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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가의 회전목마

어린 딸아이를 등 위에 태우고 나는 짱가처럼, 파도처럼 어깨를 출렁이며 신나게 신나게 동요를 불렀다. 동요를 바꿔 불러가며 밤낮으로 행복한 회전목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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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만 쓰겠다고 모든 일을 집어 던진 적이 있다. 두 해가 넘도록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개나리꽃 같은 노란 등불을 켜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벽을 건넜다. 눈물 같은 강을 건넜다. 졸음이 넝쿨장미처럼 쏟아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잠결에 띄엄띄엄 들려왔다.


오래 전, 글만 쓰겠다고 모든 일을 집어 던진 적이 있다.
두 해가 넘도록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개나리꽃 같은 노란 등불을 켜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벽을 건넜다.
눈물 같은 강을 건넜다.
졸음이 넝쿨장미처럼 쏟아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잠결에 띄엄띄엄 들려왔다.
누워 자지 않으려고 줄넘기로 내 몸을 의자에 묶은 적도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은 꽁꽁 묶은 줄넘기를 마술처럼 풀어 헤쳤다.
눈을 떠보면 나는 아랫목에 버젓이 누워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늘로 행군하기 위해 나무는 강해져야 한다.
어둡고 단단한 땅 속을 맨손으로, 맨발로 뚫어야 한다.

착한 아내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아내는 가난으로 빵을 만들었고
나는 고단한 하품으로 빵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말들을 수박씨처럼 가슴 속에 박아 놓아도
아름다운 마음이 될 수 없었다.
무장무장 마음이 아팠으나 절망하지 않았다.
담벼락 위로 몽달지게 피어 오른 나팔꽃들이
나를 위해 행군의 나팔을 불어주었다.
일어나 걸으라고 행군의 나팔을 불어주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수입은 일 원도 없었다.
어린 딸아이가 날마다 놀이공원을 졸랐다.
딸아이는 막 배운 서툰 말로, 회전목마가 타고 싶다고 했다.
놀이공원에 데려갈 돈이 없었다.
놀이공원 대신, 나는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았다.
이불 위에 무릎을 세우고 회전목마처럼 넙죽 엎드렸다.
어린 딸아이를 등 위에 태우고
나는 짱가처럼, 파도처럼 어깨를 출렁이며
신나게 신나게 동요를 불렀다.
동요를 바꿔 불러가며 밤낮으로 행복한 회전목마가 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 눈에 민들레꽃씨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눈물 젖은 아내의 눈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나오지도 않는 하품을 했다.
슬프지 않았다.
건너야할 강이 있었으므로 나는 슬프지 않았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다.
슬펐지만 슬퍼하지 않았다.

슬픔과 기쁨은 서로를 채워주는 빵이다.
서로를 비춰주는 환한 등불이다.
햇볕과 바람이 손을 잡아야, 꽃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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