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놀이playing를 의미할 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일이다. - G.K. 체스턴
라오스의 중심 도시 루앙프라방의 마을 끝, 메콩 강과 칸 강이 만나는 어간에 위치한 라오스 최고의 사원 왓씨엥통 주변에서는 저녁 무렵마다 아이들의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고 골목을 질주하는 씩씩한 아이들의 달음박질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어른들이 깨끗하게 관리하여 유리 조각이나 모난 돌에 발이 찔릴 염려가 없는 바닥 위에서 아이들은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발에 걸치는 대신, 누가 누가 더 멀리 던지나 따위의 놀이 도구로 삼곤 했다.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하고 손바닥을 뒤집거나 펴서 편을 가르는 모습을 보니, 조금만 기억을 더듬으면 아이들 틈에 섞여 그 놀이들에 동참할 수 있을 듯했다.
아시아 도처에서 만난 많은 아이가 내 유년을 장식했던 주옥같은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놀이들을 즐기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풍경은 썩 놀랍고도 반가운 풍경이었다. 아이들의 놀이가 어느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래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어떤 놀이들은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생겨나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똑같이 피어나게 된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외계 생명체가 어느 날 지구 도처에 일제히 찾아와 똑같은 놀이를 아이들에게 전수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면 누구라도 쉽사리 그런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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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미얀마의 사원도시 바간에서 만난 계집아이들은 조약돌 같은 것을 끌어 모아 우리네와 거의 흡사한 형태의 공기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가지고 노는 공깃돌의 개수나 마지막에 이르러 공깃돌을 한 손에 잡아내는 꺾기의 방법이 우리네와 조금 달랐을 뿐이다. 일명 ‘아리랑꺾기’라고 불리던, 아래위로 손바닥을 꺾어 공깃돌 다섯 알을 받아내는 묘기를 선보이자, 아이들이 나그네를 사뭇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 방법을 따라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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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성 리장의 옥룡설산 케이블카 근처에서 만난 아이들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세워진 나무 난간을 미끄럼틀로 활용하며 정신없이 뛰어놀고 있었다. 역시 미얀마 바간의 아이들은 ‘서로 치기’ 비슷한 놀이로써 이방에서 온 나그네를 자신들의 ?이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며, 리장의 골목에서는 공사를 위해 쌓아둔 모래와 널빤지 따위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집이나 요새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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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곳에 자리 잡은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서조차 아이들의 놀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등 8천 미터의 산군이 한눈에 조망되는 푼힐 부근의 마을에서 갑자기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리며 나그네 곁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적도 있다. 이튿날 산을 내려오다가 지나친 고라파니 마을에서는 한 아이가 대나무 따위로 만든 화살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가 유년에 만들어 가지고 놀았던 대나무 화살과 거의 흡사한 것이었다.
이렇듯 흡사하고 닮은 놀이가 많을진대, 하물며 놀이의 대명사라 할 숨바꼭질이나 전쟁놀이, 인형놀이나 소꿉장난, 참새 잡기나 고기잡이 등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말방까기, 구슬치기, 오징어, 딱지치기, 말뚝 박기, 고무줄놀이, 윷놀이, 잣치기, 팽이놀이…. 거창하거나 돈이 드는 놀이 기구 하나 없어도, 골목과 거리의 지형지물만을 이용해 집에 들어가지 않고도 즐겁고 행복한 한나절을 꽉꽉 채우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억 속에 자취도 없이 잊힌 놀이가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가. 그때 그 친구들을 다시 불러 모아 그때 그 놀이들을 다시 시작해보자 하면, 여전히 즐겁고 가슴 벅차게 한나절을 다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훌쩍 커버리고 주책없이 나이를 먹고 만 나에겐 어떤 놀이와 즐거움이 남아 있는지. 지금 우리 곁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놀이와 즐거움이 함께하고 있는지. 무엇이 세월이 지난 뒤 추억으로 남고 삶의 거름이 되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될는지.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여기 이 나라의 아이들, 그러나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더 빛나고 행복하며 아름답게 추억할 유년을 갖게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놀이는 아이들에게 위대한 힘이자 자양분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공부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되고 거름이 될 것이다. 실컷 잘 노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공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을 조금 더 놀게 하자. 그것도 칙칙한 건물 안 골방이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흙이 밟히는 운동장과 나무들이 몸을 숨겨주는 수풀 같은 곳에서 말이다.
아이들은 그 누가 뭐래도 놀이하는 인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