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박찬욱 감독에 대한 선입견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그의 복수 3부작을 통해 이 영화를 봅니다. 그 작품들, 또는 그 작품들을 비평한 비평문을 통해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그 작품들과 비교해 영화를 보는 거죠. 그 결과 관객은 무의미한 수준으로까지 영화를 파헤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좌절해 버립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그의 마지막 영화 <패밀리 플롯>을 끝낸 알프레드 히치콕은 프랑소와 트뤼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지만 나는 나에게 기대되는 것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스릴러물이나 서스펜스 영화만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지금은 그게 굉장히 힘들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맥락으로부터 떨어져 인용되는 모든 문구가 그렇듯, 히치콕의 이 말도 자칫 잘못 인용될 수 있습니다. 히치콕은 이 글에서 당시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70년대 미국의 영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의 이런 투덜거림은 일반론으로도 충분히 먹힙니다. 실제로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받는 많은 예술가는 히치콕처럼 보이지 않는 기대의 감옥에 갇혀 있지요. 자발적이라면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치콕도 만들기 싫으면서 억지로 서스펜스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요. 감옥에 갇힌 듯한 그들의 행동은 대부분 고정된 취향 속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한 결과입니다. 예술가는 원래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관객과 평론가의 기대가 만든 감옥은 스타일리스트 자신이 만든 감옥보다 좁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남들이 더 잘 아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지요. 평론가가 아무리 우쭐거리며 현란한 서사를 남발한다고 해도 그들은 결국 그 예술가의 표면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새로 독심술을 배우지 않는 한, 예술가란 블랙박스이고 그의 작품은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는 간접적인 단서에 불과하지요.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그처럼 논쟁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취향을 탈 수 있을지 몰라도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주제는 명백하고 그 명백한 주제는 동화처럼 간결한 논리에 의해 전개되지요. 다소 모호한 스토리 전개 때문에 구조가 조금 흐릿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이야기의 의미가 안 읽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박찬욱은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의도를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밝혔으니 정 궁금하면 그것을 읽으면 되겠지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어려운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 선입견 없는 12살이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12살짜리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는 아니고 그 아이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까지 즐겁게 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죠.

박찬욱 감독


그런데도 그 영화는 그렇게 감상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박찬욱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죠.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그의 복수 3부작을 통해 이 영화를 봅니다. 그 작품들, 또는 그 작품들을 비평한 비평문을 통해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그 작품들과 비교해 영화를 보는 거죠. 그 결과 관객은 무의미한 수준으로까지 영화를 파헤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좌절해 버립니다. 그래도 영화가 자기에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만으로 저울질 하는 관객은 그나마 그 영화를 제대로 향유하고 나온 거겠죠. 어긋난 마케팅의 역풍이요? 그 역시 선입견 때문에 불필요하게 과장된 것 같군요. 12세치고는 조금 센 영화긴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폭력 묘사는 원래 기대 등급인 15세 관람가로 맞추어 본다면 그냥 적절합니다. 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올드보이><복수는 나의 것>을 볼 때와 같은 수준의 불쾌함을 느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환상적이니까요. 영화를 보고 나서 마케팅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뒤늦게 박찬욱과 영화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생각해 보면 박찬욱 자신도 여기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습니다. 전 그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충분히 자유로웠을 거라고 믿지는 않아요. 영화에는 기존의 스타일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끊어버리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녹아 있지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어떻게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나온 박찬욱의 영화 중 가장 계산적인 작품입니다. 가장 발랄한 이야기지만 다른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장이의 유희 정신은 오히려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전 가끔 이 영화의 폭력성이나 난해함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 의식적인 계산을 읽어내고서 말로 비판하기 쉬운 다른 대상에 뒤집어씌운 게 아닌가 의심해 보는 것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