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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정말 내가 스스로 사는 인생 맞아?' - 『감시와 처벌』
국가 안에서 살면서 국가라는 조직을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일반교양으로서 법과 제도, 조직에 대해 역사적 기초를 슬쩍 살펴보는 것은 당장 내 삶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의 재심 결과가 무죄로 나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하기까지 한 이른바 ‘사법 살인’은 30여 년이 지나서야 그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은 이들이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법과 제도라는 기틀하에서 운영되는 것이 국가고, 이 법과 제도는 국가라는 틀에 소속된 국민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심지어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음에도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달의 인혁당 재심 판결에서 배웁니다.
국가 안에서 살면서 국가라는 조직을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일반교양으로서 법과 제도, 조직에 대해 역사적 기초를 슬쩍 살펴보는 것은 당장 내 삶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는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실용적으로 읽을 수 있는 고전입니다.
프랑스 학자 미셸 푸코의 저작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읽기 편한 축에 드는 『감시와 처벌』은 감옥, 학교, 병원, 군대 등 근대에 들어서면서 확립된 사회·제도적 조직을 역사 속에서 탐구한 책입니다. 그는 프랑스가 실제로 역사적으로 겪어온 변화의 과정을 여러 가지 문헌과 기록에서 찾아내어 재구성하면서 그러한 변화가 궁극적으로 달려갔던 방향의 종점이 어디인지를 찾는 연구 방식을 보여 줍니다.
이른바 푸코가 말하는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기법입니다. 『감시와 처벌』이 어찌 보면 역사서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감시와 처벌』의 첫 장면은 중세에 한창 유행하던 공개 처형 장면에 대해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국왕 살해 미수범을 광장으로 끌고 나와 사지를 절단하고 내장을 들어내는 참혹한 처형 장면과 그에 대한 군중의 반응을 자세히 기록한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푸코는 공개 처형의 사회적 의미를 독자와 함께 되짚어 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근대 제도와 권력이라는 빡빡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를 지치게 하지 않는 매력이 있습니다.
『감시와 처벌』이 핵심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말 그대로 ‘국가 혹은 조직이 행했던 처벌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고 발전하고 있는가?’입니다. 첫 장에서 언급한 공개 처형은 전근대적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왕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살인미수범이자 대역죄인을 처형하고자 국가는 광장에 큰 처형대를 세우고, 형 집행일시를 시민들에게 알려줍니다. 처형 당일 모여든 시민들에게 국가는 죄인의 죄명을 알려주고, 살을 찢고 내장을 들어내는 참혹한 장면을 고스란히 공개합니다.
이런 방법은 국민에게 권력에 대한 공포를 심어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국민은 죄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직접 눈앞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되고, 죄인이 받은 고통을 간접 체험하여 감히 법과 제도를 어기기 어렵도록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랬기에 근대 이전의 형벌은 갈수록 가혹해졌고, 대중에게도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처벌 방식은 공개에서 비공개로 돌아섭니다. 인권 개념이 발달하면서 과거 죄인에 대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처벌 방식은 매우 유순한 형태로 변화하는데, 그것이 바로 ‘감금’으로 대표되는 징역 방식입니다.
이 처벌은 처벌 그 자체에 비중을 두기보다, 교도소矯導所라는 말이 뜻하는 그대로 죄인의 ‘교화’에 비중을 둡니다. 함무라비 법전의 시대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리 대신 죄인을 교화하여 사회에 재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는 처벌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면서 처벌의 방식을 바꿉니다.
푸코는 이러한 변화를 다르게 읽습니다. 공개 처형이 감금과 교화로 바뀐 것은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것처럼 인권 개념의 신장 덕분이 아니라, 단지 권력이 사회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자 새로운 통제 도구를 개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푸코가 드는 예는 역시 역사 속의 기록입니다. 공개 처형을 통한 공포 정치가 중심이었던 시절의 말엽에 한 공개처형장에서 극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반역죄를 지고 처형장에 끌려나온 한 범죄자에 대해 예전과 다름없이 가혹한 처벌을 시행하자, 군중의 반응이 공포심이 아닌 동정심으로 나타난 사례를 푸코는 보여줍니다. 시장, 길드 등을 통해 과거보다 대중의 정보 교류가 활성화되고 지식이 상대적으로 보편화하면서 대중은 처벌에서 공포심을 얻기보다는 그 참혹함을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권력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되고, 이러한 변화는 결국 공개 처형의 방식이 원하던 목적인 ‘공포를 통한 통제’를 이룰 수 없는 상황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후의 권력은 그래서, 푸코의 표현에 의하면 ‘분리’를 선택합니다. 공개처형이 대중의 혐오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이제 처벌은 대중이 보지 못하는 은밀한 곳에서 진행됩니다. 그것도 대중이 전혀 혐오를 느끼지 않도록 ‘범죄자를 교화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새사람을 만들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범죄를 제거한다’라는 새로운 논리를 세웁니다.
이는 지식의 발전에 힘입은 결과라고 푸코는 설명합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정립된 수학, 인쇄술 등 기술의 발전을 통해 근대 권력은 정보와 지식을 정리하고 재편하는 힘을 얻습니다. 과거에는 범죄자를 모아 놓으면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근대적 지식체계를 활용하면 범죄자 집단은 집단이 아니라 번호를 하나하나 매겨 놓은 범죄자 개인의 군집에 불과합니다. 집단보다 훨씬 통제가 쉬운 개개인을 권력이 상대하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단순히 범죄와 처벌의 분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는 근대 사회에 구축된 여러 조직에 모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푸코의 이야기입니다. 학교는 학생에게 학번을 주고 각각의 학년과 반을 갈라 책임자(담임교사)하에 교실에 수용하고, 군대는 개개인에게 군번을 붙여 관리합니다. 병원, 감옥도 모두 마찬가지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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