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화>에 대한 변호
얼마 전에 장예모의 <황후화>를 봤어요. 원래 신작을 보기 전엔 영화에 대해 사전 지식을 될 수 있는 한 줄이려고 하는 편이어서 인터넷에 예고편이 뜰 무렵에도 이 작품이 조우의 『뇌우』를 번안한 영화라는 걸 몰랐죠.
얼마 전에 장예모의 <황후화>를 봤어요. 원래 신작을 보기 전엔 영화에 대해 사전 지식을 될 수 있는 한 줄이려고 하는 편이어서 인터넷에 예고편이 뜰 무렵에도 이 작품이 조우의 『뇌우』를 번안한 영화라는 걸 몰랐죠. 그걸 알게 된 건 우연히 한 잡지에서 주윤발이 원작 이야기를 꺼낸 걸 읽었기 때문이에요.
알고 영화를 보면 참 괴상해요. 물론 원작의 시대나 공간 배경을 옮기는 일은 흔해요. 가까운 예로 로이 리에게서 아시아 영화의 판권을 사서 만든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가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지요.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현대 마이애미에서 19세기 유럽, 중세 일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으로 공연되고요.
하지만 이런 변형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어요. 『햄릿』은 캐네스 브래너가 그랬던 것처럼 19세기 말을 무대로 할 수도 있고 마이클 앨머레이다의 영화처럼 현대 월 스트리트를 무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대나 그리스 시대로 가는 경우는 전혀 없지요. 고전 원작의 무대를 옮기는 각색자나 연출자는 대부분 배경을 현대 관객에게 더 가까운 시대나 공간으로 옮깁니다. 이는 원작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도 하고 원작의 보편성이 현대에도 먹힌다는 걸 증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예모는 거꾸로 갔어요. 20세기 초반의 중국을 무대로 한 현대극을 당나라쯤으로 추정되는 과거의 황궁으로 끌고 갔지요. 덕택에 광산 재벌의 가족이 집 안에서 벌이는 꽈배기 멜로드라마는 한 나라의 운명을 뒤흔들고 수만 명의 목숨이 날아가는 가상의 역사로 탈바꿈합니다.
이런 변형은 무척 천박해 보입니다.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이죠. 조우의 『뇌우』에서 시대 의식은 작품의 핵심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20세기 초 격동기 중국의 사회적·계급적 변화 과정을 떼어버리면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 멜로드라마밖에 남지 않지요. 주제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장예모가 이 빈자리에 쏟아 부은 건 엄청난 돈을 들여 꾸민 가짜 당나라 의상과 호사스러운 세트니, 결국 스펙터클을 만들려고 현대 고전 하나를 망가뜨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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