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일찍 온 초여름 더위에 들끓었다는 6월 초의 일요일 오후, 나는 침대 속에 있었다. 금요일부터 1박 2일 동안 퍼마신 술 때문에 숙취로 머리가 아팠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있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금 울었다. 『고독한 글쓰기』에 나오는 뒤라스의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잠잘 때 얼굴을 가리는 버릇이 있다. 나는 나 나 자신이 무섭다.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 술을 마시는 것은 나 자신을 잊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잊기 위해. 알코올성의 고독을 몰아넣는 것이다.” 고독,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고, 고독이야말로 생각하고 추론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뒤라스는 400평방미터의 큰 집에서 혼자 잠들며 종종 수백 헥타르 되는 마을처럼 큰 카페테리아로 밤 외출을 한다. “그곳은 새벽 3시에도 대만원이었다.” 난 그 문장이 맘에 든다. 새벽 3시에도 대만원인 곳, 우리들이 잃어버린 장소.
“내 침실은 침대도 아니고 그곳은 어떤 창이고 검은색 잉크로 쓰는 습관과 희미한 잉크의 흔적들이 있는 그런 탁자이고, 그런 의자이다. 그것은 어디에 가든 내가 항상 되찾게 되는 어떤 습관, 예를 들면 호텔방에서처럼 불면증으로 시달릴 때나 갑작스런 절망을 느낄 때를 대비해 여행용 가방 속에 항상 위스키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나에게는 연인들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연인이 한 명도 없었던 적은 거의 없다. 나는 그 매력적인 연인들에게 차례로 여러 권의 책을 쓰리라고 약속하였다. 나의 사랑은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나는 살아가면서 매일 그런 사실을 느낀다.”
‘나의 사랑은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는 내가 온 평생을 다 바쳐 가장 열렬히 사랑하는 문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뒤라스에게 글을 쓰는 탁자이고 습관이고 대체 불가능한 그 시절의 연인들이었다던 그 침실은, 오늘 나에겐 무엇인가? 허우적대는 침잠이다. 고통스럽게 묻게 된다. 나는 왜 여기에? 무엇을 보려고? 무엇을 이루려고? 인생에 무엇을 원하려고? 묻는 순간 고통이 되는 질문들. 나는 내가 그날 밤 마셔버린 술 위에 빙빙 떠 있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노를 젓는 기분이다. 매일 매일 배신당하는 인생의 장밋빛 환상과 꿈 때문에 그 순간 나는, 1929년의 미국 대공황이 일어나기 4년 전에 태어난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심정이다. 새벽 3시의 왈츠를 듣는 개츠비. 한 점 초록 불빛을 바라보는 개츠비.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미국작가들의 삶은 이렇게 흘러왔다>
*나다니엘 호손 - 그의 할아버지는 마녀재판에서 심판관으로 활동한다. 그의 부친이 죽고 그의 가족은 이상한 은둔생활을 했다. 그의 어머니가 음식 접시를 담은 쟁반을 복도에 두면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자기 방으로 가져다 먹곤 했다. 그는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밖으로 산책하러 나가곤 했다. 그런 은둔생활은 12년간 지속되었다. 그는 얼마 후 지독히 청교도적인
『주홍글씨』를 쓴다.
*애드 거 앨런포 - 가난한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상인인 존 앨런에게 입양된다. 도박에 빠졌다. 나이 어린 신부는 가난과 병마 속에 시달리다 죽는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 시적 주제로는 최고라고 늘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지상에는 다시없을 듯한 아름다운 용모에 놀란다. 그는 한없는 불행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추억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온다. 그가 죽기 전 48시간에 일어난 일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술에 절어서 행려병자로 죽는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일은 결혼식의 신랑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자기의 결혼식을 준비하다가 죽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그는 식욕, 색욕, 명예욕에 물들지 않았다. 소시민의 행복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1854년에
『윌든 혹은 숲 속의 생활』을 쓴다. 그는 간디에게 영향을 준다.
*휘트먼 - 뉴욕에서 태어났다.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휘트먼은 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했는데 그가 나타나기만 해도 환자들의 고통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휘트먼은 이젠 단 한 명의 영웅을 찬양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영웅이라 생각했다. 아메리카는 시인들이 마땅히 축복해야 할 새 땅이라고 생각했다.
*허먼 멜빌 - 가난한 그는 1841년 포경선을 타고 태평양을 항해했다. 남태평양 마르케스 제도에서 원주민에게 붙잡혀 한동안 그들과 살았다.
『모비 딕』을 쓰고 말년의 35년을 세관 직원으로 살았다.
*이들 모두는 1850년에서 1855년 사이에 미국 문학에 가장 중요한 작품을 썼다.
『주홍글씨』『월든』『모비 딕』『풀잎』*마크 트웨인 - 스물한 살에 아마존강의 연원을 탐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뉴올리언스에 도착하고 맘을 바꿔 미시시피강의 수로안내원이 되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핼리혜성이 하늘에서 빛났는데 그는 핼리혜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자기 시대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1910년 핼리혜성이 돌아왔을 때 그는 죽었다. 그는 청교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서부의 작가였다. 그는 재치 있고 활달했다.
*오 헨리 - 사전의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읽는 습관이 있었다. 1895년경 오스틴 텍사스 은행의 행원으로 일하다가 횡령하고 온두라스로 도망친다. 아내의 사망소식을 듣고 돌아와 3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와중에 작가인 업튼 싱클레어는 1906년에 사회주의 이상촌을 건설하기도 한다.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 젊은 시절 용기 있는 자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으나 전선에 배치되기도 전에 전쟁은 끝나버렸다. 전 생애를 통해 청춘, 미, 상류층, 부라는 개념을 통해 완벽을 추구했다. 그의 주인공은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물질적 성공과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 그의 개인들은 초기에는 환상에 빠지고 말기에는 환멸을 맛본다. 그는 재즈의 시대에 살았고 1차 세계대전의 시대에 살았고 대공황 전의 화려한 부를 맛보았던 미국인들이 ‘새로운 시대’라 부르는 그 시대를 살았다. 그에게 환상의 나라, 청춘의 나라, 풍요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같이 가는 이미지들이다.
*전쟁에 복무했던 흑인들, 수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종전 후 재즈 밴드를 따라 할렘과 같은 흑인 동네에서 행진한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쟁 중에 금주법과 여성참정권이 확정된다. 1920년대는 경제적 풍요, 보수주의, 천박한 문화의 시대다. 당대인들은 그 시대를 ‘새로운 시대’라 부른다. 자동차, 전화, 라디오, 비행기, 헨리 포드, 체통을 차릴 필요 없는,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춤추는 여성. 매혹적인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파티에 가는 여성. 밤이 되면 흥분을 찾아 클럽과 무도회장으로 몰려가는 여성. 세속적이고 낭만적이고 소비적인 나날들. 대공황 직전의 허세. 이 모든 것이 빠짐없이 나오는 책은
『위대한 개츠비』다. 자동차, 전화, 라디오, 비행기, 체통이라곤 없는 매혹적인 여성들, 뻔뻔함, 질리도록 질펀한 소비, 허세, 돈, 몰락. 지금 나는 다른 어떤 위대한 작가들보다 피츠제럴드에게 감정이입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네바다 주의 은광으로 돈을 번 ‘댄 코디’의 요트가 슈페리어 호수에 닻을 내리는 순간, 별 볼 일 없는 농사꾼의 아들로 조개를 캐고 연어를 잡던 개츠비는 거친 청년이었지만 마음속엔 화려한 우주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그 보트에 동승하고 몇 년 후엔 군인이 되어 근무 중이던 루이빌이란 도시에서 데이지란 아름다운 처녀와 키스를 나누게 된다. 그녀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알게 된 멋진 여자였고 그가 꿈꾸던 상류층 사람이었다. 그녀와의 키스에는 한 남자의 꿈이 걸려 있었다.
“그들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거리를 함께 걷다가 나무가 한 그루도 없고 인도가 달빛으로 하얗게 물든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곳에 멈춰 서서 서로에게 몸을 기울였다. 일 년 중 두 계절이 변화할 때 오는 신비스러운 흥분을 간직하고 있는 서늘한 밤이었다. 개츠비는 곁눈질로 보도블록이 실제로 사다리가 되어 나무 위 비밀장소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자신의 얼굴에 닿는 순간 그의 가슴은 점점 더 빨리 뛰었다. 이 아가씨와 입을 맞추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꿈을 그녀의 불멸의 숨결과 영원히 결합시키면, 하나님처럼 다시는 마음이 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에 닿자 그녀는 그를 위해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났고 꿈은 실현되었다.”하지만 예일대 출신의 부유한 스포츠맨 톰 뷰캐넌이 나타나 그녀에게 35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하자 꿈은 사라졌다. 가난뱅이 개츠비는 기차를 타고 루이빌을 떠났다. 그리고 5년 뒤, 데이지가 사는 뉴욕 롱아일랜드 이스트엔드 맞은편 웨스트엔드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유하고 불안하고 비밀에 휩싸인 미스터리한 신사 개츠비가 나타난다. 그에 대한 온갖 소문이 돌지만 정작 그는 한군데만 본다.
“50피트 떨어진 곳에 또 한 사람의 모습이 이웃집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나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서서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개츠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팔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뻗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가 부르르 몸을 떨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멀리 조그맣게 반짝이는, 부두의 맨 끝자락에 있는 것이 틀림없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사랑하는 여자를 불러놓고 기껏해야 구석구석 집 자랑을 하고 영국제 셔츠를 구경시키고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다고 자랑하고, 금주법을 악용하고 도박꾼과 결탁한 그 시대 속물의 완성판 개츠비를 그래도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문장에 다 나온다. 홀로 완전한 세계를 가졌던 적이 있다는 점에서. 그 완전한 세계를 위해서 어리석은 방법으로 몸부림을 쳤다는 점에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가 내세운 셔츠나 집이나 자동차가 아니라 한 점 불빛이었다는 점에서. 파멸 당함으로써 우리에게 허상이 뭔지 알려줬다는 점에서.
개츠비는 단 한 명뿐인 그의 연인을 호출하기 위해 매주 눈부시고 황홀한 수많은 파티를 연다, 그 파티에 데이지가 마침내 오던 날, 희미하지만 끊임없는 웃음소리, 차도를 오르내리던 자동차 소리에 섞여 흘렀던 음악이, 바로 슬픈 왈츠 <새벽 3시>였다.
눈부시게 환한 분홍빛 양복을 입고 여름의 마지막 햇볕 아래 하얀 계단을 배경으로 서 있던 개츠비는 일말의 도덕적 양심도 없는 데이지 부부 때문에 허망하게 죽게 된다. 그의 장례식은 지독하게 쓸쓸했고 데이지는 조문조차 보내지 않았고 성대한 집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 느꼈을 경이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고 그의 꿈은 너무나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붙잡을 수 있었을 것 같았으리라. 그 꿈은 이미 도시 저쪽의 광막한 곳에 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나는 왜 개츠비를 읽는가? 세상에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행복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려 주기 때문에 개츠비를 읽는다. 초록 불빛은 있어도 그 불빛에 이르는 방법을 알 수 없는 날, 개츠비를 읽는다. 모든 순간은 상처를 주고 마지막 순간은 목숨을 앗는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에 개츠비를 읽는다. 나의 절망 때문에 우는 날은 개츠비를 위해서도 울 수 있다. 뒤라스 식으로 말하면 눈물 흘리는 것이 쓸모없다 할지라도 눈물은 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절망은 만져지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전 생애를 통해 무엇인가를 찾아 헤맸다. 나는 이마에 새벽의 샛별을 이고 다니는 자였다.’ 이건 미국 인디언들의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을 개츠비에게도 바치고 술에 전 나에게도 바치고 한 점 불빛을 가슴에 품고 있는 탓에 끝없이 불안한 우리 모두에게 바친다. 개츠비는 우리에게 메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