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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다, 뮤지컬 <스핏 파이어 그릴>

예상보다 더 아담한 무대, 조명을 통해서만 간간이 전환되는 무대 연출, 율동 한 번 없는 밋밋한 장면들. 그래도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이라 고집할 수 있다면 극 전개의 절반 이상을 노래로 한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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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핏 파이어 그릴>은 지난 1996년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관객상을 받은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무대는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교도소 복역을 마친 펄시가 ‘길리아드’라는 작고 재미없는 마을에 머물면서 겪는 차별과 편견으로 시작된다. 무성한 소문, 냉대와 뜻 모를 질타.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힘없는 이방인도 볼 수 있는 ‘길리아드’의 아름다움과 축복을 보지 못하고, 어딘가 다른 곳에 있을 행복을 좇아 ‘지금’을 허비하고 있다.

참으로 소박한 뮤지컬

요즘 소극장 뮤지컬이 강세다. 웬만한 연극 무대보다 작고 무대 전환도 없지만, 탄탄한 구성과 멋진 하모니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겠다며 여기저기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화려한 춤과 노래,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멋진 무대 연출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볼거리 없는 심심한 무대겠지만, ‘저예산을 통한 뮤지컬의 대중화’라는 입장에서는 꽤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잘 찾아보면 비록 눈은 다소 심심함을 토로하지만, 머리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바로 뮤지컬 <스핏 파이어 그릴>을 꼽을 수 있겠다. 예상보다 더 아담한 무대, 조명을 통해서만 간간이 전환되는 무대 연출, 율동 한 번 없는 밋밋한 장면들. 그래도 연극이 아니라 뮤지컬이라 고집할 수 있다면 극 전개의 절반 이상을 노래로 한다는 정도. 그리고 현악과 기타, 아코디언이 어우러진 라이브가 무척 격정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색다른 멋을 맛보는 뮤지컬

이렇게 볼거리가 빈약하니 다른 요소까지 부실하면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다행히도 뮤지컬 <스핏 파이어 그릴>은 개성파 연기자들의 튼실한 연기력으로 빈약한 무대를 메운다. 특히 연기자들의 남다른 변신이 눈에 띈다.

일단 여주인공 펄시 역의 조정은은 그동안 뮤지컬 <미녀와 야수>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에서 입었던 우아한 드레스를 벗고 거칠고 털털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옷차림에서 말투, 행동까지 미처 몰랐던 보이시(boyish)한 매력을 물씬 풍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지킬 앤 하이드> 등으로 유명한 이혜경은 이번에도 현모양처 역을 맡았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도 이혜경은 <지킬 앤 하이드>에서처럼 다른 여배우와 듀엣을 선보였는데, 역시 혼성 듀엣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이혜경 특유의 여성스럽고 감미로운 음색이 조정은의 힘 있고 다소 허스키한 음색과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것이다.

드레스를 벗고 털털한 연기에 도전한 조정은

이번 무대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아마도 조유신과 최나래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을 때 가장 돋보이지 않던가. 연기자 또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배역을 맡을 때 그 숨은 끼를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

<지하철 1호선>이나 <폴인러브> 등을 통해 봐왔던 조유신에게 이런 멋진 모습이 있을 줄이야. 다정다감하고 차분한 연기는 물론 성우를 능가하는 멋진 목소리에 연방 감탄사를 쏟아내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연기는 몰라도 목소리는 예전 무대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아챘을 텐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또한 최근 <올슉업> 등을 통해 독특한 감초연기를 선보이는 최나래도 이제야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한결 자연스러운 수다쟁이 연기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데, 뭐랄까 그냥 그냥 봐왔던 배우들에게 처음으로 애정을 갖게 된 느낌이다.

연기자들의 색다른 발견! 조유신, 이주실, 최나래

진정한 삶의 의미, 행복을 생각하게 하는 뮤지컬

무대는 작품의 중심이 되는 ‘스핏 파이어 그릴’이라는 식당을 팔려고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색다른 분위기로 접어든다. 특별한 사연을 보내는 사람에게 몇 년째 팔리지 않는 식당을 거저 주기로 한 것이다. ‘주방이 있고, 2층은 주거 가능’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왔던 식당은 광고를 내려고 좀 더 치장을 하다 보니 펄시의 생각이 더해져 ‘아름다운 숲과 멋진 골짜기가 있고, 인심 좋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단 하나뿐인 그림 같은 식당’이 된다. 그리고 정작 마을 사람들은 떠나려고 발버둥치는 ‘길리아드’에 살고자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사연을 보내온다.

식당을 얻으려는 수많은 사연에 마을은 활기를 되찾는다

이쯤에서 명석한 이들은 ‘허위·과장 광고’를 생각할 수 있겠다. 아마 이들이 적당한 사연에 식당을 넘겼다면, 그래서 새로 이사 온 이들도 재미없는 길리아드 생활에 무료해진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에 실린 문구는 ‘허위나 과장’이 아닌 ‘미처 깨닫지 못했던 모습’일 뿐이었다. 식당을 팔려고 광고를 내고, 이방인 펄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길리아드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행복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서 문득 나 자신을 광고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쉽게 ‘자기소개서’를 생각해보자. 조금은 못난 부분을 가리고 거짓 모습도 더할 수 있겠지만, 결국 나라는 사람이 그 정도 쓸모 있고 멋진 사람은 되지 않겠는가? 아니, 적어도 그런 모습을 갖출 가능성은 지닌 사람일 것이다. 이 화창한 봄에 혹시 ‘자아비판’의 시간을 일삼는다면 뮤지컬 <스필 파이어 그릴>을 보자.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한 자기 안의 멋진 모습과 닫아 둔 행복의 포문을 열 실마리를 찾아보자.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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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핏 파이어 그릴>
2007년 5월 12일 ~ 8월 5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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