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로버트 드 니로의 <굿 셰퍼드>를 아주 재미있게 본 관객 중 한 명입니다. 전 그 영화가 특별히 지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3시간에 가까운 장황한 러닝타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20세기 중후반을 그리는 그 고전적인 스파이물의 터치가 좋았답니다.
그러나 전 영화를 보고 그에 만족하면서도, 그 이야기들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작가의 정치적 성향과 입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르 카레 풍의 냉전 시대 스파이물 밑에서 왜곡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 이전에 냉전 시대 스파이물을 상당히 좋아했고 그 책들을 읽으려고 관련 자료도 꽤 많이 읽었었거든요. 지금 그 지식은 많이 희미해졌고 모아놓은 책도 어디 있는지 찾기 어렵지만 그래도 맷 데이먼이 연기한 에드워드 윌슨의 모델인 제임스 지저스 앵글턴이 영화 속에서 그린 윌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고 툭하면 첩보전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악역 또는 몰락하는 주인공 역으로 등장했으니까요. 특히 영화 속에서도 잠시 변형되어 언급되는 유리 노솅코 사건에 대해선… 말을 말죠. 슬프고 잔인무도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정말 냉전 시대는 사람 여럿을 망쳤어요. 가해자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대부분 피해자였습니다.
전 영화가 에드워드 윌슨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아무리 실화에 기반을 두었다고 해도
<굿 셰퍼드>는 기본적으로 허구며 장르물이죠. 작가가 자신의 장르에 어울리는 인물을 만들어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허구를 이식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됩니다. 그건 이야기꾼의 권리지요.
하지만 그래도 이런 태도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네,
<굿 셰퍼드>와 같은 영화는 기본적으로 허구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바로 그런 허구를 통해 지식을 쌓지요. 제가 19세기 항해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그건 어렸을 때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폴레옹 전쟁에 대해 아는 지식의 대부분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나왔지요. 전 얼마 전에 자폐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를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자폐인의 심리에 대해 상세하게 알게 되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굿 셰퍼드>와 같은 ‘팩션’의 경우는 혼란스럽습니다. 이 경우 책이 주는 정보는 분명한 허구인 콘래드나 톨스토이, 문의 소설과는 달리 불분명하고 위태롭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피그만 침공은 정말로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과연 당시 그 사건의 담당자들이 에드워드 윌슨처럼 갈등을 겪고 고민하고 과거를 회상하고 **하고 **했을까요? 과연 피그만 사건이 실패한 게 영화가 주장하는 것처럼 ** 때문이었을까요? (스포일러라 더 밝히기는 싫군요.)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관객은 영화가 완전한 사실을 다루지 않는다는 건 알 겁니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인터넷을 뒤져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겠죠.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런 종류의 ‘팩션’은 현실 속에 은근슬쩍 스며들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흐트러뜨립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다 빈치 코드』와 관련한 유치한 소동도 대부분 이런 경계선 문제에서 비롯되었죠.
현실은 허구의 가장 멋진 재료고, 앞으로도 이런 경향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 또 멋진 작품이 나오기도 하겠죠. 그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객이나 독자가 그에 대해 대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바로 그렇기에 더 확실하게 자신을 방어하고 사실 관계에 더 예민해야 할 의무가 있지요. 다행히도 인터넷은 그런 우리를 위해 상당히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긴 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얻은 ‘일차 정보’가 과연 얼마나 충실한 건지? 사실 확인과 관련된 갈등과 고민은 이 정보 시대에도 꼬리를 물며 한없이 길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