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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면... -『블루 혹은 블루』 & 『도플갱어』

도플갱어. 나와 똑같은 사람을 뜻한다. 정말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만큼 신비로운 일도 없을 터이다. 그런 만큼 소설도 이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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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나와 똑같은 사람을 뜻한다. 정말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만큼 신비로운 일도 없을 터이다. 그런 만큼 소설도 이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일본의 야마모토 후미오와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 역시 ‘도플갱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을 통해 끄집어내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1. 발견
야마모토 후미오의 『블루 혹은 블루』의 소코는 ‘그때 그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나간 일이지만, 자꾸만 ‘만일’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다른 세상을 꿈꿔본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불만 때문이다. 그렇다. 소코는 결혼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그녀는 두 남자를 놓고 선택해야 했다. 주방요리사와 인텔리, 둘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 때, 소코는 인텔리를 선택했고 그와 결혼했다.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결과는 처참하다. 소코는 주방요리사와 결혼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때였다. 도플갱어를 발견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 도플갱어는 주방요리사와 결혼한 상태다. 더 놀라운 것은, 도플갱어 역시 소코와 마찬가지로 인텔리와 결혼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의 주인공은 별다른 의욕 없이 살아가는 역사 교사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으며 우울증과 비슷한 증상에 빠져 있다. 그때 수학교사가 잠깐 웃을 수 있는 B급 영화를 권해준다. 그것은 5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다. 주인공은 그러려니 하고 보는데, 이럴 수가. 화면 속에 5년 전 자신과 똑 닮은, 아니 똑같은 사람이 있다.

2. 만남
도플갱어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넌 뭐냐고 묻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 않을까?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호기심만큼이나 무섭다는 감정도 크지 않을까? 쉽게 말 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이 점에서 『블루 혹은 블루』는 실망스럽다. 왜냐하면 ‘과감한’ 생략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들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행동 위주다. 놀라울 정도로 쉽게 접근한다. 반면에 주제 사라마구는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그러한 심리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블루 혹은 블루』에서 한 문장으로 끝나는 장면이, 『도플갱어』에서는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되기도 한다. 전자가 행동 위주라면, 후자가 심리 위주로 접근한 탓이다.

3. 계약
도플갱어를 만나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블루 혹은 블루』『도플갱어』의 주인공들은 계약을 하게 된다. 그 계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전자는 인생을 바꾸자는 것이다. 서로 두려운 탓에 완전히 바꾸자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너도 바라고 나도 바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들은 한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모를 테니까.

『도플갱어』의 그들이 하는 계약은 이제 만나지 말자는 것이다. 『블루 혹은 블루』의 상황만큼이나 공감 가는 계약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도플갱어가 나타나면 주위 사람들은 어쩌겠는가? 아예 주변에 얼씬거리지 말자는 것, 도플갱어가 있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끝내자는 것이 그들의 계약이라면 계약인 셈이다.

4. 위기
이들의 계약은 보면 볼수록 위태롭다. 『블루 혹은 블루』처럼 인생을 바꾼 경우라면, 나는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도플갱어는 계속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당연히 나는 내 인생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꿈같은 기회를 잡은 도플갱어가 순순히 물러날까?

『도플갱어』 역시 문제는 발생한다. 특이하게도 그것이 불거지는 문제는 제3자의 불안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계약을 했다고 하지만, 도플갱어의 아내는 도플갱어가 있다는 사실을 떨칠 수가 없다. 불안한 것이다.

외박하기로 한 남편이 저녁에 들어오더니 일이 취소됐다고 말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충분히 있는 일이고 아내는 의심 없이 부부처럼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보니 남편인 줄 알았던 이가 도플갱어라면? 남편을 보고 있으면서도 ‘혹시 도플갱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야 한다면? 그렇다. 아내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안 도플갱어는 복수를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도플갱어에게도 똑같은 짓을 하고 싶은 것이다.

5. 문학과 도플갱어의 만남
카렌 암스트롱은 『신화의 역사』에서 문학의 역할을 두고 오래전 신화가 했던 일, 즉 인간이 가야 할 길과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것이라 했다. 그것에 비추어 본다면 『블루 혹은 블루』『도플갱어』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도플갱어』의 경우, 도플갱어의 등장을 통해 ‘진짜 나’를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블루 혹은 블루』는 계몽적인 감이 있지만, 그래도 ‘만일 그렇게 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날리고 현재에 충실할 것을 이야기한다. 다소 뻔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뻔하면 어떤가. 뻔한 것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 많은 세상이니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읽는 노력으로 따지면 『블루 혹은 블루』가 쉽다. 딱히 분량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내용 자체가 그렇다. 산뜻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도플갱어 소설이다. 그에 비하면 『도플갱어』는 묵직하다. 진지한 질문까지 던지고 있으니 마음 단단히 잡아놔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활자들 따라가느라 중요한 것 놓치기 십상이다.

두 작품 중에 무엇이 더 좋은가는 개개인의 취향 문제니 밖으로 밀어내기로 하자. 어쨌거나 ‘도플갱어’라는 만화 같은 소재를 갖고서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일 테니까. 그렇지 않을까? 도, 플, 갱, 어. 이 해괴한 말을 갖고 인간이 갈 길을, 혹은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는 것은 생각해볼수록 진기한 일이다. 『블루 혹은 블루』『도플갱어』든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느냐를 떠나서 그것만 갖고도 칭찬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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