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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코 밑 사마귀 실룩거리며 선득선득한 웃음이 매력적인 박점순 할머니는, 쌈짓돈 다 털어 김씨 할아버지를 위해 하루 두 끼 맛난 김밥을 준비했다는데… 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시들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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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개발로 들꽃 같은 산동네 집들이 하나하나 쓰러졌다. 포클레인 기어가는 소리에 사람들은 쓰라린 기억들을 가슴에 주어 담고, 하나씩 정든 대문을 나섰다.혼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산동네 아래에 생겼다. 다섯 칸 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벌어진 것이다.


도시 재개발로 들꽃 같은 산동네 집들이 하나하나 쓰러졌다. 포클레인 기어가는 소리에 사람들은 쓰라린 기억들을 가슴에 주어 담고, 하나씩 정든 대문을 나섰다.

혼자 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산동네 아래에 생겼다. 다섯 칸 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벌어진 것이다.

김치순 할아버지와 아삼륙 장씨 할아버지가 오드리 헵번 뺨치는 미모의 이복순 할머니를 놓고 사랑싸움을 벌인 것이다. 싸움은 장씨 할아버지의 완승이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장씨 할아버지의 두 손을 번쩍 들어주었다.

짝사랑하던 이복순 할머니를 빼앗긴 김치순 할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막걸리 추렴이다. “이복순이… 네가 나에게 상처를 줘.” 순금처럼 단단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움펑 꺼진 할아버지 눈가엔 눈물까지 그렁 맺혔다.

벚꽃 화사한 어느 봄날, 김치순 할아버지의 연적(戀敵), 장씨 할아버지는 눈치도 없이 이복순 할머니를 데리고 꽃구경을 다녀왔다.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마당을 들어서는 순간, 큼지막한 요강 하나가 마당으로 휙 날아왔다.

‘쨍그랑.’

분을 이기지 못한 김치순 할아버지가 냅다 요강을 들어 마당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곱다시 피어난 생강나무 꽃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다섯 살 아래 장씨 할아버지는 이에 질세라 어깨까지 곱송그리며 맵짤하게 쏘아붙였다.

“아니 보자보자 하니까, 이 성님 너무하시네.”

“뭐가 너무해 이놈아.”
“왜 애먼 요강을 던지고 그래요. 요강 던질 힘 있으면 텃밭에 나가 호박 구뎅이나 하나 더 팔 일이지.”

“이놈아, 호박 구뎅이 팔 힘 있으면 네 놈을 죽사발로 만들겠다. 이놈아,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네놈이 한 짓을 내가 다 훤히 꿰고 있어. 이놈아….”

불콰하게 술에 취한 김치순 할아버지 머리 위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떠름한 낯빛의 장씨 할아버지는 그 기세에 눌려 금세 꼬리를 내렸다. 우두망찰 서 있던 이복순 할머니도 남우세스러웠는지, 불그죽죽한 얼굴을 흔들며 방 안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사나운 꼴 보느니 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김치순 할아버지는 그날로 단식을 선언했다. 단식은 보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옹고집 할아버지를 뜯어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김씨 할아버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마당에서 들려왔다.

“저러다 쓰러지고 말 거구먼. 참말로 딱한 양반일세.”
“봄에는 조쌀해 뵈도 강단은 있는가 보네. 보름을 물만 먹고도 저렇게 멀쩡허니 말이야.”

하지만 그 속내를 누가 알았겠는가. 하루 두 번, 남몰래 맛난 김밥을 나르는 손길이 있었으니, 김치순 할아버지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박점순 할머니렷다. 코 밑 사마귀 실룩거리며 선득선득한 웃음이 매력적인 박점순 할머니는, 쌈짓돈 다 털어 김씨 할아버지를 위해 하루 두 끼 맛난 김밥을 준비했다는데… 세월은 흘러가도 사랑은 시들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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