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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기억하나요?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잘 만들어진 연극답게 올해로 7년째 무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이제 어린이는 물론 어른과 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꼽히며 50여만 관객의 가슴을 감동으로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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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인가, 그때도 이맘때였던 것 같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점점 매서워질 무렵, 이 연극을 봤다. 원래 어린이들을 위한 무대로 마련됐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당시에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갔었지만, 그때만 해도 주위에 온통 아이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 틈 속에서 정신없이 까르르 웃고 꺼이꺼이 울면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그 ‘사랑’에 대해 집에 돌아와 일기까지 썼었다.


잘 만들어진 연극답게 올해로 7년째 무대를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백사난>은 이제 어린이는 물론 어른과 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꼽히며 50여만 관객의 가슴을 감동으로 적시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30대가 된 필자는 ‘다시 이 작품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거의 자학에 가까운 마음으로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여전히 아이들은 많다. 화사한 안개꽃으로 꾸며진 무대도 그대로다. 이야기는 동화 ‘백설공주’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세부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일곱 난장이(‘난쟁이’가 표준어지만 공연 제목대로 표기하겠다)가 살고 있는 안개 숲에 백설공주가 찾아온다. 아름답고 착하지만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한 백설공주. 그런 백설공주를 말 못하는 막내 난장이 ‘반달이’는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 사랑은 새엄마 왕비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백설공주를 매번 구해내는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정작 말 못하는 사랑은 가슴 속에서만 한없이 커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이 묻은 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 반달이는 다시 그 주술을 풀기 위해 이웃나라 왕자를 찾아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나고, 마침내 왕자의 키스로 백설공주는 다시 눈을 뜬다. 이제야 반달이가 품어온 마음을 자신의 춤으로 표현하려던 찰라, 왕자는 백설공주에게 말로써 사랑을 고백하고, 반달이의 눈물을 머금은 춤은 두 사람을 위한 진심 어린 축복으로 바뀐다. 그리고 왕자와 백설공주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갈 무렵, 반달이는 서서히 숨을 거둔다.


5년 만에 다시 본 <백사난>은 다행인지 모르지만 어김없이 내 마음에서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말을 못 하는 반달이는 이웃나라에 가서 갖은 고생을 다 한다. 그러다 마침내 만나게 된 왕자가 자신의 몸짓을 알아봐줬을 때 오열을 토하는 장면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꼭 그 장면에서 울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순수한 사랑’이다. 세상에 반달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인지는 몰라도, 분명 목숨을 내걸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반달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래 전에 <백사난>을 봤을 때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의 무게와 질량이 결코 반달이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런데도 눈물나게 반달이가 부러웠던 것은 그 ‘순수성’의 순도 때문이었다. 반달이 못지않게 미친 듯이 사랑하지만, 그 사랑 안에는 그만큼의 원망과 기대,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서러웠다.

훗날 백설공주는 우연히 진실을 말하는 거울에게 묻는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 거울은 뭐라고 답했을까? 그렇다, 반달이가 백설공주에게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려고, 온 마음으로 사랑만 하려고 죽도록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런데 백설공주가 그 사랑을 알아줬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벅차고 행복했을까? 반달이의 순수한 사랑이 만들어낸 환한 마음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이렇게 근사한 무대를 만들 수 있구나.’ 정말 아이 같은 미소를 짓게 된다.


<백사난>은 이렇게 내용뿐만 아니라 구성이나 무대 연출, 음악 등에 있어서도 뛰어난 작품이다. 다소 무겁고 경직된, 그리고 큰 변화 없는 보통의 연극 무대와 달리 <백사난>은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답게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뮤지컬이라고 해도 될 만큼 노래와 춤도 다양하다. 다양한 소품과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의상도 인상적이며, 백설공주가 풍랑에 휩쓸리거나 반달이가 헤엄치는 장면 등은 기발할 정도로 웃기다. 또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이 계단에서 배웅을 해주는 모습도 무척 따뜻하다.

얼마 전 결혼한 친구에게 <백사난> 티켓을 선물했다. 사실 ‘처음의 순수했던 마음을 기억하며 이렇게 영원히 사랑하라’는 생각에서 선물했는데, 지금은 다소 걱정이 된다. 현실에서 반달이 같은 사랑을 하기가 어디 쉽단 말인가? 도리어 부족한 사랑을 탓하며 서로 엇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부디 어른으로서 성숙하게 잘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두말없이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분명히 아이와 어른이 웃고 우는 포인트,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마감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 런에 들어갔으니, 부모님의 바람대로 내년에 ‘철수(남자친구)’가 생기면 다시 가서 나의 사랑을 점검하고, 내친 김에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으면 그 아이도 데려가서 “너, 아까 왜 울었니? 보고 나니까 어때?” 하고 꼬치꼬치 캐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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