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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광기와 이성, 이윤과 본능의 삼각 대립 - 『백경』

인간이 욕망했던 존재가 인간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극적인 모순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되는 『백경』의 결말은 광기 어린 복수의 에이허브, 고래라는 이익에 대한 욕망에 기반한 합리적 근대의 표상인 스타벅과 어우러지면서 삼각의 축을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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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를 드셔 본 분이 요즘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때였나, 가족끼리 부산에 놀러가서 자갈치시장 2층에 있는 고래고깃집에 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누런 삼베천으로 싸서 찐 고래고기는 좀 누릿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놀라운 맛이었습니다. 생선에서 고기 맛이 났으니 어린 마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고래 잡는 배를 포경선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고래는 너무 커서 그물이나 낚시로 잡지 못 하고 작살이라는 창 비슷한 걸 던져서 잡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바다에 살되 물고기가 아니고,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은 그러나 이제 쉽사리 사람의 입맛에 평가하기 어려운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괜스레 추억의 고래고기를 떠올리며 오늘 함께 읽을 책은 허먼 멜빌의 장편소설 『백경Moby Dick』입니다.

‘백경’은 한자어로 白鯨, 흰 고래를 의미합니다. 소설 『백경』은 소설 속 화자인 이스마엘이 포경선 피쿼드 호에 타고 바다로 나가 전설적인 흉포한 흰고래 ‘모비 딕’을 잡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포경선을 타는 것이 꿈인 화자 이스마엘이 미국 북부 포경선의 근거지인 낸터킷 섬으로 찾아가 타게 된 배는 피쿼드 호. 그러나 이 배의 목표는 일반적인 포경선과는 좀 다릅니다. 선장인 에이허브는 이스마엘과 그의 이교도 친구(폴리네시아 어딘가의 원주민 추장 아들입니다)인 작살잡이 퀴퀘그가 승선 계약을 마치고 출항한 뒤 선언합니다. “이 배의 목표는 모비 딕이다!”

포경, 고래를 잡는 일반적인 이유는 사실 당시 기준으로는 고래 기름의 획득이었습니다. 고래의 피부 안쪽과 머리 아래 등에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고래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데, 주로 향초와 등불, 교회의 밤 조명 등을 밝히는 데 사용되었고, 가끔은 화장품 등의 용도로도 쓰였기에 그 수요는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고래잡이는 어장이 따로 있어 고정적인 수입이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포경선은 배의 주식을 발행하여 투자자를 모으는 형태의 영업을 행합니다. 한 번 항해를 다녀온 뒤 획득한 고래 기름으로 낸 수익은 그렇게 주주들과 선원들에게 애초 배정된 대로 나눠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척박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가장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었고, 누구나 고래잡이 최대의 목표는 바로 그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피쿼드 호와 에이허브 선장의 목표는 돈이 아닙니다. 그는 모비 딕이라는 흉포한 흰 말향고래 한 마리를 잡는 것이 목표라고 말합니다. 에이허브는 모비 딕을 사냥하다가 그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고, 극심한 고통과 고래잡이 선장으로서의 치욕감을 이기지 못 해 복수의 화신이 된 인물입니다. 선원들과 별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선장실에 틀어박힌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분노로 가득한 캐릭터인 에이허브는 피쿼드 호와 선원들, 그 배에 투자한 주주들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복수와 분노로 가득 찬 항해를 이어 나갑니다.

그러나 피쿼드 호에는 오직 분노의 에이허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세 명의 일등항해사입니다. 포경선에서의 일등 항해사는 다른 배와 달리 보다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는데, 바로 고래잡이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일입니다.

일등항해사는 고래를 발견하여 일정 거리까지 추격한 다음, 각 항해사마다 하나씩의 보트를 내립니다. 7~8명의 선원과, 일등항해사 한 명과, 그의 보조원으로 구성된 보트는 노의 힘으로 고래를 추격해 가고, 가까워지는 순간 항해사 또는 보조 작살잡이가 작살을 던져 고래사냥의 최종 꼭짓점을 찍습니다. 그렇기에 일등항해사의 권한은 매우 막강한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참급인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무척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보여주는 일등항해사입니다. 그는 피쿼드 호에 투자한 주주들을 잊지 않으며, 포경선의 본래 목적을 위한 항해를 고집합니다. 복수에 집착하는 광포한 선장 밑에서 그는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어르며 항해의 중심을 바로잡고자 노력합니다.

선장 에이허브의 광기와 항해사 스타벅의 침착함은 피쿼드 호의 항해 속에 끝없이 갈등합니다. 애초부터 위험스러웠던 항해의 운명은 화자 이스마엘이 배를 타기 전 미친 노인에 의해 예언되는 바처럼 선원 모두가 육감으로 알고 있던 현실임을 소설은 여기저기서 암시하며, 스타벅은 그 속에서 끝없이 광기의 항해를 정상 궤몶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합니다.

피쿼드 호는 미국 동부 대서양을 출발해 남미를 돌아 태평양으로 향하며, 오랜 항해 끝에 일본 열도 근해에서 마침내 모비 딕을 봤다는 다른 포경선의 증언을 확보합니다. 모비 딕을 찾아 헤매는 에이허브의 열정은 더욱 불이 붙고, 마침내 모비딕과 만난 피쿼드 호는 3일간의 추격과 전투를 벌입니다. 광포한 고래 모비 딕의 반격에 오히려 피쿼드 호가 위험에 빠지지만 끝내 에이허브 선장은 직접 던진 작살로 모비 딕의 급소를 찌르는 데 성공하지만, 작살 뒤의 밧줄이 에이허브의 몸에 감겨 모비 딕과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모비딕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던 포경선 피쿼드 호도 결국 모비딕, 에이허브와 그 운명을 같이 합니다.

총 100여 장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를 가진 소설 『백경』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전미도서상, 타임지 선정 최우수논픽션 등으로 이름을 알린 기록문학 『바다 한가운데서-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이 그 주인공으로, 실제 낸터킷에서 출발해 남태평양에서 최후를 맞은 포경선 에식스 호의 사건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모티브가 된 회고록이 있었고, 또 작가인 멜빌 스스로가 포경선 선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기에 소설 『백경』의 이야기 또한 포경업과 고래에 관한 세밀한 묘사가 풍부합니다. 100여 개의 장 중에는 이야기의 흐름과 크게 관련이 없는 내용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고래의 생태학적 분류와 해부학적 지식 등은 기본이고, 역사 문헌 속에서 고래에 관해 언급된 다양한 내용들을 따로 정리해 두기도 합니다. 성경에 묘사된 ‘요나를 삼킨 고래’에 대한 이야기에 고증을 하기도 하고, 낸터킷 섬이 포경업의 근거지가 된 배경과도 같은 역사적 맥락도 포함합니다.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소설로 승화시키면서 포경선의 비극에는 다채로운 주제들이 새로 나타납니다. 화자인 이스마엘이 낸터킷 섬에 들어가면서 만난 폴리네시아인 작살잡이 퀴퀘그와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이상한 우상을 들고 다니며 숭배하고, 온몸에 종교적인 문양으로 문신을 한 퀴퀘그에 대해 이스마엘은 처음에 큰 공포를 느끼지만, 곧 열린 마음으로 그의 신앙과 사상을 존중하게 되고 함께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에식스 호 침몰이 1840년, 백경 출간이 1851년이고,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1863년에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했던 기록을 되짚어 볼 때 주인공인 이스마엘이 이교도, 흑인에게 보여주었던 행동들이 다분히 과도기적 행동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독실한 기독교도들이고, 특히, 낸터킷 섬의 경우 노예제도에 크게 반발했던 퀘이커 교도들이 상당히 많았음을 소설은 묘사합니다. 굳이 이교도, 야만인으로 분류되던 퀴퀘그가 화자 이스마엘의 절친한 동료로 등장하고, 그의 화려한 활약과 숭고한 희생이 부각되는 이유도 아마 이러한 시대 배경에 대한 묘사일 것입니다.

앞서도 이야기된 에이허브 선장과 스타벅의 대립 또한 중대한 요소입니다. 복수(라고 부르기도 애매한)의 감정에 불타는 인간이 보여주는 무모한 광기와, 합리적 판단과 이성에 근거한 차분함 사이에서 이스마엘은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 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광기와 이성의 대립이라는 단순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대결로 봐도 좋을 두 사람의 대립 구조는 항해의 목적인 ‘모비 딕’에 이르러 절정을 이룹니다.

이 ‘모비 딕’이야말로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본래 고래는 천성이 온순해서 위협적이지 않은 사냥감이었지만, 실제로 에식스 호를 공격한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의 잔혹한 사냥 속에서 단 한 번도 저항하지 않았던 고래가 갑작스럽게 인간을 덮친 것입니다. 그것도 인간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고래 머릿속의 기름이 든 부분으로 배를 부수는 형태로 말입니다. 인간이 욕망했던 존재가 인간의 옆구리를 들이받는 극적인 모순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되는 『백경』의 결말은 광기 어린 복수의 에이허브, 고래라는 이익에 대한 욕망에 기반한 합리적 근대의 표상인 스타벅과 어우러지면서 삼각의 축을 형성합니다.

다시 말해 이렇습니다. 스타벅과 에이허브는 이성과 광기라는 대립항을 형성하고, 에이허브와 모비딕은 분노와 분노로 맞부딪칩니다. 그리고 모비딕과 에이허브는 산업시대 인간의 합리적 욕망과 자연 그대로의 생존 본능으로 갈등합니다. 이러한 삼각 구도 속에서 중립을 지키는 이스마엘의 눈으로 우리는 셋 모두의 몰락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꺼운 책 두께와 각 장마다 오락가락하는 서술방식의 변경, 고전적인 어투는 요즘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면이 될 수 있겠지만, 단지 포경선 한 척이 난파했다는 작은 사실 속에서 시대적 배경과 인간의 욕망, 자연의 본성을 섞어 넣은 덕택에 『백경』은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남습니다. 모티브인 『바다 한가운데서』도 함께 읽으면 재미에 보탬이 되고, 비슷한 해양 탐험기로는 지오 하이에르달의 뗏목탐험기 『콘 티키』도 추천할 만합니다.

* 위에서 스타벅을 근대적 욕망의 현시로 해석하고 나니 그럴듯한 아이콘이 하나 더 생각이 납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가장 유명한 커피전문점이 된 브랜드 Starbuck's Coffee는 소설 『백경』에서 모티브를 따 왔습니다. 81장에서 지나가는 배 선원들이 뭔가를 흔드는 것을 보고 항해사 스타벅이 “우리에게 커피를 대접하려는 거야.”라고 말한 대목에서 이 브랜드가 나왔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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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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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H. 멜빌> 저/<정광섭> 역7,200원(10% + 5%)

바다의 사나이 에이허브 선장이 선원들과 함께 태평양의 괴물 '모비딕'을 쫓아 마침내는 이 흰 고래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다이내믹한 이야기. 대표적인 해양문학 작품이며, 인간 대 운명의 싸움을 상징한 문학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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