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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았어요."

실제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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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가 높은 음식은 사실 와인의 적이다. 특히나 매운 맛의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예전 한국에 갔을 때 술을 마시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그날 자리를 주도한 분이 술자리가 무르익자 갑자기 모인 사람들의 맥주잔에 맥주를 붓고 일렬로 세워 놓았다. 그리고선 그 위에 양주를 가득 채운 양주잔을 올려놓았다. 그러고선 제일 앞의 양주잔을 ‘톡’ 건드리니까 양주잔이 마치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맥주잔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장면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폭탄주’라고 불렀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제조된 폭탄주를 예외 없이 ‘원샷’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는 그렇게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한국 여자들은 술이 센 건지, 자존심이 센 건지 그 독한 술을 회식 때마다 ‘원샷’을 하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한국에선 폭탄주 문화만큼 인상적인 것이 바로 음식이었다. 한국 음식은 이미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자주 접해 왔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나는 한국 음식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김치와 불고기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이 중 김치는 매운맛과 신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주 독특한 맛을 낸다. 김치의 매운 맛은 사실 일본은 물론 서양 요리에서도 접하기 힘들다. 하지만 『신의 물방울』에서 한국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대중적으로 먹는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야 했다. 여기에 대해선 한국 사람들도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제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도가 높은 음식은 사실 와인의 적이다. 특히나 매운 맛의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와인과 음식의 궁합(마리아주)의 기본 원칙, 같은 맛의 와인을 찾아야 했다. 일단 신맛이 강하고 매운맛이 많은 한국 음식과 비슷한 스타일의 와인 생산국을 찾다 보니 이탈리아가 떠올랐다. 그러나 수많은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김치나 불고기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만화의 감초 혼마 씨. 그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때마침 이탈리아 출장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달라는 ‘특명’을 내렸다.

며칠이 지났을까. 휴대전화로 낯선 국제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혼마 씨였다.

“드디어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을 찾았어요.” 그는 와인에 취한 건지,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에 감격한 건지 이미 꽤나 취해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혼마 씨가 마침내 와인을 들고 왔다.

‘그라벨로’Gravello와 ‘듀카 산펠리체’Duca Sanfeclice.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에서 그 발끝 부분에 해당하는 칼라브리아Calabria에서 생산되는 와인이었다. 칼라브리아는 나폴리 공화국 시대에 이곳을 통치했던 공작의 이름이다. 굉장히 덥고 토양은 메마르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음식의 특징은 빨간 고추가 굉장히 많은 요리에 들어있다는 것. 그래서 빨간 고추 밭이 칼라브리아 전역에 퍼져 있다. 포도 역시 이 빨간 고추들과 같은 기후, 같은 토양에서 자라고 있다. 포도는 주로 갈리오포Gaglioppo라는 품종이 재배되는데 이것은 그리스로부터 유입됐다. ‘그라벨로’ 와인과 ‘듀카 산펠리체’ 와인은 모두 이 지역에서 갈리오포로 만들어진 와인이다.

시음은 시내의 한 한국 음식점에서 이뤄졌다. 김치를 비롯해 한국의 매운 요리들을 모두 주문해 놓고 와인과의 마리아주를 살펴봤다.

와인을 마신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어라, 와인이 맵다?!’

나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한국 요리의 매운 맛에 이마에 땀을 닦으며 입을 모았다.

“와인이 정말 스파이시한데요?”

의기양양해진 혼마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떤 와인이든지 그 지역 요리와 궁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역 요리에 사용되는 채소나 가축들은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과 토양을 공유하기 때문이죠. 토양의 특징이 와인과 음식 재료에도 같이 스며드는 셈입니다. 이탈리아 와인은 이런 점이 더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피에몬테 지방의 송로버섯 요리에는 피에몬테 와인이, 토스카나 지방의 송아지 요리에는 토스카나 와인이 맞는 것처럼요. 그런데 칼라브리아에선 빨간 고추를 사용하는 매운 요리가 대표 음식입니다. 그만큼 와인도 매운 맛이 강해요. 실제로 칼라브리아의 포도밭들은 예전엔 모두 고추밭이었다고 합니다. 매운 고추를 키워낸 토양이 매운 포도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천?지?인天地人’

다시 한번 와인의 진리가 떠올랐다. 와인은 만물의 조화로 탄생된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중 유명한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 ‘샤블리’가 있다. 『신의 물방울』에서도 이미 소개했지만 이 와인은 생굴 요리와 잘 어울린다. 만화에선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샤블리 지역은 예전에 바다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사람들이 샤블리 토양을 파자 그 밑에선 굴 껍데기가 발견됐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샤블리 와인이 생굴과 잘 어울리는 이유’를 깨달았다고 한다. 와인만큼 만물의 조화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생산품이 있을까.

그라벨로의 메인 품종은 갈리오포지만 보르도에서 퍼져 이젠 국제적인 품종이라 할 수 있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30% 섞여 있다. 그래서 김치는 물론 한국의 불고기와 전골 요리에도 잘 맞는다. 이에 반해 듀카 산페리체는 100% 갈리오포로 김치와의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지인을 통해 한국에서 잘 팔리는 와인들을 알아보니 그라벨로나 듀카 산펠리체처럼 맛의 윤곽이 확실한 와인들이 인기를 끈다고 들었다. 실제 와인의 맛이 깊고, 강하며, 감칠맛이 나야 한국 음식과 잘 맞는 것 같다. 위의 와인들을 맛본 곳이 바로 일본 내 한국 음식점이었던 만큼 이미 와인에 대한 정보들이 한국에도 퍼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재기해서 가격이 뛰기 전에 꼭 구입해서 한국 음식과 함께 마셔 보길 바란다. 가격도 일본에서 2,000~3,000엔대인만큼 한국이라도 4만~5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치의 톡 쏘는 매운맛, 불고기의 달콤함과 함께 저녁 식탁이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이상으로 <와인의 기쁨>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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