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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과 함께 한 Wonderful Tonight

지미 페이지, 제프 백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에릭 클랩튼은 ‘블루스의 거장’ ‘락의 신화’ ‘기타의 신’ 등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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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Clapton Live in Seoul.’ 새해를 열며 국내 팝 팬들이 가장 기대했던 공연이 아닐까 싶다. 10년 만의 내한공연인 데다 예순을 넘긴 그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 다음을 장담할 수 없는, 어쩌면 국내에서는 마지막이 될 라이브 무대이기 때문이다.

지미 페이지, 제프 백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에릭 클랩튼은 ‘블루스의 거장’ ‘락의 신화’ ‘기타의 신’ 등 수많은 찬사를 받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겼다. 그 명성을 대변하듯 평일 저녁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은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서둘러 업무를 정리하고 나온 직장인은 물론,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기타 가방을 들쳐 맨 뮤지션, 맥주 상자를 껴안은 이색 팬, 그리고 참으로 많은 외국인까지… 월드스타의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남녀노소를 초월한 객석이 펼쳐져 있다.

공연을 보려는 인파로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는데, 그래서일까? 30분이나 지연된 무대는 기다림을 보상이라도 하듯 ‘Tell the Truth’로 빠르게 휘몰아친다. “Good evening”이라고 짧은 인사를 건넨 에릭 클랩튼은 다시 밴드와 함께 ‘Key to the Highway’ ‘Little Wing’ 등 지난 1970년에 발표한 〈Derek and the Dominos〉 앨범에 실린 곡들을 멋들어지게 연주한다.

거장의 신들린 연주(사진 출처 : 서울음반)


그의 현란한 손놀림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무대가 갑자기 한산해진다. 에릭 클랩튼은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홀로 앉아 ‘Driftin' Blues’를 부른다. 다시 멤버들과 함께 ‘Outside Woman Blues’ ‘Running on Faith’ 등을 연주하며 어쿠스틱 무대를 이어간다. 무대에는 오직 노래와 연주만이 있을 뿐이다.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에릭 클랩튼은 “Thank you”라는 말을 이따금 전할 뿐, 더 이상의 친근함은 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slow hand’라는 별명답게 완급을 조절하는 절묘한 손놀림에 맞춰 그의 Fender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춤춘다.

에릭 클랩튼뿐만 아니라 세션도 최고 수준이다. 저러다 꼴깍 숨을 넘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신명나게 연주하는 드러머, 똑 부러지면서도 리드미컬한 멜로디 라인을 이어가는 키보디스트, 손에 든 Gibson만큼이나 근사한 외모에 보컬까지 선사하는 왼손잡이 도일 브램홀 2세는 에릭 클랩튼과 함께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유리 바를 끼고 실로 감각적인 손동작(슬라이드 기타/보틀넥 주법)으로 시선을 잡아끈 금발의 기타리스트 데릭 트럭스는 국내 팬들이 이번 공연에서 건진 새로운 인물이 아닐까 싶다. 특히 ‘Little Queen of Spades’ 뒤에 이어진 각 세션의 솔로 무대에서는 저마다 기량을 유감없이 펼쳐 보여, 공연장의 열기를 더더욱 증폭한다.

환상의 조화 이룬 세션들(사진 출처 : 서울음반)


클라이맥스는 공연 후반부, 마침내 ‘Wonderful Tonight’이 연주될 때다. 그 감미롭고도 찡한 멜로디에 에릭 클랩튼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보컬이 이어지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어 ‘Layla’를 알리는 특유의 도입부가 연주될 때는 급기야 만여 명의 인파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좀 늦은 감이 있다. 진작 일어났어야 했다!). 미친 듯이 달리는 기타 솔로, 초월한 듯 더욱 맑고 장엄한 건반, 또다시 휘몰아치는 기타… ‘내 눈앞에서 에릭 클랩튼이 Layla를 연주하고 있다’라는 황홀함! 진정 생애 잊지 못할 Wonderful Tonight이다.

에릭 클랩튼은 ‘Cocaine’과 ‘Crossroads’를 앙코르로 선사하고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띠며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그 맑은 미소 뒷면에 있었을 그만큼의 깊은 고뇌를 생각해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의 뇌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뇌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헤르만 헤세나 피카소 등도 고통과 방황, 깊은 우울 뒤에 샘솟는 창작의 희열을 느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불우했던 유년, 순탄치 않았던 사랑, 그리고 아들의 죽음까지 겪었던 에릭 클랩튼의 음악은 영혼을 달래는 감동이 있다. 많은 평론가도 빼어난 리듬과 아름다운 멜로디를 감미롭고 섬세한 기타 선율로 실어내는 그의 탁월함에 주목한다. 감성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느낌. 그래서 그의 음악은 수많은 사람에게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리라.

말보다 값진 에릭 클랩튼의 환한 미소(사진 출처 : 서울음반)


최근 가수 이승철 씨가 자신의 음악적 모델이었던 에릭 클랩튼의 내한공연을 보고 “아는 노래는 4곡뿐이고, 코멘트는 ‘땡큐’밖에 없어 다소 아쉬웠다”라고 쓴 글을 봤다. 사실 ‘Tears in Heaven’이나 ‘Change the World’ 같은 히트곡을 기대하고 갔던 팬이라면 공연이 다소 어렵거나 지루했을 수도 있다. 에릭 클랩튼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데다, 초기 블루스곡 위주로만 이어갔기 때문이다(필자 또한 모르는 노래가 많았으며, ‘My Father's Eyes’나 ‘River of Tears’ 등을 간절히 듣고 싶었다).

그러나 ‘아는 노래가 많은 공연이 좋다’라는 생각은 자신이 접하지 못한 수많은 명곡에 스스로 벽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예순을 넘긴 에릭 클랩튼에게는 이제 ‘대중적 재미’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는 무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록과 블루스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뮤지션과 함께했다는 벅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에릭 클랩튼의 신들린 연주가 흩뿌린 감흥은 오랜 세월 값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에릭 클랩튼 내한공연 Eric Clapton Live In Seoul
2007년 1월 23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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