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에 대한 선입견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그의 복수 3부작을 통해 이 영화를 봅니다. 그 작품들, 또는 그 작품들을 비평한 비평문을 통해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그 작품들과 비교해 영화를 보는 거죠. 그 결과 관객은 무의미한 수준으로까지 영화를 파헤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좌절해 버립니다.
그의 마지막 영화 <패밀리 플롯>을 끝낸 알프레드 히치콕은 프랑소와 트뤼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지만 나는 나에게 기대되는 것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스릴러물이나 서스펜스 영화만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지금은 그게 굉장히 힘들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인용되는 모든 문구가 그렇듯, 히치콕의 이 말도 자칫 잘못 인용될 수 있습니다. 히치콕은 이 글에서 당시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70년대 미국의 영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의 이런 투덜거림은 일반론으로도 충분히 먹힙니다. 실제로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받는 많은 예술가는 히치콕처럼 보이지 않는 기대의 감옥에 갇혀 있지요. 자발적이라면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치콕도 만들기 싫으면서 억지로 서스펜스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요. 감옥에 갇힌 듯한 그들의 행동은 대부분 고정된 취향 속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한 결과입니다. 예술가는 원래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관객과 평론가의 기대가 만든 감옥은 스타일리스트 자신이 만든 감옥보다 좁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남들이 더 잘 아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지요. 평론가가 아무리 우쭐거리며 현란한 서사를 남발한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그 예술가의 표면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새로 독심술을 배우지 않는 한, 예술가란 블랙박스이고 그의 작품은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는 간접적인 단서에 불과하지요.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그처럼 논쟁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취향을 탈 수 있을지 몰라도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주제는 명백하고 그 명백한 주제는 동화처럼 간결한 논리에 의해 전개되지요. 다소 모호한 스토리 전개 때문에 구조가 조금 흐릿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이야기의 의미가 안 읽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박찬욱은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의도를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밝혔으니 정 궁금하면 그것을 읽으면 되겠지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어려운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 선입견 없는 12살이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12살짜리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는 아니고 그 아이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까지 즐겁게 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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