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찾은 곳은 에너지 체험관 ‘행복한 i’라는 곳입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이들과 손잡고 가는 길이 특별히 더 즐거웠던 이유는 바로 그곳이 제가 중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 살았던 고향 같은 동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더 마음이 설렜던 이유가 있답니다.
‘행복한 i’는 2호선 신림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금천경찰서 근처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딱 중간 근처가 바로 제가 살던 동네거든요.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고등학교 시절 따분한 주말을 그나마 이겨낼 수 있게 해준 오아시스 같은 곳, 바로 백제서점이 있었답니다. 엄마한테는 학교 가서 공부하고 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방을 둘러메고 나와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몇 평 안 되는 좁은 서점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서는 주인아저씨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그곳은 낯선 치킨집 간판을 걸고 있더군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아련한 옛 추억과 함께 아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 행복한 i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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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경찰서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가면 웨딩 캐슬 못 미쳐서 에너지 체험관이 나옵니다. 이곳은 원자력문화재단에서 올해 3월 5일에 개장한 곳으로 2005년부터 외국의 우수한 과학관을 탐방하며 사전준비를 거쳐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에너지 체험관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곳이 바로 북 카페입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체험관 이용객이 대기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책은 대부분 과학 관련 책이었는데, 도서를 비치할 때 어린이 도서 연구회 등 관련 기관의 자문을 얻어 도서 목록을 만들었기에,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팝업북부터 전문 과학서적까지 아이들을 위한 과학 책 코너로는 손색이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에너지 체험관을 담당하는 분은 이곳이 문화 소외 지역이다 보니 지역 주민에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을 제공한다는 의의를 두고 시작한 일이라서 이런 코너도 만들게 되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방과 후에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초등학생 중에는 체험관이 문을 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곳에 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가는 단골 이용자도 꽤 된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 책을 읽는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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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카페 옆에 마련된 부스, 전시관을 미리 검색해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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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카페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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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수력, 풍력, 화력, 태양열 등 다양한 에너지를 체험해보며 에너지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알아볼 수 있는 체험관은 우선 입구에서 등록을 하고 순서가 되면 컴퓨터로 등록한 전자카드를 착용하고 순서대로 입장해야 합니다. 저도 아이들과 함께 순서를 기다리며 북 카페에 앉아 책 한 권을 읽으니 금방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카드를 착용하고 체험관에 들어서면 도우미가 간단하게 이용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러고 나면 각자 알아서 체험관을 하나하나 둘러보게 되는데 다른 체험관과 다른 점은 부스마다 ‘이곳은 이런 곳이고…’ 하는 설명이 적힌 익숙한 안내판이 없다는 거였어요. 직접 체험을 하게 해서 학습이 아닌 놀이로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함께 온 부모나 더 알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옆에 원리를 설명한 엽서 크기의 설명서가 있어서 나중에 다 돌아보고 나서 하나씩 모은 설명서를 입구에 가져가면 함께 묶어서 보관할 수 있게 고리도 주더군?.^^
지열의 활용을 알아볼 수 있는 ‘지구가 따끈따끈’, 핵분열의 원리를 통해 원자력발전을 체험해볼 수 있는 ‘내가 만드는 원자력’, 조력, 파력, 온도차 발전 등 해양에너지 발전을 공부해볼 수 있는 ‘파도가 철썩철썩’,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을 체험하는 ‘불이 활~활’,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알아보는 ‘즐거운 공놀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의 힘을 이용하는 수력발전을 알기 쉽게 설명한 ‘물줄기가 쏴아~쏴아’, 우리 생활에서 이용되는 방사선을 알아보는 ‘방사선 동물병원’ 등 각종 체험 코스를 돌아보면서, 아이들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선택하고 활용하는 에너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에너지가 미래 지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 '앗, 내 몸에 열이 이렇게 많아?' 내 몸 안의 열에너지를 알아보는 코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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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발전의 원리를 알아보는 체험 코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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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체험코스를 돌고 나면 자신의 전자카드에 기록된 정보로 게임을 풀거나 즉석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답니다. 또 전시 도우미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과학원리를 배워볼 수도 있었는데 그날은 소리를 주제로 세 가지 실험을 해보았어요. 마이크에 자신의 소리를 입력하고 톱밥의 떨림을 통해 파장을 눈으로 확인해 보거나 촛불을 켜고 반대편에서 큰북을 힘껏 치면 촛불이 꺼지는 이유,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를 유리관에 넣고 공기를 빼내어 진공상태로 두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 등을 알아보는 재미있는 실험이었습니다.
| '여기 봐, 떨리는 게 보이지?' 소리 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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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할 때 나누어준 플라스틱에 예쁘게 색칠을 하면 오븐에 구워서 기념으로 휴대전화 고리를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함께 온 가족이 모두 모여 각자 휴대전화 고리를 만드느라 알록달록 색칠도 하고 수다도 떠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나만의 꽃 만들기를 해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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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정신없이 체험관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네요.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는 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은 북 카페에서 책 한 권만 더 읽고 가게 해달라고 떼를 쓰네요. “그럼 딱 한 권만 더 읽고 가자!”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담당자 분에게 “이곳은 주로 아이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하는데 혹 책을 분실하거나 책이 훼손되거나 하는 경우는 없나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글쎄요. 아직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아이들에게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아도 책을 소중히 보더라고요. 솔직히 여기 과학책 중에는 팝업북도 꽤 많아서 그런 걱정도 했거든요. 하지만 책을 보고 제자리에 꽂아두거나 깨끗이 책을 보는 등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공간이 얼마만큼 소중하게 자리하는가에 따라서 그러한 문화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가겠죠?”
아직 풀어놓지 못한 과학책이 창고에 가득하다며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이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북 카페의 책꽂이를 보니 위층 2개 공간은 비어 있었어요. 키가 작은 아이의 손이 닿지 않을까 봐 일부러 그곳에는 책을 꽂지 않았다며 그 대신 자주 책을 바꾸어 주기로 했다고 하네요.
“엄마, 이 동네 사는 아이들은 좋겠다. 나도 여기 살면 매일 여기 와서 책도 읽고 실험도 하고 놀 텐데… 여기 또 오고 싶다”라고 둘째가 말하네요.
10만 권의 책이 있는 도서관이라도 이용자에게 외면받는다면 존재이유는 사라지겠죠? 있으면 왠지 편안하고, 또 가고 싶고, 이용하기 쉬운 공간이라면, 비록 얼마 안 되는 책꽂이라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공간이 동네 꼬마들에게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Tip]
에너지 체험관 ‘행복한 i’(
//www.hiknef.or.kr/main/main.asp)
- 운영: 오전 10시~오후 5시(평일, 토요일)/오후 4시 입장 마감
개인관람: 평일 오후 12시 이후와 토요일은 별도 예약 없이 이용가능
학생 단체 관람: 오전/인터넷과 전화로 별도 예약
- 교육문화행사: 진동모터카, 코일팽이, 플라스틱꽃, 에어로켓 등 무료 체험(예약필수)
- 문의 및 예약: 02-2191-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