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스크린쿼터,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제각각의 관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근래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며칠 전 아내가 제 잠옷 한 벌을 사왔는데요, 그게 어찌나 크던지. 입어보니 마치 무슨 자루를 뒤집어쓴 꼴이지 뭡니까. 순간 아내에게 눈을 흘겼습니다. 내심은 ‘남편 옷 사이즈도 모르나?’ 싶어서였죠. 그런데 옆에 있던 딸아이가 대뜸 엄마 편을 들지 뭡니까. “아빠, 크면 놔뒀다 내년에 입으면 되잖아.” 옆에 있던 작은애도 “맞아, 맞아”하고 언니를 거듭니다.

어이가 없네요. 아빠 몸이 자기들처럼 해마다 쑥쑥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는 큰딸아이의 발상이 어이없고, 덩달아 편들고 나서는 작은아이의 행동이 또 어이없습니다. 다짜고짜 엄마 편을 드는 게 얄밉기도 했고요. 그렇기로, 나무랄 일은 아닌 듯해 그저 벗어놓고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제각각의 관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근래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찌됐든 한국영화는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까, 스크린쿼터쯤 축소해도 되는 거 아니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크린쿼터가 축소되거나 없어지면 그날로 한국 영화는 폭삭 망해버릴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두 주장 모두 논리적 근거나 그에 근접한 연구의 결과와는 무관한 지레짐작일 뿐이라는 겁니다.

꼼꼼히 따져볼 일이지만, 여태 어느 쪽도 그런 시도를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걱정 없음’을 주장하는 정부도, ‘큰 걱정’이라는 영화계도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별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매양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럴 땐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사방팔방으로 눈과 귀,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영화계의 투쟁일변도가 문제라느니, 정부의 사대적 발상에 의한 무리한 축소 강행이 문제라느니, 제아무리 떠들어봤자, 그것이 종래 발전적 논의와 대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듯하니 말입니다.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지는 듯합니다. 하나는 ‘국익론’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계가 외치는 ‘문화주권론’입니다. 그에 대한 긍정과 부정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 축소 주장

○ 이제 우리 영화의 경쟁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시장점유율이 그 증거다. 스크린쿼터를 줄이거나 없애도 걱정 없다. 국익을 위해 쿼터 조정은 불가피하다.

○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것은 단지 밥그릇 지키기로 보인다. 쿼터 사수를 외치기 전에 먼저 영화인들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묻고 싶다. 주연급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5억 원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나머지 스태프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악조건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이게 과연 발전인가.

○ 음악, 도서시장이 죄다 외국상품에 시장을 내준 마당에 영화계만 스크린쿼터의 혜택을 보고 있다. 더 이상 특혜는 곤란하다.

○ 할리우드 영화의 시장 독점을 문화제국주의로 비판하면서 우리는 한류를 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아류문화제국주의를 획책하고 있다. 논리적 모순이다.

- 사수 주장

○ 정부의 국익론은 허구다. 영화, 농산물(쇠고기), 자동차, 의약품 시장 다 내주고 과연 어느 분야에서 국익을 챙기겠다는 건가.

○ 우리의 스크린쿼터제도는 전 세계가 그 가치를 인정한 문화다양성 수호의 모범이다. 따라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영화인들의 이해만 걸린 문제가 아니다. 문화주권은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는 데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 미국이 유독 우리의 스크린쿼터만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속내가 무엇인지를 간파해야 한다. 잠재적 거대시장인 중국, 인도 등에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술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도 그에 대비해야 한다.

○ 영화의 제작과 배급, 유통구조는 특수하다. 결국, 거대자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거대자본에 대항할 우리의 자본력은 취약하다.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입니다. 이 외에도 더 중요한 의견이 얼마든지 있을 테지만 과문한 저는 더 이상 거론할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럼 이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 실타래를 풀어줄 묘안을 찾아볼까요? 아니, 함부로 덤벼들 일이 아니지요. 제가 무슨 재주로 그런 묘안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제라도 문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보자는 얘긴 거지요.

세 가지 정도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서로 연관된 것이기도, 별개의 것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제 얘기는 어떤 입장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떠나서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자세와 태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선, 언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은 문제의 본질을 빗겨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듯합니다. 단적인 예가 전가의 보도처럼 여론을 들먹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냉담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론은 유동적이며 주로 언론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와중에 언론이 여론조사를 내세워 경마장식 보도에 나서고 있는 건 그 자체로 순수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보다 먼저 사실관계, 즉 쿼터제 본연의 취지와 현실적 문제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영화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을 시도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의 언론들은 쿼터 축소문제를 한낱 한-미 자유뮤역협정(FTA)의 종속변수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난히 언론의 폐해에 몸서리치던 노무현 정권이 어느덧 그 언론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한 듯합니다. 새삼 씁쓸합니다.

둘째, 지나치게 지엽적인 문제로 둔갑시키는, 즉 스크린쿼터 문제를 영화인들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 태도의 문제입니다. 어느덧 모든 문제를 타자화하거나 축소지향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생겨났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노동자 인권이나 노조탄압은 노동자들만의 문제, 농산물 시장개방 문제는 농민들만의 문제, 스크린쿼터 축소는 영화인들만의 문제. 스크린쿼터 문제는 정부의 주장대로 국익의 관점에서 보든, 문화주권의 관점에서 보든, 어느 모로 보나 우리 모두의 이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셋째, ‘얼씨구, 기회다’ 싶은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보다 신중을 기해 발언해야 합니다. 얼치기 비평가들의 경박한 문제제기가 오히려 본질을 왜곡하거나 본질로 향하는 길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내기 십상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구해주는 게 상례입니다만 죽치고 앉아 ‘왜 빠졌는지 원인을 생각해 보라’는 둥, ‘빠질 만했으니까 빠졌다’라는 둥…, 영화계에 대한 비판이 왜 하필 이 대목에서 쏟아집니까.

오늘 성 프란시스 대학 강의시간에 노숙인 선생님들을 모시고 <왕의 남자>를 단체 관람했습니다. 무려 30년 만에 영화관을 찾았다는 선생님도 계셨고, 칙칙한 강의실을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즐겁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관람 전 즐거운 표정을 지으시던 선생님들이 관람 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선생님들께 촌평을 유도했습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하나로 모인 의견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 영화 참 재미있네요. 앞으로도 자주 보고 싶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나를 살리는 딥마인드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저자의 신작.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절망과 공허함에 빠진 이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말인 '딥마인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행복과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딥마인드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진솔하게 담았다.

화가들이 전하고 싶었던 사랑 이야기

이창용 도슨트와 함께 엿보는 명화 속 사랑의 이야기. 이중섭, 클림트, 에곤 실레, 뭉크, 프리다 칼로 등 강렬한 사랑의 기억을 남긴 화가 7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이 남긴 감정을 살펴본다. 화가의 생애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 해석은 작품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필사 열풍은 계속된다

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슈뻘맨과 함께 국어 완전 정복!

유쾌 발랄 슈뻘맨과 함께 국어 능력 레벨 업! 좌충우돌 웃음 가득한 일상 에피소드 속에 숨어 있는 어휘, 맞춤법, 사자성어, 속담 등을 찾으며 국어 지식을 배우는 학습 만화입니다. 숨은 국어 상식을 찾아 보는 정보 페이지와 국어 능력 시험을 통해 초등 국어를 재미있게 정복해보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