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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와 쿠로의 희망 만들어가기 - 『철콘 근크리트』

다른 존재인 시로와 쿠로는, 함께 존재함으로써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희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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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타이요를 처음 만난 것은 『핑퐁』이었다. 몇 년 전 우연히 보게 된 『핑퐁』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만화의 하나가 되었다. 프랑스 코믹이나 팝 아트를 연상시키는 세련된 표현의 그림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세계관이었다. 탁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페코라는 소년이 있다. 스마일은 그를 동경하여 탁구를 배웠지만, 페코는 게으른 천재였다. 보통의 재능을 가진 노력파 아쿠마에게도 패배하게 된 페코는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페코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영웅이다. 얼핏 보기에 페코는 잘난 척하는 유아독존형 인간이지만, 사실은 가장 순수하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인간이다. 그는 세상의 잡다한 소리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집중하여 달려간다. 뭐 그러다 보면 『하나오』의 하나오처럼, 덜떨어진 인간이라는 비난도 받게 된다. 그나마 아이일 때는 그런 단순한 열정이 인정받을 수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렇다면 조롱을 받기 십상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영웅은 결국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오토모 가츠히로 이후 일본 만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만화가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탁월한 그림이 눈에 띈다. 꾸불꾸불한 선으로 이어진 마츠모토의 만화는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하다. 또한 오토모 가츠히로 이상으로, 앵글과 장면 전환에서 영화적 기법을 과감하게 끌어들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박력이 느껴진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유럽과 미국에서 각광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하지만 마츠모토 타이요의 내면은 외관 이상으로 훌륭하다. 아니, 심오하다. 『철콘 근크리트』는 가상의 공간인 다카라쵸에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리고 있다. 시로와 쿠로는 다카라쵸에서 고양이라고 불리는, 최강의 악동이자 실질적인 지배자다. 야쿠자도 있고, 양아치도 있지만, 진짜 강자는 바로 시로와 쿠로다. 거리를 날아다니며 돈을 훔치고, 때로는 폭행도 하면서 시로와 쿠로는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 거리에는 오랜만에 돌아온 야쿠자도 있고, 그를 잡으려는 형사도 있고, 기존의 룰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카라쵸를 접수하려는 신흥 조직도 있다. 이제 다카라쵸는 변해야만 한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의 인물들은 사라져야 한다. 혹은 변하든가.

시로와 쿠로는 아이다. 그들은 함께 거친 야생의 거리인 다카라쵸에서 싸워간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생존본능과 폭력이다. 그들은 거침없이 싸우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시로와 쿠로는 서로 다르다. 시로는 ‘순수무애’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이다. 바보 같으면서도, 시로는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다. 쿠로는 그것을 알기에 시로와 함께 살아간다. 만약 시로가 곁에 없다면, 쿠로는 암흑 속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폭력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 폭주할 것이다. 서로 다른 존재인 시로와 쿠로는, 함께 존재함으로써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희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것은 『핑퐁』에서 스마일과 페코의 관계와 흡사하다. 스마일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지만, 왜 이겨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페코는 그저 이기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이긴다. 스마일에게 페코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영웅이다. 스마일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진리를 알려주는 영웅이다. 쿠로 역시 마찬가지다. 시로가 없다면, 쿠로는 살아갈 수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방법은 이미 알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시로가 알려주어야 한다. 시로야말로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를 알고 있는 아이니까.

‘철콘 근크리트’라는 제목은 아이들이 철근 콘크리트를 잘못 발음한 아동어라고 한다. 서로 다른 것을 혼동하여 하나로 인식하고, 서로 뒤섞이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핑퐁』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마츠모토 타이요의 철학을 보여준다면, 『철콘 근크리트』는 우화적인 공간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펼쳐 보인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일본의 젊은이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는 이유는 시대의 공기를 탁월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버블경제가 끝나고, 10년 불황의 한가운데에서 젊은이들이 느낀 답답함과 불안함 그리고 두려움과 분노가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에는 담겨 있다.

『철콘 근크리트』는 우화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의 폐쇄감이다. 그들은 다카라쵸에 갇혀 도망칠 수 없고, 승리자가 될 수도 없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잔인한 현실에서 패한다는 것에 대해 쿨한 인식’을 보여준다. 이 세계에서는 99%가 패배할 수밖에 없다. 아니, 더 나아간다면,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패배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드럽고 따스한 것이 된다. 쿠로가 싸움은 더 잘하지만, 결국은 시로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시로는 다정하고 부드러우니까.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유일한 희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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