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만화이야기
한국에서 호스트바는 여전히 불법적, 퇴폐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호스트가 하나의 직업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TV 버라이어티쇼에 유명 호스트가 출연하는 일도 있고, <야왕> <뱀파이어 호스트>처럼 호스트가 주인공인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호스트 클럽은 직접적으로 성을 파는 풍속업소가 아니라, 여성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유흥업소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성인이 자신의 선택으로 유흥업소를 출입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탐닉하여 주변 사람에게 해를 입힐 때는 문제가 있지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을 택할 권리가 있으니까.
여성이 호스트 클럽에 출입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고, 크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여성의 ‘파워’가 점점 강해지는 반면, 남성은 어딘가 유약해지고 있다. 일본은 더욱 심하다. 『야왕』의 책 뒤에 붙은 인터뷰에서 전직 호스트가 한 말에 따르면, 그렇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역전되면서 호스트 클럽을 찾는 여자가 더 많아진다고 한다.
어쨌거나 개인사업에 가까운 일을 하는 호스트 클럽에는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얻으려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그게 아부나 가식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도 분명한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갈고 닦아 여성에게 ‘봉사’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뭔가를 추구하는 남자의 노력과 인내가 여성에게 호감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정론이긴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원칙’이 안 통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을 유혹해서 그저 돈을 가로채는 데 혈안이 된 호스트의 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요즘엔 좀 싸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출입에 적어도 수만 엔의 돈을 써야 하는 호스트 클럽을 출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TV에는 호스트 클럽에 빠져 한국 돈으로 한 달에 수천만 원씩 쏟아 붓는 여성의 이야기가 가끔 등장한다. 과하면 무엇이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야왕』은 호스트로서 가부키쵸의 ‘야왕’이 되려는 남자의 야망을 그린 만화다. 홋카이도의 폭주족이었던 마토바 료스케는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도쿄로 올라온다. 하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료스케는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부랑자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우연히 디자이너인 레미라는 여자를 만난다. 아니, 레미가 그를 구원해준다. 이 도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료스케는 가부키쵸의 로미오라는 호스트 클럽에서 일을 시작한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쿠라시나 료 글, 이노우에 노리요시 그림의 『야왕』은 아주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간다. 쿠라시나 료는 『여제』『네온나비』『황혼 술집』『미악의 꽃』『악마의 춤』『지단야』『악덕 변호사』 등의 스토리를 쓴 탁월한 작가다. 주로 이면의 세계를 그리면서 남성과 여성의 욕망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중에서 『여제』는 긴자의 클럽에서 ‘여제’가 되려는 여성을 그린 만화다. 남자와 여자라는 것만 다를 뿐, 『야왕』과 스토리라인이 같다. 어쩔 수 없이 클럽에 들어가 주변의 시기와 질투, 방해를 물리치고 자신만의 성공을 이루어낸다. 그녀를 지원해주는 남자도 있고, 사랑에 빠지는 남자도 있다.
『야왕』도 동일한 패턴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동일한 패턴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뻔한 스토리라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쿠라시나 료의 스토리는 전형적이면서도, 특정한 세계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것 같은 사람들의 관계와 정서를 말하면서도, 그 진실함에 빨려들게 한다.
로미오에서 일을 시작한 료스케에게는 계속해서 고비가 등장한다. 첫 번째 고비는 일주일 안에 지명을 받는 것이다. 지명을 받지 못하면 로미오에서 일할 수 없다. 두 번째 고비는 료스케를 후원해 주는 레미만이 아니라 다른 지명 손님을 잡는 일이다. 처음 오는 손님을 자신의 단골손님으로 만들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로미오를 장악한 넘버원 호스트 세이야 일파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로미오의 넘버원만이 아니라 가부키쵸의 ‘야왕’을 꿈꾸는 료스케이기에, 세이야의 밑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최고가 되려고 한다면 언제나 싸워야만 한다. 강자의 그늘에서 살지 않겠다면 맞서 싸우는 법을 익혀야만 한다. 료스케는 폭주족으로 청춘을 낭비했던 근성을 살려, 호스트로서의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비가 등장한다.
료스케가 여성을 사로잡는 방식은 세이야가 보기에는 ‘변화구’다. 호스트 클럽에 오는 여성들은 편안함과 즐거움 그리고 꿈을 얻으려 한다. 호스트는 그들을 여왕처럼 모셔야 하고, 풍부한 화제로 즐겁게 해주고, 다정하게 감싸 안아주어야 한다. 료스케는 아직 모든 것에 서툴다. 여성을 사로잡는 방법도 모르고, 여성들의 화젯거리에 동참하지도 못한다.
대신 료스케에게는 료스케만의 장점이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청년 료스케는 언제나 상대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호스트로서의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고 동시에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외로움 때문에 호스트에게 빠졌다가 버림받은 후 호스트를 경멸하는 클럽 호스티스 미사키나 증기탕에서 일하면서 남성을 무시하는 아사미 등은 모두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료스케에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료스케가 단지 입에 발린 말이나 늘어놓고, 오로지 돈만을 바라며 응석을 부리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넘버원 호스트인 세이야가 보기에 료스케의 방식은 변칙일 뿐이지만, 료스케는 자신만의 진실함으로 한 달 매상 천만 엔의 기적을 올린다. 그리고 레미에 대한 애절한 사랑도 시작된다.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야왕』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료스케의 분투가 궁금해서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금방 답을 찾으려 하는 것과는 반대’라는 말처럼, 료스케는 진실하고 치열하게 과정을 밟아나간다.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가 당장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돌아서지 않는다. 계속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달려나간다. 그 모습이 궁금해서 계속 『야왕』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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