.(어차피 한 번 틀기 시작하면 쭉 듣게 될 것이다.)

거기 일곱 번째 트랙은 ‘동물원 주인의 아이’, 즉 ‘The Zookeeper's Boy’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파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원 주인의 아이는 파이 파텔인데. 이 노래를 듣고 나면 머릿속에는 오직 “Are you, my lady, are you?”라는 가사만 맴돌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대도시, 아마도 LA 근처를 달려가는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뮤직비디오에서 보컬인 요나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당신인가요, 마이 레이디, 당신인가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렸다.

산타아나풍은 뱃멀미를 가져오고
동물원 주인은 내 말을 끝까지 듣는다.
감히 너 어디를 가느냐?
이 추운 빗속에서.


산타아나풍은 태평양에서 늦가을과 겨울에 미국의 서던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로 불어오는 강하고 건조한 바람을 뜻한다. 파이 파텔과 리처드 파커가 탄 구명보트를 멕시코 할리스코 주의 토마틀란으로 인도한 것도 바로 이 산타아나풍이 아닐까? 산타아나, 즉, 성 안나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다. 1번 트랙부터 노래를 쭉 듣기 시작해 마침내 “Are you, my lady, are you?”에 이르면, 하늘을 올려다보던 요나스가 떠오르고, 연쇄적으로 『파이 이야기』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난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캐나다에서였다. 시골로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겨울이었다. 넓은 땅을 혼자 거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새 눈이 내린 후, 햇살이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집으로 다가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숲이 있고, 숲 속에 작은 빈터가 있었다. 바람일까, 아니면 어느 동물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눈송이가 와르르 떨어질 때, 햇살이 비쳐들었다. 금빛 눈가루가 햇살 가득한 빈터에 쏟아질 때, 나는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왜 성모님이었을까. 모르겠다. 성모님에 대한 마음은 그리 크지도 않았는데. 아무튼 그분이었다.

왜 성모님이었을까. 모르겠다. 이 구절을 읽는데, 왜 그렇게 슬펐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왜 끝까지 간 소설인지, 그리고 그 마지막 절망적인 순간에 파이 파텔이 어떤 식의 상상력을 발휘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는지 나는 아직 단 한 마디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들도 파이가 이 소설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이야기에 비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저 문장이 또 생각난다. 왜 성모님이었을까. 모르겠다.

태평양 한가운데, 구명보트에는 하이에나와 얼룩말과 우랑우탄과 벵골호랑이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열병에 들뜬 환상과도 장면 속에서 두 모자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만 남았구나, 피신. 우리 둘만 남았어.”
어머니의 그 말에 내 몸에 있던 소망이 주르르 빠져나갔어요. 평생 그 순간처럼 외로웠던 때는 없었어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차마 쓰지 못하겠다. 그 일을 읽고 싶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소설을 읽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다. ‘The Zookeeper's Boy’를 듣고 싶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1번 트랙부터 듣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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