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
제가 기억하는 첫 낙서는 여섯 살 때 스케치북 표지에 있던 펭귄 그림의 모작이었습니다. 당시 나름대로는 정말 똑같이 그렸다는 자부심에 다음 날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지만, 몇몇 친구는 자기가 보는 앞에서 다시 그려야 믿어주겠다는 엄포를 놓았죠. 그래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그 펭귄 그림을 왼편에 두고 다시 그려보았지만 나쁜 마법사의 주술에 자신의 능력을 빼앗긴 그림쟁이처럼 조금도 비슷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는 저조차도 ‘어, 이상하다. 어제는 분명히 잘 되었는데…’라며 다시 한 번 따라 그려보았지만, 오른손으로 그린 그림을 왼손으로 따라 그리는 것처럼 형편없는 펭귄을 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뒤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의 의심 어린 시선과 웃음소리에 크게 상처받고 억울했지만 그맘때의 어린이들이 모두 그러하듯 다음 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밌게 뛰어놀았지요. 하지만 너무 당황했던 상황이라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낙서로 시작한 그림이, 풍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사고 싶은 책이나 음반을 마음껏 사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지도 않은 생활을 가능하게 해줬고,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로운 틀 안에서 할 수 있다는 이상적인 목적을 실현해 주어서 가끔은 ‘아…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자족하며 좀 더 열심히 하려고 연필을 쥐곤 합니다. 전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학원이나 학교에서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고 좋아하는 화가나 만화가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를 가슴에 담아두고,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완벽한 소설의 기준으로 삼고 집필하는 작가 지망생처럼 가슴속에 큰 기둥이자 잣대로 정해놓고 감상하고 습작하며 공부하곤 했습니다. 그중에선 불같이 타올랐다 식어버리는 연애처럼 ‘이 사람 그림 정말 최고군. 이건 혁명이야!!’ 하고 열광적으로 좋아하며 몇 날 며칠을 눈에서 떼지 않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식상해져서는 ‘아아 역시 클림트만 한 그림은 없는 걸까’라며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접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에 감동하며 한 장 한 장 소중히 넘기게 하는 작가가 몇 명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장 자끄 상뻬’입니다. 그가 표현하는 공간이나 연출 그리고 포근함은 제가 가장 감동하고 존경하는 부분이며 음악을 그림으로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그림을 처음 접한 건 쥐스킨트와 함께 작업한 『좀머 씨 이야기』였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회화적이고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세련되고 캐릭터성이 강한 만화에 심취했던 때라 자유로운 선과 따스한 공간 그리고 너무나 쓸쓸해 보이는 그림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 후로 열린책들에서 상뻬의 책을 잔뜩 출간해 주어서 구입해 보면서도 무척 감사했던 기억도 있고 <뉴요커>나 <렉스프레스> 등에 기고한 일러스트를 무척 보고 싶은 나머지 외국 서적을 열심히 뒤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르네 고시니와 함께 작업한 『꼬마 니콜라』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상뻬가 글, 그림 모두 작업한 『아름다운 날들』이나 『어설픈 경쟁』 같은 책을 더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일러스트레이터의 범주를 벗어나 작가로서 만들어 낸 책이기에 좀 더 자유롭고 풍자적이며 위트 넘치기 때문인데요, 가끔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과 그림 한 장으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 ‘현대 사회에 대해서 사회학 논문 천 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이 절로 이해가 갑니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 상뻬의 『프랑스 스케치』란 책이 새로 나왔기에 소개해 봅니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에 출간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이제야 한국어판이 나왔습니다. 사실 이번 책은 단 한 줄의 글도 없어서 번역할 시간도 필요 없었을 텐데 왜 이렇게 늦게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전 정말 보고 싶은 나머지 올 초에 프랑스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 배송비 포함 40유로나 주고 샀는데 말이죠. (40불도 아니고 40유로라니 정말 타격이 크다니까요.) 상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선 그가 그려낸 프랑스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 빠지시길 바랍니다. 전 프랑스판을 가지고 있지만, 기념으로 한 권 더 구입해야겠네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발표는 정말 신나는 일이라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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