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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달의 궁전』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나 실의 따위와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나 실의 따위와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쪽을 현명하다고 표현할 순 없는 문제이지만, 보편적으로 전자 쪽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후자 쪽에 가까운 사람인데요, 구구절절 사연까지 적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입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시선은 존재했지만 그 시선의 끝은 인식이 아니라 습관이었고, 식욕이란 게 어떤 건지 잃어버린 채 체중은 점점 줄어들었으며, 하루에 대한 목적과 의미는 결여된 채 흥미와 희망이라는 단어 자체를 잃어버리고 한 줄기 빛도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깊은 동굴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갔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짊어지고 있던 절망과 비탄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에 아무런 방어수단 없이 100% 모두 받아들이고 저 자신을 수면 밑바닥까지 질질 끌고 내려갔던 것이지요. 1년 정도 아무런 일도 안 했기에, 작게나마 쌓아두었던 경력도 무의미해졌으며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쳤고, 주위에선 걱정 어린 말로 절 도와주려 했지만, 전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목적 따위는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기에, 아무런 걱정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정말 위태위태한 삶이었지요. 하지만 알라딘의 요술램프로 누군가의 소원이 한순간 이뤄지는 것처럼 ‘자, 이제 그만하고 현실세계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정상적인 생활 사이클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금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RUFUS WAINWRIGHT의 노래에 귀 기울일 수 있었으며,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죠. 그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치유’되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어쨌든 어둡고 위태로운 절망이란 배에 느긋하게 누워보고 무언가 배울 수 있는 여유는 20대의 특권이자 매우 특별한 체험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달의 궁전』을 읽으려고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서문처럼 쓰여 있던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이루어 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에는 차츰차츰 무일푼으로 전락해 아파트마저 잃고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그것은 물론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 삶의 출발점으로서.”란 문장을 읽고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물론 포그의 이야기와 저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지만, 제가 저만의 우물에서 빠져나왔을 때 느꼈던 기분을 『달의 궁전』 마지막 페이지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에 또 한 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 ||
<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14,220원(10% + 5%)
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은 자신의 삶을 극단으로 몰아감으로써 인생을 배워나가는 세 탐구자들의 초상을 매혹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공간적으로는 혼잡한 도시에서 부터 황량한 변경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을 배경으로 주인공 3대의 개인사가 펼쳐진다. 그들 모두는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달처럼 퇴락의 길을 걸은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