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가사 있는 음악이 산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것도 중독성이 강한지라 아니 들으면 집중력 감퇴와 손 떨림 같은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럴 때는 살짝 연주곡 쪽으로 귀를 돌려보자. 사람의 음성이 아닌 악기가 표현하는 각각의 독특한 음색이 때로는 더 큰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준다. 클래식까지 가는 것이 조금 버겁다면 그 중간쯤에도 음악은 무수히 존재한다.
자연을 연주하는 조지 윈스턴
한때는 이 음반을 사는 것이,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많은 가정에 1장 또는 2장, LP나 CD형태로 자리 잡고 있을 George Winston의 ‘December’. 이 음반은 국내에서만 100만장 이상 팔리며 절대적인 인기를 입증했다. 1982년 발매된 ‘December’는 조지 윈스턴의 사계절 시리즈(Autumn, Winter into Spring, December, Summer) 가운데 하나로, 덕분에 우리는 그를 자연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기억한다.
| 피아노의 거장 조지 윈스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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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한공연도 역시 ‘자연’을 테마로 꾸며졌다. ‘The Winter Show(전날은 ‘The Summer Show)'. 초록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네는 그는 항상 곁에 있기에 미처 그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는 자연처럼, 세계적인 거장이라기보다는 푸근한 동네 아저씨(한국 별명이 대머리 아저씨란다^^) 같다. 게다가 좀더 정확한 느낌으로 페달을 밟고 싶어서인지 신발도 신지 않았다. 속이 꽉 들어찬 사람의 겸손함이 느껴진다.
첫 곡은 겨울에 맞게 ‘Skating'. 건반 하나로 정말 스케이트를 타는 듯한, 설레고 한껏 들뜬 느낌이 표현된다. 이어지는 곡은 좀더 귀에 익숙한 'Colors'와 ‘Tamarack Pines'. 또 재즈풍의 ‘The Great Pumpkin Waltz'에서는 도시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조지 윈스턴은 흔히 ‘뉴에이지’의 선두주자로 얘기되지만, 자신은 그의 음악이 뉴에이지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실제로 그의 음악에는 이처럼 재즈, R&B, 포크, 블루스 등 대부분의 장르가 녹아 있는 데다, 악기 또한 피아노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기타와 하모니카까지 섭렵하니 장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 기타 솔로 중 - 신발도 신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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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무대에서는 아마도 무엇보다 이 곡을 듣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았을 팬들을 위해 ‘Thanksgiving'과 ‘파헬벨의 Kanon 변주곡’을 선사했다. 성큼성큼 건반 위를 걸어 다니는 손을 보며 저렇게 커다란 손에서 저다지도 섬세한 감성이 녹아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언제 들어도 왠지 모를 뭉클함이 전해지는 연주에 객석의 반응도 한층 뜨겁다. 조지 윈스턴이 우리나라를 자주 찾는 이유도 이처럼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에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번 공연은 무대 안팎으로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대부분의 내한공연이 그렇지만 별다른 얘기 없이 음악만 연주되는 데다, 다른 악기와 협연이나 별다른 무대 전환도 없다보니 솔직히 그의 히트 곡 몇 곡만 알고서는 집중하기 힘든 공연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이 군데군데 여지없이 작동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잠시 합류..) ‘무대연출이 좀 더 색달랐다면, 미리 음악을 좀 더 듣고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 연주에 심취한 두 번째 달 멤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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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느낌의 두 번째 달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이 편하다면 ‘두 번째 달’의 연주를 들어보자. ‘두 번째 달’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들의 음악은 TV 드라마(아일랜드, 궁)나 CF(권상우, 공현주가 광고하던 모 화장품들)를 통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나면 그들의 묘한 매력에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걸 한탄하며 너나없이 팬이 되고 만다.
공연장은 지난 6월 2일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 SEOUL-AX(서울 악스).
계단형의 무대는 7명의 멤버와 2명의 객원멤버, 그리고 그들이 연주할 악기로 풍성하게 메워져 있다. 악기구성을 잠깐 살펴보면 피아노, 드럼, 퍼커션,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기타, 그리고 린다 컬린의 색다른 음색(이국적인 보이스라 마치 하나의 악기 같다)이 기본에, 곡이 연주될 때마다 아코디언에 멜로디언, 아이리시휘슬(피리 같은..), 만돌린은 물론 이름도 생김도 내는 소리도 생소한 잡다한 악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악기를 9명의 멤버가 소화해 낸다.
이번 무대에는 초대 손님으로 하림도 참여했다. 세계 각국의 악기를 끌어 모으기로 유명한 그는 이번에도 신기한 악기들을 들고 나와 선보였다. 멤버들까지 새 악기에 관심을 보이며 서로 불러대는 통에 무대는 만화 ‘딱따구리’나 ‘톰과 제리’에서 들어봄직한 코믹한 소리들이 어우러져 한층 흥겹다. 게다가 멤버들은 한 곡에서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각각 2-3개의 악기를 연주하는지라 그 울림은 웬만한 오케스트라 못지않다.
두 번째 달의 가장 큰 매력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에스닉(‘민속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 퓨전재즈’로 불리는 그들의 음악은 세계 각국의 민속적인 분위기를 망라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없이 세련되고, 한없이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며, 차갑고 우울한 듯 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하다.
‘서쪽 하늘에’, ‘고양이 효과’, ‘얼음연못’, ‘The Boy From Wonderland', ‘Keh-Sheth' 등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 이국적인 음악들은 모두 두 번째 달의 손에서 직접 만들어지고 연주된 곡들이다.
| 이 많은 악기를 운반하려면 버스가 필요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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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욱 기대되는 것은 그들의 가능성이다. TV나 공연장보다는 열린 무대를 더 찾았던 그들은 단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이다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음악적 깊이나 독특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그들만의 색깔을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고, 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앨범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공연이 1집 앨범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무대였던 만큼, 지루한 이벤트를 진행하느라 10분 넘게 공연이 중단되는 등 다소 미흡하고 아쉬웠던 점은 그들의 2집에 대한 기대로 무마해본다. 다시 돌아왔을 때도 비가 오는 무대도 마다하지 않던 지금의 열정은 잃지 않길 바라면서..!
조지 윈스턴 내한공연
2006년 7월 1일 ~ 7월 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두 번째 달 7월 굿바이 콘서트 '집으로 돌아가다...'
2006년 7월 8일
SEOUL-AX(서울 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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