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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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당당하게 읽고, 소유할 수 있었던 책은 어린이용 세계문학 전집이라든가 위인전뿐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다른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는 매우 적극적인 분이셨기에 간식은 안 사주셔도 이런 종류의 책은 잘 사주셨거든요. 딱히 세계문학 전집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당시 보고 싶었던 건 이런저런 종류의 만화책이었기에 ‘한 번쯤은 사놓고 읽지 않는 위인전 말고 만화책 좀 사주시면 안 되나’라고 속으로 투정부렸던 기억이 납니다. (열심히 공부시키려 하셨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았던 아들이었던지라 죄송합니다.;;)
그 당시 읽었던 어린이용 세계문학 전집 중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라든지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앙리 파브르의 『파브르 곤충기』, 위다의 『플랜더스의 개』 같은 흥미로운 책은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만,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같은 작가의 책은 ‘아니, 세상이 이렇게 재미없고 따분한 책이 또 있단 말인가?’라든지 ‘왜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인 중의 하나인 거지?’라며 당황했었고, 학창 시절에는 ‘러시아 문학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존재’, ‘고전문학은 지금 시대에 읽기엔 너무 구식이야’라는 편견에 사로잡혔죠. 하지만, 스무 살에 읽게 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책인데요. 자간, 자폭도 좁은 깨알 같은 글씨로 1,500페이지가량 되는 소설을 단숨에 읽어버리고는 눈이 너무 아파 고생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지만 읽는 내내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가빠지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에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재미있게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이때 느꼈던 긴장감은 스티븐 킹이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느끼는 긴장감과는 다른, 아주 무거운 느낌이었는데요, 아주 근사한 기분이었지요. 이렇듯 어려서 읽었던 『죄와 벌』과 성인이 되어서 읽은 『죄와 벌』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때는 어렸으니까’라기보다는 그때 읽은 건 ‘어린이용 『죄와 벌』’이었기 때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 완역판이 아닌 소설은 ‘가짜’라고 말해도 될 만큼 전혀 다른 소설이기 때문이죠. 전체적인 줄거리만 같을 뿐,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아니라 옮긴이의 『죄와 벌』이니까요. 번역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소설을 아예 다른 사람이 써버리고 1,500페이지가량 되는 소설을 150페이지로 줄여버리니 그게 재미있을 리 없죠. (흔히 장발장으로 불리는 『레미제라블』 같은 경우가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용 문학이 그렇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줄이고 편집해서 굳이 읽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런 책 말고도 어린이들이 읽을 책은 무척 많은데 말이죠. 세계적인 문학인의 이름을 새기고 읽기 쉽게 줄여버려야 아이들이 많이 읽는다는 의도라면 저같이 이상한 선입견으로 가득 찬 성인을 만드는 지름길이기도 한데 말이죠. 괜히 저같이 이상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고전문학 따위는 따분해서 안 봐’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은 민음사나 범우사에서 나오는 전집을 조금씩 읽어보세요. 정말 재밌는 책들이 많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열린책들과 범우사 모두 좋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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