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쉰이 넘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십중팔구는 바로 ‘도서관’을 만들어서 꼬마 손님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유브 갓 메일>에서 맥 라이언이 운영하던 모퉁이 서점이 무척이나 맘에 들어서 그녀가 서점에서 아이들을 앉혀놓고 조곤조곤 책을 읽어주던 그 모습을 항상 마음속에 담아놓고 ‘그런 날이 어서 왔으면’ 하고 바라기만 하는 처지다.
그러니 누군가 용기 있게(?) 그런 서점을 냈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한달음에 달려가 보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걸음을 재촉한 곳은 문화의 거리라고 하는 대학로의 한쪽에 있는 ‘이음아트’다.
대학로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동숭아트센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GS25가 보이고 그 옆에 유정낙지집이 있는데, 그 바로 아래 지하에 있는 곳이 오늘 우리가 찾아갈 ‘이음아트’다. 우려와는 달리 무척 눈에 띄는, 찾기 쉬운 곳에 있었기에 늘 다니면서도 왜 이곳은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이음아트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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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서점에 들어서는데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빈 공간을 빼곡히 장식한 연극 포스터와 여러 가지 문학 관련 기사가 손님을 맞이했다. 아이들과 이 작은 서점의 주인을 기다리며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내게는 여러 연극 관련 서적이 한쪽 벽면을 장식한 서가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신간 서적 사이에 자리를 차지한 어린이 책이 당연히 눈에 띄었으리라. 재미나게 어린이 책을 읽는 사이, 맘씨 좋은 아저씨 한 분이 서점으로 들어섰다. ‘이음아트’의 멋진 사장님 한상준 씨였다.
| 연극 포스터와 문학 관련 기사가 있는 이음아트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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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아요.” 창가에 놓인 프리지어 꽃다발만큼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인사를 나누는 주인장의 미소가 편안함을 전해준다. “네, 정말 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날씨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이런저런 서점에 관련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2005년 10월 1일이었어요.” 마치 자기 아이의 생일을 이야기하듯 소년처럼 들뜬 그의 얼굴을 보며 ‘이음아트’의 작은 역사를 전해 듣는 나의 마음도 함께 들뜬 기분이었다. 어떤 시작이건 간에 소중하지 않은 시작은 없을 것이다. ‘이음아트’ 또한 한 사람의 독자에서 서점의 주인이라는 능동적인 입장으로 옮겨가기까지 알게 모르게 고민도 많았을 것이고 그간의 고충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한 넉넉한 그의 웃음 앞에서 이음아트의 밝은 미래를 느낄 수 있었다면 너무 앞서간 것일까?
“예전에는 이곳 대학로에 정신세계사나 샘터 등 문학 관련 단체도 많았고 문인들의 발걸음도 지금보다는 활발했지요. 문화의 거리를 주도하던 이곳 대학로에 뭔가 함께하고픈 마음이 있었어요. 외부의 모습은 책을 매개체로 하였지만 그 덕분에 이곳을 찾는 많은 문화인과 소통하고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후배와 함께 지은 서점의 이름 ‘이음’은 어쩌면 그런 그의 뜻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름을 이어주는 곳, 다른 소리를 하나의 소리로 이어줄 다리 같은 공간이 되고픈 바람이 담겼다고나 할까?
| 이음아트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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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하면서 정말 많은 분을 만났어요. 그게 제가 지금까지 감사하고픈 일이죠.” 고마움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친구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돈으로는 차마 따질 수 없는 판매량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라는 책을 쓴 작가 조병준 님이 낙산 근처에 사세요. 이곳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치르면서 가까워지게 되었어요.”
또 <오늘의 책>의 작가이자 극단 드림플레이의 대표인 김재엽 님도 빠질 수 없는 이음의 마니아 중 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김재엽 님의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매달 서점에서 무료연극공연으로 관객과 만나는데, 서점이라는 공간이 극 중 이야기와 잘 어울려서인지 반응이 좋다고 했다.
| 이음아트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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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늘 좋은 면만 있을까?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을 하기까지 고충도 많았을 테고 또 고민도 많을 것 같았다.
“글쎄요, 서점 주인이 되고 나서 안 좋은 점이라면 아이들에게 그전처럼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다는 점인 것 같아요. 지금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게 늘 아빠로서 미안할 뿐이에요.”' 중소 서점을 운영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이음아트’는 1월 1일, 그리고 설, 추석 연휴를 제외하고는 연중무휴로 문을 열기 때문에 재량휴업일이 돌아와도 아이들과 마음 놓고 축구 한번 같이 하기 어렵다고 하며 멋쩍게 웃는 한 사장의 얼굴을 보면서 ‘이음아트’의 존재 이유가 새삼 귀하게 느껴졌다.
‘이음아트’는 서점 역할 외에 필요하다면 스터디 그룹이나 독서 토론모임 등에 장소를 제공하는 문화사랑방 역할도 해내고 있었는데 오늘도 한 환경모임의 독서토론 장소로 서점의 한쪽 모퉁이를 대여해주었다. 한 명 두 명 찾아든 회원들이 열띠게 토론하는 책은 샨티 출판사의
『굿 뉴스』라는 책이었다. 다양한 회원들과 함께 샨티 출판사의 대표인 이흥용 사장까지 함께한 자리에서 발제와 토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한상준 사장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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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아트에서 독서토론 모임을 하는 <나비야 청산가자> 회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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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오늘의 책> 연극 공연과 함께 희곡 낭독회, 작가와의 만남, 작가 사인회 같은 행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초빙하여 서점에서 사진전을 열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살짝 밝히는 한 사장의 모습에서 능동적인 문화향유자의 당당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요? 글쎄요, 그런 걸 꼭 뽑아야 할까요? 그냥 이곳에 오는 분들 중에 연극 관계자가 많아서 연극 관련 서적이 좀 많이 팔린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고요, 많이 팔리는 것보다는 꾸준히 사랑받는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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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아트 한상준 사장과 지인과 함께 (왼쪽이 한상준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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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적과 중고 서적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또 틈틈이 듣기 좋은 음반도 함께하는 우리의 사랑방 ‘이음아트’가 아무쪼록 10년이고 20년이고 우리 곁에서 멋진 하모니로 그 나름의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일회적 소비의 거리로 변해가는 대학로에 잔잔한 문화의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바라본다.
“엄마, 엄마도 저런 서점 주인 되고 싶지?” 이크, 둘째에게 그만 속내를 들켜버렸나 보다.
“그래, 많아도, 넘쳐도 기분 좋은 공간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단다. 그리고 언젠가 엄마도 그런 작은 공간의 주인이 될 날을 꿈꾸며 살기에 오늘이 또 행복하지 않을까?”
[Tip]
이음아트(
//blog.naver.com/eumart)
- 운영: 월~금(오전 10시~오후 10시)/주말 (오전 11시~오후 10시)
- 문의: 02-745-9758
- 위치: 혜화역 1번 출구 동숭아트홀 방향 30m 지점 좌측 GS25 옆 유정낙지 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