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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 고독으로 비춰보는 라틴아메리카의 환상적 이야기 - 『백년동안의 고독』

“소설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편협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G.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밀란 쿤데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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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편협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G.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꽂아 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밀란 쿤데라(소설가)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 뒤페이지 추천사 중에 유독 밀란 쿤데라의 가시 돋친 한 마디가 눈에 들어옵니다. ‘소설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단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 문인들뿐 아니라, 서구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부 한국의 식자층도 포함됩니다. 이른바 서사를 통한 세계의 재해석과 이를 통한 예술적 감흥의 부흥은 문자가 없었던 구전 서술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오랜 예술 역사 중 하나지만, 감히 그 죽음을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높은 금자탑 하나가 1970년대에 세워진 바 있습니다.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이 바로 그 금자탑의 이름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Gabriel Jose Garcia Marquez, 1928-)
남미 환상문학의 진수이자, 마술적 리얼리즘의 완성적 시초며 동시에 쿤데라로부터 소설의 죽음을 반증하는 예시로 꼽힌 『백년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1975년에 완성한 장편소설입니다. 부엔디아 가문이라는 한 집안의 내력에 관한 백여 년이 넘는 역사를 유구하게 풀어내는 소설은 단지 가족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가문이 세상과 얽히고 등지고 일어서고 주저앉는 줄거리를 통해 인간 자신의 고독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부엔디아 집안의 시초인 1대 주인공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라틴아메리카 본토 출신의 힘 좋고 머리 좋고 성격 좋은 성실한 담배 경작 농민입니다. 그는 스페인 상인 출신 집안의 딸인 우르술라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데, 이 두 집안은 사실 오랫동안 서로 혼인 관계를 맺어 혈통이 거의 유사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근친혼에 의한 기형아 출산이 두려운(실제로 그런 전례도 있었던) 두 집안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도마뱀을 낳으면 도마뱀을 예쁘게 키우면 된다’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확고한 신념은 모든 반대를 돌파합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두 집안의 우려는 지속됩니다. 우르술라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혼인이 반드시 재앙을 불러올 거라면서 우르술라에게 절대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말라고 무서운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러나 신혼 초의 잠자리에 대한 이러한 스트레스는 결국 동네에서 살인이 나는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만들고, 결국 두 사람은 동네를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갑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어느 늪지대 근처에 다다라서 부부는 마침내 그들을 따라온 사람들과 함께 ‘마콘도’라는 이름의 마을을 세웁니다.

성실하고 머리 좋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노력으로 마콘도는 점점 큰 마을로 성장합니다. 새로 이주해 오는 사람도 늘고, 부엔디아 가문도 두 아들과 막내딸을 키우며 점점 마을 유지로서의 위세를 갖추어 갑니다. 마을이 커지자 시시때때로 떠돌이 집시 유랑단이 찾아오는데, 항상 신비롭고 새로운 마술과 과학을 들고 오는 통에 호기심 많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넋을 잃습니다. 황금을 만드는 물약, 망원경, 끓는 얼음에 나는 양탄자까지 뒤섞인 신비로운 아이템에 관심을 갖던 호세는 집시 중 세계의 지식에 통달했다는 연금술사이자 예언자 멜키아데스의 경이로운 지식 세계에 매료됩니다.

삶과 죽음을 포함한 인간 역사를 모두 꿰뚫는 멜키아데스는 호세에게 많은 지식과 연구기기를 전해주고 또한 암호로 쓴 마콘도 100여 년에 대한 예언서까지 양피지로 남겨 줍니다. 부엔디아 가문의 많은 이가 멜키아데스의 암호문을 해독하려고 달려들지만, 그 해독은 쉽지 않으며 소설 결말부에 가서야 그 의미가 밝혀지면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한 가문의 이야기지만 『백년동안의 고독』은 마콘도라는 가상의 배경을 소재로 하여 라틴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역사를 풀어갑니다. 스페인 상인 출신인 우르술라의 집안 배경은 콜롬비아 지역을 식민 지배했던 스페인의 역사를 보여주고, 우르술라의 4대조 조상 시절에 영국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마을 침공으로 정착지를 옮겼던 이야기는 영국의 침공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입니다.

무대를 가상공간인 마콘도로 옮긴 이후에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역사 서술은 계속됩니다. 마콘도가 성장하면서 세상에 알려지자 곧 국가 정부는 마콘도에 군수 한 명을 파견하여 이래라저래라 간섭을 시작하는데, 이때가 대략 콜롬비아 지역에 대한 식민통치가 끝나고 자치 정부가 설립되어 기존 원주민 도시에 대해 통제가 시작되는 즈음입니다.

이후 마콘도에 들어와 성업하는 스페인 서점은 원주민 지식이 서구 외래 지식에 밀려나는 모습에 대한 묘사며, 마콘도에 설립되는 미국 바나나 농장과 바나나 농장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 이어지는 진압과 대학살은 모두 알다시피 미국 자본주의가 라틴아메리카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던 많은 노동문제에 대한 암시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이러한 정부의 행태에 반기를 들고 30여 차례의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혁명군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언제나 끊이지 않았던 정치 불안과 쿠데타 등에 대한 배경 설명입니다.

그렇기에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을 더욱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으려면 라틴아메리카라는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항해기술 발달로 유럽인의 접근이 있기 이전, 마야·아즈텍·잉카로 상징되던 아메리카 고유 문명 시대의 사람들이 지녔던 감수성, 피사로의 침략 이후 함께 들어온 유럽식의 문화와 사고가 융합되어 오늘날의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혼혈 과정은 다른 문명의 접점에 비해 매우 놀라운 접착력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는데, 물라토·메스티소와 같은 혼혈 인종이 현재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습이나 북아메리카보다 상대적으로 발달한 원주민 민족주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유럽 문화 등의 모습은 라틴아메리카만의 독특한 문화 양태를 낳은 바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타 문명권보다 혼혈 등에 대한 시선이 매우 자유로운 소설 전반의 분위기는 민족 정체성을 중시하는 한국인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번 등장하는 중심 테마인 근친혼에 대한 이야기도 혼혈민족이 대다수인 라틴아메리카의 특성상 단일 부족에 의한 종족 전승에 대한 근본적 불안감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터부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유별나 보이는 문화적 행동은 대개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의 특수성에서 비롯합니다.

라틴아메리카라는 특수성은 비단 소설의 소재만이 아닌 화법에도 적용됩니다. 서구에서 『백년동안의 고독』에 붙인 평론적 수식어인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말도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원주민의 구성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최초 스페인 치하의 식민사회는 스페인어 기준 문맹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에 대한 욕구는 강했고, 특히 오랜 부족사회의 전통이 이어진 터라 과거 신화 이야기 등의 구전 전승은 상당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전승의 구조는 식민지 시대 이후 식민지 시대의 이야기까지도 일종의 신화로써 전승하면서 환상과 허구가 가미되어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을 낳았고, 마르께스 등의 작가들은 이러한 환상적 구술을 겪으며 자라 그 내용을 문학이라는 장르에 옮겨 담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너무도 담담하게 마치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풀어내는 마르께스의 화법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더욱더 신비롭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 레미디오스는 어느 날 갑자기 육신과 영혼이 함께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해 버리고, 우르술라의 첫째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가 죽은 뒤 흐르는 피는 아내의 방을 피해 흘러 흘러 어머니 우르술라의 주방 앞에서 멈춥니다. 동네 아이들은 집시가 가져온 나는 양탄자를 타고 놀고, 소설의 결말에서는 마콘도라는 ?을 자체가 휭 하니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조차 소설은 자연스럽게 끌고 가며, 그 자체가 리얼한 현실로 나타나는 『백년동안의 고독』은 환상과 현실마저도 혼혈의 모습을 지닌 채 같은 배경 안에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백년동안의 고독』 속 가상의 도시 ‘마꼰도’의 무대인 고향 아라카타카를 찾은 마르께스

『백년동안의 고독』이 딛고 서 있는 기반은 결국 ‘융합’이라는 소재입니다. 원주민과 유럽의 융합, 남자와 여자의 융합, 환상과 현실의 융합이 만드는 다양한 모습이 소설의 모든 배경을 만들며, 주인공들은 이 융합에 대한 설렘과 금기 속에서 헤맵니다. 모든 것이 혼재된 그 복잡한 배경의 마콘도 속에서 주인공 부엔디아 가문의 고독이 시작됩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고독’은 가문 전체의 사람들이 멍에처럼 이고 가는 개념입니다. 소설은 단 한 번도 ‘누구누구가 고독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지만, 그들은 수시로 고독이라는 주제와 싸웁니다. 마콘도의 창시자인 주인공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신기술에 대한 집착을 넘어 광기를 보이면서 마을 나무에 묶여 고독한 최후를 마치고, 그 뒤를 잇는 가문의 여러 사람 또한 매번 연구실에 처박혀 버리거나 남모르게 마을을 떠나 수십 년을 살아가는 등의 고독을 겪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리뷰나 감상이 이 고독을 단지 고독 그 자체로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백년동안의 고독』의 고독을 고독 자체로만 본다면, ‘고독하다’라는 당연한 명제 외의 것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융합’이라는 기반과 고독을 함께 본다면 어떨까요?

융합으로 이루어진 라틴 아메리카 사회에서 고독이란 융합 자체를 벗어나는 개념입니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금기로 등장하며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까지를 예언하는 근친혼은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채 오직 가문 내에서만 일어나는 융합이 결국 몰락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융합이 근본인 문명이기에 반드시 융합해야 하며, 고독은 그에 반하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고독 또한 그래서 죽기 전에야 마주하는 고독입니다. 어떤 인물도 한참 살아가는 시기에는 고독하지 않으나, 죽음이라는 대명제 앞에 서게 되는 순간부터 고독을 겪습니다. 고독은 소설에서 멸망 직전에 스스로 안쪽으로 침잠하는 개인의 모습이며 그 고독을 직면하는 개인의 모습이 진실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집착인지에 대해 가치 평가는 내리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모든 인간은 고독하다’라는 명제는 그래서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고독해지는 순간 죽는다’라는 순서 설정이 오히려 『백년동안의 고독』에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부엔디아 가문은 개개인이 겪었던 100여 년간의 고독이 뭉쳐 결국 고독 속으로 사라집니다. 최고의 미녀 레미디오스도, 언제나 활기 넘쳤던 우르술라도, 라틴아메리카를 뒤흔들었던 혁명가 부엔디아 대령도 결국 고독 속에서 사라졌고, 가문의 마지막 또한 충격적인 결말의 묘사 속에 고독하게 사그라져 갑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스포일러가 될까 봐 피하지만, 대부분의 독자가 마지막 장면에 받는 진한 여운에 감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지막 문장이 100여 년의 고독을 가장 고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대학생 시절의 어느 일요일은 아무 생각도 없이 잡은 책에 빠져들어 해 저무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창 밖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은 마력적인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은 대신 책 맨 앞장의 가계도를 반드시 체크하면서 보셔야 편합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매번 똑같거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뒤섞이는 라틴아메리카라는 곳에 환상으로 선 마콘도 마을. 그 속에서 일어난 100여 년의 인간사 속에 독자 자신도 융합되는 순간이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융합이 끝나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느끼는 고독이 우리가 읽은 소설에 대한 감상이 되겠지요. 이러한 독특한 감상을 남기는 통에, 책은 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감히 소설의 죽음을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례로서 자리매김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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