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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없는 영화 <보랏>

‘보랏’은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바론 코헨이 창조한 캐릭터입니다. 한동안 그의 코미디 쇼에서 써먹었고 얼마 전에는 그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히트 코미디 영화 <보랏>이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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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은 영국의 코미디언 사샤 바론 코헨이 창조한 캐릭터입니다. 한동안 그의 코미디 쇼에서 써먹었고 얼마 전에는 그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히트 코미디 영화 <보랏>이 나왔죠. 이 영화는 많은 영화 평론가가 2006년 탑 텐 중 한 편으로 올려놓았는데,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보랏>을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결국 정의의 문제지요) 이 영화가 지닌 파괴적인 풍자의 힘은 무시하기 어렵거든요. <보랏>은 무례하고 더럽고 유치하고 직설적이며 잔인무도한 영화입니다. 혼자 미쳐 날뛰는 살인무기를 보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희생자를 낸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이 정곡을 찌른다는 말도 됩니다.

당연히 이 영화는 많은 이슈를 몰고 다녔는데, 사실 그 대부분은 건너뛰어도 됩니다. 일단 보랏의 반유대주의나 반페미니즘은 무시해도 돼요. 일단 사샤 바론 코헨 자신이 유대인이니, 그런 것이 당사자의 진지한 정치적 의식과 연결되어 있을 리가 없죠. 그렇게 받아들이려 해도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고요. 영화가 더욱 세련되고 정곡을 찌르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미국 풍자는 사실 맞서기가 어렵습니다. 그중 상당 부분은 그냥 사실인 걸요. 이 모큐멘터리 영화의 다큐멘터리성은 마이클 무어의 영화와 비교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미국을 다루는 부분은요. 실제로 영화는 실제 다큐멘터리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찍었어요. 보랏의 야만적인 행동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은 상당수가 진짜입니다.

문제는 영화가 카자흐스탄이라는 구체적인 나라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보랏은 미국을 방문한 카자흐스탄 리포터지요. 이 영화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사람은 강간범이고 근친상간범이고 인종차별주의자고 무지하고 더럽고 아둔하고 현대 문명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야만인입니다. 연간 10퍼센트의 경제 성장을 쌓아올리고 가끔 우주선도 쏘아 올리면서 성실하게 잘 살던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겐 <보랏>이라는 영화는 정말 어이가 없겠죠.

더 어이가 없는 건, 사샤 바론 코헨의 보랏 농담 중 사실에 바탕을 두는 건 거의 없다는 겁니다. 일단 그가 지껄이는 카자흐스탄어 자체가 가짜예요.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에 나오는 카자흐스탄 마을 장면은 루마니아에서 찍었고요. 여러분이 아무리 지리에 무지해도 그 축축한 동유럽 시골 마을이 실크로드 한가운데 있는 서아시아 국가랑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둘의 차이는 <매쉬> 텔레비전 시리즈가 그리는 ‘한국’과 진짜 한국 사이의 간격보다 더 큽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보랏>에 대해 항의를 접은 것도 이해가 가요. 여기에 진지하게 항의하다간 오히려 자기네들이 더 바보 같아질 판이죠. “그 영화는 코미디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그것을 보고 웃자는 게 내 입장”이라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태도는 쿨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노골적인 항복이기도 합니다. 하긴 다른 방법이 있겠어요?

그렇다면 사샤 바론 코헨의 풍자는 방향이 없는 걸까? 그건 아닙니다. 사샤 바론 코헨의 보랏 묘사는 막연한 제3세계 또는 가난한 동유럽 국가의 ‘비문명성’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이죠. 수세식 화장실의 존재도 몰라 길가에서 볼일을 보는 보랏의 묘사는 과장되었지만 그중 상당수는 관습화된 인종차별적 농담입니다. ‘집시’ 농담 같은 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인종차별적 농담이기도 해요. 아무리 카자흐스탄과 구체적으로 닮은 구석이 없는 가짜 국가에 대한 영화라고 해도 분명 이유 없이 다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향과 목표가 분명한 미국 비판과는 사정이 다르죠.

여기에 대해 심각하게 떠드는 건 좀 바보 같아 보이긴 합니다. 이 영화의 무례함은 처음부터 노골적이었는걸요. 소동이 커지고 소송이 늘어나면 사샤 바론 코헨은 오히려 즐거워할 겁니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농담의 일부가 되어 영화 속에 묻혀버릴 거고요. 제가 종종 말하는 거지만, 예술가는 우리가 정해놓은 규칙과 법규를 늘 조금씩 넘어섭니다. 그들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예술가일 경우) 더 힘이 세기 때문이지요. 우린 여기에 직접적으로 맞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랏>이라는 영화를 보는 데도 마찬가지의 예의가 필요하죠. 영화가 끝나고 나서 진짜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한 번 간단히 검색이라도 해보며 그 나라에 대해 배워보는 건 어떻습니까? 사샤 바론 코헨은 끝까지 그 예의를 무시하겠지만 우리까지 그럴 필요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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