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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성은 끝나지 않았다

반성한다는 것은 상처에게 길을 묻는 것이다. 상처는 눈물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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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앞에서 눈을 감을 때마다 등짝을 후려치는 꽃다발이 되기도 한다. 반성과 반성 사이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독재 타도를 외치며, 짱돌을 손에 들고 시위 대열의 선봉에 선 적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도덕적 경쟁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 의지로 학생들이 연대해서 시험 거부 투쟁을 벌인 적도 있었다.

나는 벚꽃나무 아래 앉아 한참을 망설였다. 시험 거부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시위를 유도하려고 총학생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시험까지 거부할 명분은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다.

엄마의 가난한 얼굴을 생각하며, 3년 내내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독재정권보다 장학금이 더 아팠다.

가난하다는 것과 명분 없음을 핑계 삼아 나는 시험장으로 갔다. 낡은 군화를 신고 폐차장에서 막일을 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열 명도 채 오지 않은 학생들 틈에 앉아 나는 쪽팔리게 시험을 봤다. 남학생은 나 하나뿐이었다. 시험 보는 내내 얼굴이 홧홧거렸다.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내 실력으로는 꺾을 수 없는 친구도 꺾어버리고 일등을 했다.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해주었다. 친구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비겁했다. 피리를 불어야만 대가리를 쳐들고 심연 속을 기어 나오는 뱀처럼 나는 비겁했다.

비겁했던 그날의 기억은,
쪽팔렸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가슴에 쨍쨍하게 살아 있다.
독사의 이빨처럼 아프게, 아프게 살아 있다.
나의 반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성한다는 것은 상처에게 길을 묻는 것이다.
상처는 눈물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한다.
진실 앞에서 눈을 감을 때마다
등짝을 후려치는 꽃다발이 되기도 한다.

반성과 반성 사이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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