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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빼낸 담백한 사랑이야기, 뮤지컬 'I Love You'

2004년 초연 이후 독특한 구성과 매력적인 스토리에 힘입어 출연진을 바꿔가며 어느덧 시즌 3를 이어가는 뮤지컬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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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엣>에 이어 ‘사랑’을 노래하는 뮤지컬 한 편을 더 소개한다. 2004년 초연 이후 독특한 구성과 매력적인 스토리에 힘입어 출연진을 바꿔가며 어느덧 시즌 3를 이어가는 뮤지컬 〈I Love You〉. 초연 때 남경주와 최정원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꼭 보려 했으나, 제목에서 풍겨 나오는 맹렬한 달콤함에 기가 죽어 연인이 생기면 봐야겠다 미루고 미루던 작품. 비록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듯하나, <공연으로 보는 세상>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사랑, 20가지 이야기

뮤지컬 'I Love You'


뮤지컬 〈I Love You〉의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구성을 들 수 있겠다. 남녀의 만남, 결혼, 그리고 이별. 그 흔한 사랑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 보이지만, 긴 여정은 20편의 각각 다른 스토리로 이어진다. 무대에 오르는 4명의 남녀 배우는 각 신마다 각기 다른 커플, 다른 사랑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4명의 배우는 수많은 배역을, 수많은 의상과 분장을 바꿔가며 거침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 두 여배우의 연기에 주목한다. 이름은 낯설지만 분명히 들어본 적 있는 이 독특한 목소리. 그러고 보니 <까미유 끌로델>에서 로댕의 부인으로 나왔던 김경선(나이보다 무게 있으면서 강인한 음색이라 크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과 <그리스>에서 통통 튀는 마티 역을 맡았던 방진의(바비 인형 같은 몸매, 앵앵거리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다. 솔직히 객석을 휘어잡는 마력은 부족했으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가능성을 생각하면 남경주와 최정원의 무대를 놓친 게 크게 아쉽지는 않다.

사랑, 참으로 솔직한 이야기

“I Love You.”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그러나 사랑을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언제까지나 구름 위에 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작품명과는 달리, 그래서 지레 기가 죽었던 것과는 달리, 뮤지컬 〈I Love You〉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한 편의 일기 같은, 핑크빛 환상을 쏙 걷어낸 참으로 솔직한 남녀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 <너무너무 바쁜 관계로…>를 보자. 소개로 만난 남녀. 그들은 바쁜 직장인이다. 첫 만남이지만 너무너무 바쁜 나머지 어색하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다음 데이트를 잡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첫 만남을 뛰어넘어, 두 번째 데이트, 아니 내친김에 처음 밤을 지새우고 처음 싸우고 화해하고 헤어지는 단계까지 모두 경험한 걸로 하자고 한다. 오~ 이 놀라운 발상! 하긴 어차피 남녀가 만나 경험하는 모든 것들, 수억의 남녀가 마치 자신들만의 특별한 의식처럼 겪고 있지만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던가?!

결혼은 어떨까? 두 남녀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결혼 전의 멋진 모습은 사라지고, 둘만의 분위기 있는 밤도 어림없다. 불어나는 살, 늘어나는 불만, 그렇게 세월이 흘러 결혼 30년. 날마다 살을 맞대고 살아왔지만, 사랑을 맹세할 때처럼 자신의 반쪽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

20편의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진솔하다. ‘사랑’ 하면 떠오르는 포근한 이미지를 살짝 거두고 그 속의 더욱 솔직한, 더욱 일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재밌다’기 보다는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여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뮤지컬이다. 파릇파릇한 20대 초반(그들도 나름대로 사랑에 대한 생각이 많겠지만…)보다는 20대 후반 이후에게 더 어필할 수 있는 공연이 아닌가 싶다.

4명의 배우들이 소개하는 20가지 사랑이야기


사랑, 하지만 떨쳐낼 수 없는…

마지막 이야기는 <장례식장 = 부킹장>이다(역시 뛰어난 발상이다). 지인의 장례식장을 찾은 홀로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러나 그런 장소에서도, 그 나이에도 사랑은 피어난다. 그것도 아주 수줍고 조심스럽게. 참 우습지 않은가? 그들은 이미 사랑의 핑크빛 구름이 쉽게 흩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을 다 경험했으면서도 또다시 손을 맞잡는다. 사랑이 뭔지….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걸 보면 그것이 연애든 결혼이든,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이라는 매개로 엮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데 그 사랑은 어찌하여 처음처럼 반짝거리지 않고 점점 시들해지고, 어려워지고, 깨지기도 하는 것일까? 평생에 걸쳐 직접 부대끼다 보면 풀리기는 하는 숙제일까? “I Love You”,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밖으로 뛰쳐나와도 다시 찾게 되는 사랑. 나중에 신을 만나게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무슨 생각으로 ‘사랑’이란 걸 만드셨느냐고…. ^^

아참! 뮤지컬 〈I Love You〉를 볼 때는 무대 양쪽에 마련된 스크린을 눈여겨보자. 20편의 신이 바뀔 때마다 제목이 나오는데, 제목이 코믹하면서도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연주자들이 독특하게 무대 2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 달랑 2대지만 음악이 굉장히 절묘하게 어울려 훨씬 세련된 맛이 있다.

결혼! 사랑은 어떻게 변할까...


뮤지컬 {I Love You}
2006년 9월 23일 ~ 12월 25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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