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두 번째 이야기
고전을 읽으면, 일단 시공간이 전혀 다른 매트릭스에 들어가는 것과 같거든요. 그렇게 되면 삶을 굉장히 큰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고, 눈앞에 있는 걸 좇아가다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이런 무모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줍니다.
개미가 두 눈을 부릅뜨고도
코끼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어인 일인가?
보이는 바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한 눈을 찡긋 하고 봐도
개미를 보지 못하니
이는 보이는 바가 너무 가까운 탓이다
연암집에 나오는 글인데요
열하일기에서는 '차이를 사유하라'에 실려 있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즉 '똘레랑스'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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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
모두 읽어요 / 날마다 읽어요 /
좋아하는 책을 읽어요 / 그냥 읽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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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라디오 책 읽는 사람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를 읽어드릴게요.
『열하일기』 속에는 우리가 잘 아는 『허생전』이나
『호질』 같은 소설이 들어가 있는가 하면
광활한 중국여행기가 들어있는 문명비평서라고 할 수 있어요,
10년째 열하일기를 읽어온 고미숙 씨는
『열하일기』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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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고미숙
『열하일기』는 연암의 인생의 노하우와 삶의 지혜,
이런 것들이 완전히 총체적으로 드러난 텍스트고,
일단 배경 자체도 시공간이 굉장히 넓습니다
그 텍스트랑 만나게 되면,
평생의 든든한 백이나 친구를 가진 것 같은
풍요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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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고미숙
내 이제야 도를 알았도다!
명심(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잗달아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가 말에 밟혀서
뒷 수레에 실려 온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 주고
강물에 떠서 무릎을 구부려
안장 위에 발을 올리곤 옹송그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궤석(안석과 돗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하며 생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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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태어난 마을을
한번도 떠나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이 태반이었던
18세기 중국을 여행하는 일은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일입니다.
요즘은 학창시절에 어지간한 나라는
다 가본 학생들도 많은데요,
그래도 그 때나 지금이나
여행의 의미가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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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신윤주
이 여행이 시작되는 즈음, 연암은
압록강을 건너며 물었다.
“그대, 길을 아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길이란 바로 저 강과 언덕 사이에 있다.”고
이제 여행의 마지막 장에서
연암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그대, 길을 잃었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길은 사이에 있다’와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이 둘은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같은 말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말일 수도 있다.
물론 두 가지 다 ‘눈을 믿지 말라’,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걸
말한다는 점에선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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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고미숙
여행을 가서 내 삶이 바뀌었다, 이럴 때는
그곳에 가서 어떤 새로운 '관계'가 구성됐을 때거든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 거기에 있는 자연과
'접속'을 해야 되거든요
접속을 하려면 내 신체가 전혀 다른 관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열려야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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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신윤주
이제 연암의 여행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열하에서의 시간도 곧 끝날 것이다
그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를 따라나선
우리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대체 누가 그걸 알 수 있으랴
다만, 분명한 건 연암도 우리도
무릇 '길 위의 존재'라는 점이다
길 위에서 나고 길을 걷다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하는 존재
하여, 여행은 곧 끝나겠지만,
그때부터 연암은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삶이 길이고, 길이 곧 삶이 되는 여행을
'길이 끝나자 여행은 시작되었다!'고
할 때의 그런 여행을
그렇다면, 그와 함께 먼 길을 동행한 우리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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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씨는 지금
봄꽃이 활짝핀 남산 아래 둥지를 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동의보감』을 읽고 있습니다.
연암에 이어 허준과 우정을 나누는 셈인데요,
복잡한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고전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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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고미숙
고전을 읽으면, 일단 시공간이 전혀 다른
매트릭스에 들어가는 것과 같거든요
그렇게 되면 삶을 굉장히 큰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고,
눈앞에 있는 걸 좇아가다가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이런 무모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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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지식을 배우는 건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이죠.
우리에게 그 친구는 바로 책이 아닐까요.
오늘 들으신 프로그램은 저희 KBS 홈페이지 kbs.co.kr과
온북티브이 홈페이지 onbooktv.co.kr을 통해
보이는 라디오로 언제든지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책 읽어 주는 사람 신윤주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