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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 평범한 영화 <화려한 휴가>

전 <화려한 휴가>를 시사회에서 며칠 전에 봤지만, 그 뒤로 리뷰를 쓸 기회 세 번을 모두 놓쳐버렸습니다. 아니, 그냥 넘겨버렸죠. 쓰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의견을 말해보라면, 전 그 영화가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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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를 시사회에서 며칠 전에 봤지만, 그 뒤로 리뷰를 쓸 기회 세 번을 모두 놓쳐버렸습니다. 아니, 그냥 넘겨버렸죠. 쓰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의견을 말해보라면, 전 그 영화가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실존인물들의 요소를 적당히 가져와 조립한 허구의 인물인 주인공들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학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티끌 하나 없는 행복한 민초로 그려진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멀끔했고 이차원적이었고 창백했습니다. 대사와 설정은 그냥 인공적이었고요. 그건 영화를 만든 태도와도 연결되어 있었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고 속으로는 만드는 사람들과 앞으로 볼 사람들의 죄책감을 얌전하게 매만지고 있었습니다. 전 그게 맘에 들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영화는 마땅히 가져야 할 생기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실존인물을 한두 명 정도 축소하고 최대한 가깝게 묘사한 실존인물들 속에 던져 놨다면 더 힘 있고 더 정직하며 더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을 거라는 생각도 해봐요. 여전히 스크린 위에 투영되는 끔찍한 학살은 소름끼치고 사람들의 죽음은 눈물겹지만 <화려한 휴가>가 그리는 역사는 TV 드라마 수준으로 탈색된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전 지금까지 두서없이 한 말을 정리해서 매체에 발표할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게시판에 몇 줄 의견을 쓰고 넘어가 버렸지요. 전 지금도 이 영화에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앞의 문단은 왜 썼느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영화의 질과 호오도는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시사회에서 나와 “*@^u&! 이 영화, 망해버려라!”라고 외치고 싶은 영화도 있지만 그런 영화가 꼭 나쁘다는 법도 없죠. 싫은 영화는 그 영화가 나쁘기 때문에 싫은 게 아닙니다. 말하는 메시지나 태도 때문에 싫은 때가 더 많죠. <화려한 휴가>도 그 비슷했습니다. 전 이 영화가 그냥 그랬지만 여전히 잘되길 바라고 심한 소리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 그건 이 영화가 자극하려 하는 역사적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화려한 휴가>가 흥행에 성공하고 좋은 비평을 받는다고 해도, 그건 영화 자체의 질 때문은 아닐 겁니다. 우리의 의무감 때문이겠죠. 어느 순간부터 관객과 비평가들이 언젠가 충무로에서 비교적 보편적이고 안전한 ‘휴머니즘’ 터치로 그려진 광주 영화가 나와서 <실미도>처럼 엄청난 히트를 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그 영화가 <화려한 휴가>와 전혀 다른 내용이어도 역시 관객과 비평가들의 반응은 비슷한 내용으로 수렴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긴 아무리 허구를 삽입해도 벌어진 역사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정직한가?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특정 영화의 질적 평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니죠. 게다가 <화려한 휴가>는 분명히 관객을 그냥 극장 안에 방치하지는 않을 겁니다. 최근 시사회에서도 관객의 반응은 상당했습니다. 27년 전이면 그렇게 오래된 역사도 아니죠. 많은 사람이 그 사건을 기억하고 몇몇 사람은 직접 체험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그 부채를 지고 있죠. 아무리 평범한 영화라고 해도 반응하지 않는 게 이상하죠. 정말 못 만든 영화여야 그게 가능할 텐데, <화려한 휴가>는 못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저도 못 만든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평범하다고만 할 뿐이지.

뭐,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우리도 머리가 식어 이 영화에 대해 온전한 평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이미 그때쯤이면 이 영화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고 난 뒤일 걸요. 그 일이 무엇이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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