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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외롭지 않은 그곳 - 『라 퀸타 카메라La Quinta Camera』
『Not Simple』에 관한 글을 쓴 후, 오노 나츠메의 작품들은 당분간 미뤄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 퀸타 카메라』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이런 점을 동경했었어. 자유롭고, 느긋하고, 따뜻한 분위기.’라는 말을 보고는 끌려들었다.
『Not Simple』에 관한 글을 쓴 후, 오노 나츠메의 작품들은 당분간 미뤄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 퀸타 카메라』에 둘러진 띠지에 적힌 ‘이런 점을 동경했었어. 자유롭고, 느긋하고, 따뜻한 분위기.’라는 말을 보고는 끌려들었다. 책을 집어 들어 느긋하게, 따뜻함을 느끼며, 단숨에 읽어 내렸다. 오노 나츠메의 작품에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라 퀸타 카메라』는 데뷔 전의 오노 나츠메가 어학연수를 갔던 이탈리아의 풍경이다.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 중년의 남자 넷이 사는, 방이 다섯 개인 아파트가 있다. 바를 경영하는 주인 마시모는 혼자인 걸 싫어해서 동거인을 하나 둘씩 들여놓았다. 피리를 부는 루카가 들어오고, 약간 괴팍한 만화가 체레가 들어오고, 트럭을 운전하는 알이 들어온다. 그리고 마지막 방은 학교와 계약을 해서 숙소가 필요한 유학생을 소개받는다. ‘라 퀸타 카메라’는 5번째 방이라는 뜻이고, 『라 퀸타 카메라』는 5번째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네 남자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흘러간다.
『라 퀸타 카메라』는 그들의 일상을 꼼꼼하게 따라가지 않는다. 첫 에피소드에서는 덴마크에서 온 샤를로트가 5번째 방에 들어오게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면 이미 1년의 세월이 흘러 샤를로트는 독립을 했고, 일러스트를 그리는 남자가 들어온다. 시간의 흐름에 초연한 듯이, 『라 퀸타 카메라』는 성큼성큼 나아간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감정이 요동치는지 일일이 추적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서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때로는 서투른 조언이나 해답보다, 부드러운 시선이 더욱 용기를 줄 때도 있다. 정확히 나이가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들은 서른을 넘겼을 것이고, 세상과 세월의 잔인함과 매정함에 한두 번씩은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흘러간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자유롭고, 느긋하고, 따뜻하게.’
하지만 그들이 그저 일상의 행복에만 도취해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 역시, 누구나의 삶과도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피리를 부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여인에게 루카는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안 루카는 목욕탕의 물줄기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고 모든 것을 잊으려 한다. 그런 루카에게 마시모가 묻는다. “즐거웠던 기억까지 전부 잊고 싶어?” 그건 아니다. “그럼 추억으로 남겨 둬도 괜찮아.”라고 마시모는 다정하게 말해준다. 슬프고 힘들어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그건 행복이다. 체레는 무슨 일을 해도 민폐가 되는 괴팍한 인간이다. 선물을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만 하고, 벽을 핑크로 칠한다며 난장판으로 만들고…. 하지만 친구들은 체레가 따듯한 사람임을 안다. 그리고 그를 좋아한다. 체레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주변 사람들도 안다. 그들 서로가 사랑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사랑이란 모든 것을 바치는 절박한 열정이 아니라, 따뜻하게 서로를 받아주는 편안함이다.
『라 퀸타 카메라』의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픔도 있고,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마시모는 임신한 안나와 결혼을 앞두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슬퍼한다. 한 번 결혼했던 알은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그가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알을, 샤를로트는 사랑한다. 『라 퀸타 카메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완결된 상태로 끝내지 않는다. 우리들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미완의 상태로, 미적지근하고 모호한 상태 그대로 놓아둔다. 그리고 그냥 바라본다. 어떤 것을 무리하게 끝을 낸다고 해서, 정말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저 놓아두는 것, 흐르는 시간에 맡겨 두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상처는 조금씩 나아가고 또 새로운 무엇인가가 다가온다. 작품 속의 세계는 완결적인 경우가 많지만, 현실의 세계는 완결이 아니라 늘 흐르는 강물처럼 부정형으로 움직인다. 슬픔도 기쁨도, 추억과 상처도. 『라 퀸타 카메라』가 편안한 것은 그런 세상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너무 격하지 않게, 너무 예민하지 않게, 그들을 모두 받아들여 따스한 햇볕을 쬐여주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LA에서 온 브룩이라는 할머니는 시나리오 작가다. 네 남자와 생활하다가 돌아가는 브룩은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써도 좋겠냐고. 그리고 네 남자는 생각한다. ‘정말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면 여기서의 우리들 생활이 다른 형태로 계속된다는 거네. 단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왠지 즐거워져. 분명 좋은 이야기가 될 거야.’ 그런 희망처럼, 그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만화 속이든, 현실이든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한, 살아가겠다고 생각하는 한, 그들은 ‘자유롭고, 느긋하고, 따뜻’할 것이다.
<오노 나츠메> 글,그림/<심정명> 역7,200원(10% + 5%)
『not simple』의 작가 오노 나츠메가 그리는 따뜻하고 눈부신 지중해성 이야기 "이런 점을 동경했었어. 자유롭고, 느긋하고, 따뜻한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