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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결혼에 관한 세 편의 DVD
이번 글에는 최근에 출시된 사랑과 결혼에 관한 세 편의 영화를 다루고자 한다. 한 편은 그야말로 좋았던 연애 시절을 다룬다. 물론 그 연애담이란 것이 서로 만나지도 못한 채 이루어지는 이야기라 조금은 색다르기는 하다.
아직도 모 방송국에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드라마가 매주 방영된다. 아마도 우리 나라 결혼 인구의 0.1% 정도는 감소시켰을만한 그 드라마 속에는 뭔 놈의 화상들이 그리도 많은지 ‘결혼 = 현실 = 공포’라는 등식이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서로의 안구에 ‘뽀샵 처리’가 되었을 연애 시절에 비하면, 이것 저것 필요한 것도 절차도 복잡한 결혼 생활이란 것이 꽤 번거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커다란 갈등들에 비하자면 남녀 사이의 관계란 그토록 죽도록 이해 못할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이번 글에는 최근에 출시된 사랑과 결혼에 관한 세 편의 영화를 다루고자 한다. 한 편은 그야말로 좋았던 연애 시절을 다룬다. 물론 그 연애담이란 것이 서로 만나지도 못한 채 이루어지는 이야기라 조금은 색다르기는 하다. 나머지 두 편은 결혼을 다룬 영화들이다. 한 편은 그래도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들의 이야기라면, 한 편은 결혼 생활의 끝에 도달한 부부의 ‘총성 없는 전쟁’을 그리고 있다.
■ 레이크 하우스 LE
바닷가에 있던 주인공들의 집은 호수 위로 바뀌고 성우였던 여주인공의 직업 역시 의사로 바뀌었다. 배경 역시 서울과 강화도에서 미국의 미시건주 시카고로 바뀌었다.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시월애>는 그렇게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 주연의 <레이크 하우스>로 탈바꿈하면서 한국 영화의 첫 번째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라는 기록을 지니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알레한드로 아그네티의 할리우드 데뷔작이기도 한 <레이크 하우스>는 원작인 <시월애>가 담고 있는 설정을 몇 군데 고친 것을 제외하면 기본 플롯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별 무리가 없는 영화다. 연출과 연기가 안정되어 있고 분위기 역시 로맨틱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레이크 하우스>는 <시월애>가 담고 있는 미스테리한 분위기와 애절함이 많이 떨어진다. <레이크 하우스>의 각본진은 <시월애>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논리적 구멍들을 메우고 두 연인 사이의 인연이 필연적임을 자주 설명하려고 한다.
<시월애>의 전지현과 이정재가 영화의 거의 끝에 가서야 제대로 된 만남을 갖는 것에 비하면 <레이크 하우스>의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은 키스까지 나눈 꽤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즉 <레이크 하우스>는 <시월애>에 비해 드라마적인 논리를 강화한 영화다.
하지만 만듦새에 있어 원작에 별로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레이크 하우스>는 감정의 여백이 충분치 않아 캐릭터들의 감정이 충분히 공명되지는 않는다. <시월애>에 비해 <레이크 하우스>는 좀 더 따뜻한 할리우드 가족 멜러 드라마의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 about DVD
국내판 <레이크 하우스 LE>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작 영화 <시월애>를 담고 있어 원작과 리케이크판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시월애>의 경우 기존 출시된 국내판을 그대로 담고 있어, 색감이나 영상 표현에 있어 한계가 있으나 <레이크 하우스>의 경우에는 최신작다운 맑고 깨끗한 색감과 영상을 선보인다. 날카로움보다는 따뜻한 멜러 드라마풍의 부드러운 표현력을 선보이는 편. 음향 자체가 그리 두드러진 장르가 아니므로 그다지 강렬한 표현력을 전해주지는 못하지만 음향 역시 기대를 충족하는 명확한 사운드를 들려준다.<시월애>의 음향 표현과 비교하면 <레이크 하우스>의 음향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다.
다만 3분여의 추가 장면과 극장용 예고편만이 수록되어 있는 스페셜 피쳐의 빈약함은 아쉬움을 준다. 오히려 <시월애>에는 이현승 감독의 음성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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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자의 유통기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에서 연애 경험이 없는 평범하고 고독한 여인의 심상을 훌륭하게 담아냈던 <파니 핑크>의 감독 도리스 되리의 최신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원제는 ‘The Fisherman and His Wife')은 결혼 생활을 비단 잉어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이색적인 영화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인간 부부였다가 잉어가 되었다는 물고기들의 불만 가득한 나레이션으로 채워져 있고 우리는 마법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3년의 부부 생활 기간 동안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를 만났을 때 마법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
<내 남자의 유통 기한>은 오프닝에 등장하는 잉어들의 주절거림에서 알 수 있듯, 달콤쌉사름한 결혼 생활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환타지와 현실을 종종 넘나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감정의 파고를 경쾌하고 또 찐하게 그려 놓는다. 특이할만한 점이라면, 이 영화 속의 부부인 오토와 이다의 가치관은, 한국의 멜러 드라마와는 딴판으로, 여성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달려나간다면 남성이 내조를 하는 입장이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도리스 되리 감독은 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들 부부의 결혼 생활을 비단 잉어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시각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로맨틱 코미디로 창조했다. 이다가 잉어의 무늬를 모방한 디자인으로 성공한다던가 이다의 성공과 하루 아침에 관상용 잉어로 성장하는 아내 잉어의 모습이 겹쳐지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참아내기 어렵다.
■ about DVD
독일 영화인 <내 남자의 유통 기한>의 영상 퀄리티는 유럽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초반부 장면의 색감이 좀 칙칙한 느낌을 주고 일부 필름 스크래치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중반부 이후에는 점차 안정된 색감과 영상을 선보인다. 돌비 디지털 2.0을지원하는 음향의 수준은 전달력에 큰 무리가 없는 수준으로 부드럽게 표현되는 편. 서플먼트가 전무하다는 점이 아쉬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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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SE
<졸업 1966>, <캐치22, 1970>, <워킹 걸, 1988>, <클로저, 2004>까지 할리우드의 장인으로 남아 종종 문제작을 발표했던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데뷔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에 만약 부제를 붙인다면 <결혼의 묵시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에드워드 알비가 쓴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과 성적인 의미가 가득 담긴 독설로 채워진 대사로 악명이 높았던 연극이었으며, 연극연출가 출신의 마이클 니콜스가 연출한 영화 역시 연극의 대사들을 고스란히 되살렸던 것. 더구나 비아냥과 독설을 주고 받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교수와 그의 부인 그리고 그들 부부가 초대한 젊은 교수 커플이라는 점 역시 당시로서는 화제였다.
토니상을 5개나 받은 연극이 원작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는 주인공들의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영화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고작 하룻밤이며 거의 4명의 주인공만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주역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그리고 신인급인 조지 시걸과 샌디 데니스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력을 선보인다. 특히 할리우드의 ‘미의 여신’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변신은 거의 충격적인 수준. 그녀는 고함치고 얼굴을 마구 찌그러뜨리며 당장이라도 남편을 잡아먹을 듯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인물인 마사역을 통해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펼쳐낸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는 도덕적 가치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던 당대 미국 가정의 비극적인 초상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묘사하고 있는 수작이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며 으르렁거리는 마사와 조지(리처드 버튼) 부부의 모습은 실제로 결혼과 파경을 거듭했던 두 배우의 실제 삶과 겹쳐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탁월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하스켈 웩슬러의 촬영이 특히 인상적이다.
■ about DVD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 SE>는 탄탄한 고전 영화 라이브러리들을 꽤 만족스럽게 출시하고 있는 배급사의 작품답게 만족스러운 영상 퀄리티를 선보인다. 흑백 영화들에서는 무엇보다 음영 표현의 문제가 중시될 수 밖에 없는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의 영상은 오랜 세월의 시간을 넘어설 정도의 만족스러운 표현력을 담고 있다. 특히 인물들의 빅 클로즈업이 많은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피부 질감 묘사와 또렷한 윤곽선 표현은 기대를 충분히 넘어선다. 음향은 원본 모노 트랙을 최대한 깔끔하게 표현하는데 주력하는데 만족하고 있는 수준.
두 장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는 SE 버전의 서플먼트 역시 만족스럽다. 지금은 노장이 된 감독 마이크 니콜스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음성 해설을 통해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한층 더 가질 수 있으며, 촬영 감독 하스켈 웩슬러가 참여한 음성 해설 역시 별도로 제공된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1977년에 제작된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대한 TV 다큐멘터리가 눈길을 끄는데, 무려 한 시간여에 걸쳐 록 허드슨, 빈센트 미넬리, 리처드 브룩스 등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같이 영화 작업을 한 영화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 외에도 이 영화의 영화적 의의와 영화사적인 의의를 각각 다루고 있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 1966년에 행해진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인터뷰 클립,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큰 배역을 맡았던 샌디 데니스의 스크린 테스트 클립 등 자료적으로 풍부한 서플먼트 자료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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