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은 한 척의 배였다. 마치 오래전에 좌초한 배처럼 카니츠 마을 도로변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집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2층 건물이었고, 대들보만 남은 팔자 모양의 지붕 양쪽에는 나무로 만든 말(馬) 머리 두 개가 얹혀 있었고, 창문에는 유리도 없었다. 바람에 비틀린 베란다는 담쟁이덩굴로 덮여 있었고, 벽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집은 예뻤다. 바로 그 집이었다.
그 집은 바로 택시 운전수 슈타인이 8만 마르크를 주고 산 집이었다.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집
『여름별장, 그 후』에 실린 이 표제작은 슈타인과 함께 베를린 교외에 있는 그 집을 보고 온 과정을 한 여자의 시점으로 서술한다. 말했다시피 그 집은 예뻤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집은 5분도 채 안 돼 쓰러질 듯한 폐가였다.
왜 슈타인은 ‘나’에게만 그 집을 보여준 것일까?처음 슈타인과 잔 사람은 ‘나’였다. ‘나’는 그가 모는 택시의 승객이었다. 슈타인은 목적지인 파티장까지 가는 동안, 트랜스엠의 노래를 틀었고,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파티 장소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택시는 목적지도 없이 계속 달린다. 그날 밤, 슈타인은 비닐봉지를 들고 ‘나’의 집으로 와 3주 동안 함께 살았다. 슈타인은 한 번도 자기 집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깔끔했고, 옷도 잘 입고, 심지어는 너무 잘 생기기까지 했다.
그 3주의 일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라면 둘이서 택시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알레를 한 시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매시브 어택의 노래를 들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슈타인이 “이해하겠니?”라고 물었다. 그 순간, 그 도시는 더 이상 ‘나’가 알고 있던 도시가 아니었고, 홀로 존재하고 있었고,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두 사람은 거의 매일 같이 택시를 타고 다녔다. 국도에서는 윈, 시내에서는 데이비드 보위, 가로수 길에서는 바흐 등 슈타인은 거리가 바뀔 때마다 음악을 교체했다. 두 사람이 주로 가는 곳은 고속도로다. 거기의 음악은 트랜스엠, 그러니까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노래였으니까.
그리고 3주가 지나자 모든 게 지겨워진 ‘나’는 비닐봉지 세 개를 싸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말했다. 슈타인은 크리스티아네, 안나, 헨리에테, 팔크 등등 ‘나’의 친구들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나’의 친구들은 모두 슈타인과 잠을 잤다. 팔크는 그림을 그렸고, 안나는 연주를 했으며, 하인제는 글을 썼다. 그들이 손뼉을 치면 슈타인도 손뼉을 쳤고, 그들이 술을 마시면 슈타인도 술을 마셨고, 그들이 마약을 하면 슈타인도 마약을 했다. 슈타인은 애써 그들을 닮아보려고 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들처럼 날카롭고, 신경쇠약에 걸린 듯한, 두려울 게 없는 상태로 변하지는 않았다. 슈타인은 그들과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부류였다.
아무려나 상관이 없었다. 언젠가 루노에 있는 하인제의 정원에서 슈타인과 ‘나’만 단 둘이 남은 적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마약을 피우며 해 지는 풍경을 보러 가고 없었다. 슈타인은 유리컵, 재떨이, 빈 병과 의자들을 치운 뒤, ‘나’에게 “포도주 마실래?”라고 물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포도주를 마셨고,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고, 서로 쳐다볼 때면, 그는 빙그레 웃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게 다란 의미가 아니라, 그날의 그 장면이 두 사람이 서로의 전부를 이해하던 순간이었다. 슈타인이 ‘나’에게만 집을 보여준 까닭은 이 추억 때문이었다.
왜 슈타인은 그런 집을 샀단 말인가?노르웨이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온 포크 듀오 킹즈 오브 컨비니언스의 데뷔음반
<Quiet is the New Loud>에 수록된 10번 트랙 ‘Summer on The Westhill’은 스쳐 지나가는 젊음의 한때를 노래한 곡이다.
내 자리에 앉아서 나는 스쳐가는 들판들을 바라본다.
짙은 색조의 들판들. 긴 긴 시간이 흘렀다.
웨스트힐의 여름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
나는 등을 기대고 앉아 시선이 가닿는 대로,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눈동자가 흘러가는 대로.
시선은 지평선으로 향하는 듯,
나는 이제 내가 떠나온 작은 곳
그 너머에도 세상이 있다는 걸 안다.
세상 그 어디도 아닌 이 자리가 나는 편안하다.
해안까지 갈 테지만,
나는 스쳐가는 땅들의 이름을 모른다.
제 시간에 도착한다고 들었다.
제발 바다의 구름들이여,
대양을 가로지를 때 폭풍우가 없게 해주길.
긴 긴 시간이 흐른 뒤, 그때 스쳐간 들판들은 어떻게 됐을까?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그때 처음 본 웨스트힐의 여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다 쓰러져가는 그 집의 정원에서 슈타인이 “이게 다라고!”라며 뻔뻔하게 소리치는 장면은 이제 슈타인과 ‘나’가 이 노래처럼 마음이 따뜻했던 어느 여름의 한가로운 한 때로 영영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살롱도, 당구 치는 방도, 담배 피우는 방도 지을 거야. 물론 각자 자기 방이 따로 있고, 뒤뜰에는 퍼지르고 앉아 먹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을 놓을 거고, 넌 아침에 일어나 오데르 강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머리가 터질 때까지 코카인을 들이마실 수도 있어.”그러면서 슈타인은 우악스럽게 ‘나’의 머리를 잡아 들판 쪽으로 돌렸지만, 너무 어두워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덜덜 떨면서 “슈타인, 제발 그만 해.”라고 말했다. 잠시 뒤, 슈타인이 진정하자, ‘나’는 뭔가 긍정적인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여름이 되면 베란다에 있는 담쟁이덩굴을 없앤 뒤, 앉아서 풍경을 보며 포도주를 마시자고 말했다. 그때처럼. 언젠가 하인제의 정원에 앉아 있던 여름처럼. 하지만 슈타인이 그때처럼 다시 자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뒤,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미워졌다.
3월이 되어 슈타인은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누구도 슈타인의 행방을 알지 못하지만, 일주일 뒤부터 그는 ‘나’에게 매일 엽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면 난 담배를 피워. 내가 심은 게 있는데, 네가 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네가 온다면 담쟁이덩굴을 자를 거야.” 그런 내용들. ‘와’라고 쓰지 않고, 번번이 ‘네가 온다면’이라고 쓰는 엽서들. 그래서 ‘와’라는 말이 나오면 그 집으로 가기로 결심한 뒤의 어느 날, ‘나’는 그 집에 관한 신문기사를 넣은 슈타인의 편지를 받는다.
‘Summer on The Westhill’은 여름이 끝났음을 알리는 노래다. 포도주를 들이켜다가 이따금 서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 게 전부였던 여름별장의 시절이 끝나고, ‘그 후’의 일들이 시작된다는 이야기. 결코 ‘와’라고 쓰지 못하고 ‘네가 온다면’ 담쟁이덩굴을 자를 테고, ‘네가 온다면’ 포도주를 마실 것이고, 이런 식으로 엽서를 쓰는 ‘그 후’의 일들. 하지만 그럼에도 ‘네가 온다면’, 네가 와서 서로 빙그레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전부야. 여름은 끝나겠지만, 그리고 집은 허물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네가 온다면.’ 그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