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흠… 남은 시간을 어디서 보낼까나….’ 홍익문고에 가서 책이나 읽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곳이 바로 얼마 전 알게 된 ‘밍기뉴 북카페’였다. 부랴부랴 수첩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아내곤 전화를 걸었다. 상냥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 그 길로 쭉 오셔서요. 그 건물 7층 '연세 해맑은 치과'로 들어오시면 돼요.” 엥? 치과로 오라고? 이게 뭔 소리? 일단 안내해준 대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2호선 신촌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간 다음 현대 백화점을 지나 홍대 방향으로 쭉 걷다 보면 캠퍼스 웨딩홀 건물이 나오는데 거기 7층에 북카페 밍기뉴가 있다. 물론 안내해준 대로 7층에 도착하니 '연세 해맑은 치과'라는 간판만 보였다. 깔끔하고 조용한 치과였지만 왠지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치과라면 두려움의 대상이니까. 하지만 용기를 내서 자동문을 지나 들어서니 환한 미소의 간호사님이 친절하게 맞이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밍기뉴 북카페를 찾아왔다고 하자 오른쪽으로 안내를 해준다. 오호~~
치과의 거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탁 트인 넓은 공간에 펼쳐진 북카페의 전경은 편안하고 조용한 서재와 다름없었다. “천천히 구경하세요.” 치과에 가면 흔히 들리는 그 공포의 드릴 소리 대신 전면에 배치된 DVD 플레이어에서는 최신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치과 특유의 소독약 냄새 대신 은은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또 다양한 분야의 신간과 구간이 빼곡히 채워진 갈색 책장이 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어떤 차를 드릴까요?” 친절한 웃음의 간호사분이 가리키는 메뉴를 살펴보니 이곳 주인장은 커피에도 일가견이 있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커피가 예쁜 글씨로 쓰여있었는데 물론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 북카페 밍기뉴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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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웃음의 간호사분과 커피 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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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치노 커피를 하나 주문하고 책을 고르는데 하얀색 가운을 입은 예쁜 여자분이 인사를 건넨다. 연세 해맑은 치과의 원장 한수연 님이다. 그녀에게서 밍기뉴의 역사에 대해 잠깐 들어보기로 했다.
“저랑 같이 치과를 운영하는 임선아 원장님이 책을 무척 좋아하세요. 그래서 이곳 신촌으로 치과를 옮겨 개원을 할 때 한쪽에 북카페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했어요. 그렇게 해서 밍기뉴가 탄생했지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제제의 둘도 없는 친구인 ‘밍기뉴’처럼 이곳도 지역민에게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치과보다 북카페가 차지하는 공간이 좀 넓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녀는 “다른 친구들이 그래요. 그 넓은 북카페에 진료실을 만들면 더 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뭐 하러 그렇게 쓸데없이 공간을 만들었느냐고요. 하지만 저희는 앞으로 공간을 좀 더 늘려나갈 생각인 걸요? 어쩌면 그렇게 자꾸만 넓어지다 보면 치과에서 북카페로 전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지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밍기뉴를 찾아오는 한, 아마도 북카페를 줄이고 그곳에 치과용 의자를 놓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 행사 알리미 칠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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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PC 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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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두 치과의사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북카페 밍기뉴에는 모두 1,500권 정도의 책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와서 책꽂이를 채웠다고 한다. 어차피 읽을 책이라면 일하는 중에 틈틈이 읽고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읽는 기쁨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점점 밍기뉴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기증도 받게 되었는데 지금은 한 권 한 권 기증받은 책이 더 많다고 한다. 그녀는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앞장을 펼쳐 보여주었다.
『닥터 노먼 베순』이라는 책이었는데 하얀 책장에는 ‘이 책은 00님께서 기증해주신 책입니다’라는 글이 스탬프로 찍혀있었다.
“둘러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렇게 기증해주신 책도 많아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여러 사람이 돌려 본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는 분도 계시고 또 기증이라는 글씨가 찍힌 책을 보면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앙증맞은 어린이용 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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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받은 책을 펼쳐보이는 한수연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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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별도로 관리자를 두지는 않고 짬짬이 임 원장과 한 원장이 번갈아가며 북카페를 관리한다고 했다. 혹 오픈된 공간이기에 책이 분실되는 일은 없는지 물었더니 책을 보여주며 “여기 책이 다 집에서 가져온 손때 묻은 추억이 가득한 책이거나 또 기증자들이 기증해준 책이라 저희에겐 무척이나 소중한 책이에요. 그래서 책마다 도난 방지 태그를 붙여 놓았어요. 그런데도 가끔은 책을 몰래 가져가는 분도 있더라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어쩔 수 없죠. 그냥 정말 읽고 싶어서 가져가시나 보다 생각하고 잡지는 않아요” 한다. 진료로 바빠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푸근한 웃음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생각나는 밍기뉴의 창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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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식기 전에 책꽂이에서 이성복의 시집 한 권을 꺼내들고 소파에 앉았다. 도시의 한복판, 나른한 오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한 권의 시집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이런 멋진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햇살이 밝은 창에 쓰인 ‘밍기뉴’라는 글씨를 보면서 회색 도시에 푸른 밍기뉴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울창한 밀림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기분 좋은 오후의 책 나들이였다.
[TIP]
밍기뉴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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