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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안톤 체호프, 커피와 붉은 노을, 소파와 스타세일러
이곳은 혹시 이라크의 바스라가 아닐까란 착각이 들 만큼 무더웠던 여름이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론 꽤 쌀쌀해서 후드재킷 없이 나가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더군요.
이곳은 혹시 이라크의 바스라가 아닐까란 착각이 들 만큼 무더웠던 여름이 다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론 꽤 쌀쌀해서 후드재킷 없이 나가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더군요. 며칠 있으면 아쿠아블루보다 더 예쁜 하늘색과 사진이나 모니터로는 느끼기 힘든 오색찬란한 단풍의 자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옵니다. 바야흐로 커피와 트렌치코트, 독서와 재즈, 고양이와 낮잠이(앗?) 어울리는 근사한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이죠. 매년 가을이 오면 더위에 지쳐 송곳처럼 날카로워졌던 성격이 뜨거운 핫초코에 녹아드는 마시멜로처럼 순식간에 녹아버려서는 조금만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참을 수 없고, 별 내용 없는 책에 깊이 공감하여 사색에 빠지기 일쑤고, 존 콜트레인이나 글렌 굴드의 음반이 아니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속 재생이고, 입맛도 없어 음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다면 거짓말이고, 일은 해야 하는데 마음만 붕 떠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든 그런 계절입니다. 이럴 때 억지로 책상에 앉아 수동적으로 일하면 결국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로 인해 스트레스만 받게 되는지라, 가을에 어울리는 아주 작은 사치를 즐기게 되는데요. 작업실 근처에는 아담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즐비하기 때문에 좋은 책과 아이팟 하나면 풍요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며칠 전, 가을은 역시 고전이라 생각하기에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손에 들고 근처의 단골 카페에 가서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만, 스터디그룹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와서는 너무 정신 산만하게 하는 나머지 도저히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눈물을 흘리며 작업실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못내 아쉬워 모카포트로 직접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소파에 누워 홀짝홀짝 마시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창밖으로 짙고 선명한 붉은 노을이 작업실을 비춰주더군요. 가을과 안톤 체호프, 커피와 붉은 노을, 소파와 스타세일러는 정말 근사하더군요. 가을. 좋아하는 책과 함께 사색에 빠져보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모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정작 책 판매는 별 차이가 없어요.’라며 슬퍼하던 편집부 기자의 말이 떠오르긴 합니다만;;; | ||
<안톤 체호프> 저/<박현섭> 역6,300원(10% + 5%)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체호프의 단편소설 아홉 편 수록. 단순한 유머를 넘어서 우수 어린 서정적 미학을 창출해 낸 체호프. 사소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일상의 본질과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한 작품 선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