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어요?”
파니가 속삭이는 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파니” 하고 모르텐이 대답했다.
(중략)
“내가 신부에게 물었지. ‘지금, 일 분만 더 살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신부가 ‘일 분을 얻으면 무얼 하려고 하는가, 형제여?’ 하고 묻더군. 난 ‘목에 밧줄을 두른 채, 일 분 동안 라 벨 엘리자(아름다운 엘리자)를 생각할 겁니다’ 하고 대답했어.”
- 본문 중에서
엘시노어의 거리 모퉁이에는 회색 저택이 하나 있다. 18세기 초에 지어진 이 오래되고 기품 있는 저택은 오랫동안 데 코닝크 집안의 소유였다. 데 코닝크 가문에는 두 딸과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셋 다 뛰어난 용모로 소문이 자자했다. 아들 ‘모르텐’에게는 결혼을 만천하에 약속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날 아침, 신랑은 사라졌고 그 후로 엘시노어에서는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었다. 35년 전의 일이었다. 이후 간간히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 해적이 되었다고 했다. 자매가 오빠에 대해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그가 교수형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자매의 이름은 ‘파니’와 ‘엘리자’였다. 쉰둘과 쉰셋. 이제는 늙어버린 자매는 끝내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코펜하겐으로 옮겨와 살던 이들은, 오빠의 유령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엘시노어로 향한다.
「엘시노어의 저녁식사」는 이자크 디네센의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에 실린 작품이다. ‘이자크 디네센’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덴마크 출신 작가 카렌 블릭센의 필명.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열연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하던 그녀는 비행기 사고로 애인을 잃고, 대공황으로 농장마저 정리한 채 덴마크로 돌아온다. 그리고 1934년, 우리 나이로 50세에 이 작품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에는 영혼의 자유와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방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풍부한 판타지로 가득한 그녀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사가 전혀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불꽃처럼 뜨겁게 살았기에, 디네센이 들려주는 이야기들 역시 독자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강렬한 욕망을 자극하는 것 같다. 「엘시노어의 저녁식사」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난 우리를 거절하는 위대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어. 그것들이 우리를 왜 허락하겠니? 우리의 맨송맨송한 애무를 참아줄 이유가 없겠지. 우리를 허락하는 것들을 우리는 우리 아래에 두지. 우리는 그것들을 망쳐놓고 떠나버려. 그것들을 떠나고 나면 그것들로 인해 우리가 병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 본문 중에서
35년 만에 돌아온 엘시노어의 저택. 어린 시절 모르텐과 자매들이 비밀 만찬을 즐기던 붉은 방은 말라가는 한 움큼의 장미처럼 다양한 톤의 색으로 바래 있다. 자매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모르텐의 유령이 나타났다. 그는 동생들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준다.
“그런데 어쩌다가 해적이 되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파니는 무척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오빠의 삶이 그야말로 낭만과 모험에 관한 책 속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마음, 우리를 재난으로 몰고 가는 이 마음 때문이었지. 난 사랑에 빠졌어. 페르난드 삼촌께서 그토록 얘기하셨던 Coup de foudre(첫눈에 반함)이었어. 삼촌께서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이미 알고 계셨던 거야.”
- 본문 중에서
모르텐이 사랑에 빠진 상대는 세상에서 단 한 척 밖에 없는 아름다운 범선이었다. 백조처럼 우아하고 당당하면서도 품격 있는 배. 그는 자신을 돌봐주던 늙은 선주의 전 재산을 훔쳐 그 배를 산다. 그 후, 모르텐은 악명 높은 해적이 되어 세상 곳곳을 떠돌았다. 그에게 인생은 격렬하게 부딪쳐 오는 파도 속 항해와도 같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출되었으나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모르텐은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대리석처럼 지내왔던 노처녀 자매의 미묘한 감정선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오라버니의 배 이름이 뭐였어요?”
엘리자가 눈을 내리뜨며 물었다.
모르텐은 웃으며 엘리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내 배의 이름은 라 벨 엘리자였다. 몰랐니?”
“아뇨, 알았어요.”
엘리자의 음성은 다시금 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중략)
그랬다. 이것이 이 노처녀가 감쪽같이 지켜온 비밀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대리석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내부 어딘가에서 이 작은 행복의 불꽃이 살아서 타고 있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전혀 친절하지 않다. 온통 채워지지 않은 공간들로 가득하다. 모르텐이 엘시노어를 떠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두 자매가 끝내 결혼을 하지 않은 직접적인 이유도, 언니가 동생에게 느끼는 미묘한 질투의 감정도, 모르텐과 엘리자 사이에 어떤 연애감정이 있었는지도, 데 코닝크 가문 특유의 우울한 정서가 어떤 것인지도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그저 상징적인 대사나 장면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모든 정황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순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이런 특징은 소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팀 버튼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름답고 기괴하면서도 신비한 느낌. 백과사전에서는 고딕 소설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엽에 걸쳐 영국에서 유행한 소설의 한 장르.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된 성을 배경으로 유령, 살인 따위의 기괴한 사건을 주로 다루면서 신비감과 공포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분위기로 전달되는 몸서리치게 아름답거나 소름끼치도록 섬세한 감정들은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다.
하지만 정작 「엘시노어의 저녁식사」가 드러내는 핵심은, 삶의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모험의 충동’과 ‘결정적인 한 장면’에 대한 것이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그런 강렬한 느낌. 35년 전 모르텐이 자신의 약혼녀와 예정대로 결혼식을 올렸다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아마도 부유한 귀족 가문의 자제로서 평탄하고 안정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 떠났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교수대에 오른 모르텐의 마지막 대사를 읽으면서, 문득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자들이 잠시 머무르는 ‘림보’라는 가상의 공간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곳에 1주일 동안 머물면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채 영원의 세계로 떠난다. 이 영화에는 따로 주인공이 없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선뜻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고민한다. 때로는 선택을 거부하거나 기억을 각색하려 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공감하며 지켜봤던 인물은,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조용히 노년을 보내다가 삶을 마감한 노인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선택을 하지 못한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고 그럭저럭 순탄하게 회사를 다니다가 퇴직한 그에게 선택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삶의 길목마다 고만고만한 기쁜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한 순간’이 없었던 것이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인생은 얼마나 밋밋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우울했었다. 지금이 내 인생의 마지막 1분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최고의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오호 통재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현실은 냉혹하고, 선택의 폭은 좁으며, 파격을 감당하기엔 우리의 심장이 너무 허약한 까닭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클라이맥스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간절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수 있는 한 장면, 그 추억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것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전복을 꿈꾸는 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끝내고자 한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어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성공을 거두었을 때, 디네센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마도 그녀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가장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성공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글을 쓸 때의 기분은 마치 갑자기 하늘을 날아오르거나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