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살펴본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의 역사
우리나라의 창작 그림책은 우리 문화 고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터전 위에 외국의 여러 나라 번역 그림책의 영향으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일본 그림책의 역사를 잠시 다루면서, 고미 타로의 그림책을 살펴보았습니다. 일본의 그림책 역사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유구한 데 반해, 우리의 그림책 역사의 본격적인 태동기는 사실 길지 않습니다. 현은자, 김세희 씨가 쓴
『그림책의 이해』에서의 시대적 정의에 따르자면, 1980년대 이전까지의 전(前)그림책 시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그림책 인식기,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본격 창작 그림책의 출간과 번역, 그림책 정리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창작 그림책만 고찰해보면, 1980년대 후반에도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단행본이 적게나마 출판되기는 했지만, 1990년대 초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올챙이 그림책’ 시리즈에 속했던 몇 권의 창작 그림책이 비로소 본격적인 창작 그림책 시장의 물꼬를 터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올챙이 그림책’은 비록 전집물로 출판되었지만, 단행본처럼 부모님과 어린이들이 골라서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동일한 크기의 그림책 판형이라는 제약이 있었고, 또한 당시 그림책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조악한 수준에 그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한편 동화출판공사의 ‘그림나라 100’은 역량 있는 그림책 작가가 참여한 그림책 전집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올챙이 그림책’ 시리즈와 같은 한계를 갖고 있지요.
전집류에 속한 몇 권의 구색 갖추기 식의 창작 그림책에 머물던 국내 그림책 시장에서, 단행본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책이 있습니다. 류재수 씨의
『백두산 이야기』(1988)과 이규경 씨의 『희망이 뭔지 아니?』(1989) 등이 그것인데요, 이규경 씨의 그림책들에서는 현대 그림책의 형식인 면지 부분이 없고,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 뒤표지가 붙어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번역 출판물의 홍수에도 휩쓸리지 않고 굳은 뿌리를 단단히 박고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만을 고수하는 재미마주와 초방책방 등이 있었기에, 1990년대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 시장은 우리의 작가가 우리의 정서를 담아내는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토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1994년, 95년을 기점으로 드디어 그림책다운 창작 그림책이 단행본으로 본격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견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그림책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뒤에서 창작 그림책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출판 문화인들이 견인차 역할을 묵묵히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출판된 그림책은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로서 오늘 소개할 작가 이억배 님의
『솔이의 추석이야기』(1995)를 포함해서, 권윤덕 님의
『만희네 집』(1995), 정승각 님의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1994)와
『강아지 똥』(1996), 한병호 님의
『도깨비 방망이』(1996) 등의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재로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그림책의 장르로 끌어들이는 시도 그리고 다양한 회화적 시도로 우리나라 창작 그림책의 수준을 질적으로도 한 차원 끌어올려주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전통 문화를 중심으로 차분히 그림책을 만들고 계신 이억배 님의 그림책을 중심으로 ‘그림책 안에서 어떻게 우리의 민족성을 생각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억배 님은 2004년 8월 나고야와 토야마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아동문학대회에서 ‘전통문화와 나의 그림책’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그림책을 만들 때 요구되는 진지한 성찰과 열정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민화 같은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 이억배
경기도 안성 가는 길 한적한 풍정 마을, 마당이 있는 집에서 그림책 작가 이억배 선생님은 동화 작가인 아내 정유정 씨와
『솔이의 추석 이야기』의 주인공 딸 한솔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억배 선생님은 용인의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시골의 넉넉한 자연 속에서 자랐다고 하니, 한적한 풍정 마을에서 조용히 작업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1960년에 태어나서 용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억배 선생님은 용돈만 생기면 만화책을 살 정도로 만화를 좋아했고, 틈만 나면 만화를 곧잘 흉내내어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원으로 이사한 선생님은 낯선 환경과 도시 생활에 위축되어 점점 더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혼자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197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했고 3학년 때 조소과를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80년대 초반의 미술계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민중 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 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삶과 사회 변혁의 운동 속에서 미술이라는 매체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전을 시작으로 미술 운동이 불붙게 되었지요. 그때 선생님은 4학년 선배의 졸업 작품 ‘광주항쟁을 테마로 한 설치물’이라는 제목의 전시물을 지켜보면서, 예술가로서의 삶과 역사적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군복무를 마치고 교내 민화반 활동을 시작합니다.
민화반 활동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전통 문화 연구와 지역 문화운동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선생님은 90년대 초까지 시민미술학교에서 판화 강습, 걸개그림 제작 등의 활동으로 젊은 시절의 이상을 현실적으로 융화시켜 나가기 위한 실천을 계속해 나갑니다. 그러나 90년대 민중 미술 운동의 새로운 방향 모색과 함께 이억배 선생님도 새로운 세계를 찾아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93년 두손미디어의 ‘세계는 내 친구’ 전집에 도구의 발달에 대한 삽화를 그리면서 그림책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2년 후인 1995년에는
『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림책 작가의 길로 창작의 진로를 내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것, 지금 이곳에 살아가는 우리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우리들의 것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이 추구하는 그림책은 주제나 관심 분야에서 우리의 그림, 우리의 전통을 살린 것들입니다. 우리들 의식에 깃들어 있는 정신적 가치관이나 우리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느낌, 바로 그런 것들을 그리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우리의 문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를 비하하는 낮은 문화자긍심을 갖고 있는 모습에 많이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의 입장은 배타적인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우리 것을 고수하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김치가 유명해져 세계인이 즐긴다고 한들, 우리가 말하는 ‘곰삭은 김치의 맛’을 외국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 민족의 문화적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이방인들로서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그 민족이 갖고 있는 속 깊은 의미까지는 공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선생님은 우리의 것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현실이 염려되었고,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지만 피상적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그림을 통해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답니다.
“문화를 생각할 때, 민족의식과 미술이 만나는 자리에 민화가 있어요. 우리 민화는 그리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움직이는 아주 특별한 그림입니다. 민화란 아이들의 그림과 같아요. 아이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주제를 부각시키지요. 그래서 주제가 강하고 주관적인 그림처럼 보이지만, 가장 자신들에 충실한 그림인 것이지요. 문학이 모국어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림도 시각적 공감대를 이루려면 자신들의 삶의 근거에서 나오는 구체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생활사 자료 연구가 제대로 안 되어있어서 그림 그리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그런 자료가 없다 보니 우리 그림들이 세부 묘사에 약할 수밖에 없고, 세부 묘사가 약한 점은 결국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약점으로 작용하게 돼요.”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선생님의 민화 사랑이 각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민화가 자연주의와 표현주의를 담고 있다고 보며, 민화의 발상이 자유로운 까닭 역시 그리는 이가 자신이 아는 세계를 그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선생님은 아이들의 그림과 같은 것이 민화라고 했지요. 그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민화의 힘, 아이들 그림의 힘인 진정성 혹은 진실성이 아닐까요?
추석 풍속도, 『솔이의 추석 이야기』
얼마 전이 설이었습니다. 짧은 명절이 되면 우리는 너나없이 고향 가는 길이 얼마나 멀까 염려합니다. 하지만 명절은 들뜬 마음으로 고향 가는 길을 재촉하고 식구들과의 만남과 차례는 금세 지나가 버리고 말지요. 현대판 추석의 풍속도를 담은
『솔이의 추석 이야기』는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된 김억배 선생님의 딸 한솔이가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 속의 추석 풍속은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차례음식 준비하기와 성묘 등의 모습 이외에도 귀향길의 고단함을 고속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의 행렬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이의 추석 이야기』의 글은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간결합니다.
이억배 선생님은 고구려 시대 고분 벽화인 ‘대행렬도’나 조선시대의 ‘능행도’등의 행렬도 그림에서 회화적 모티브를 얻어 긴 도화지 위에 추석이면 으레 우리가 하는 다양한 행사들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서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석의 시작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구태여 말하지 않고도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볼거리가 그림 속에 어우러져 있는 것입니다.
왼쪽의 그림들을 보세요. 길에 늘어선 차량의 행렬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행복한 가족을 태운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에 거의 정차하듯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운데 그림에서는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님들께 큰 절을 올리고 있는 솔이네 가족의 모습을 생활 도감의 일부처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에서는 조선시대의 ‘능행도’의 행렬처럼 솔이네 가족이 한 줄로 늘어서서 성묘를 드리러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석 명절 동안 솔이네 가족처럼 고향을 찾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옵니다. 그림책을 읽는 독자들은 일부러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을 통해서 작가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그 속내를 알 수 있기에, 이억배 선생님은 그저 옛 그림의 방식대로 좌우로 길게 종이를 써서 우리의 추석 명절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능행도’의 형태에 잘 녹여낸, 내용과 형식이 서로 상보적인 작품으로서 다시 한 번 이 그림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만두를 왜 그렇게 많이 만드느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냥 가족이 먹는 데 충분할 만큼만 만들면 될 텐데 손 큰 할머니는 온 동네 동물들까지 모두 나누어 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만두를 몇 날 몇 밤을 새워가며 빚고 있으니… 사서 고생이죠? 하지만 비단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 등장하는 할머니만이 많은 만두를 빚는 것은 아니랍니다. 저희 집도 큰집이라 설날 명절이 되면 작은집에서 식구들과 친척들이 오시거든요. 그럴 때면 한 상 가득은 아니더라도 제법 푸짐하게 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에 저희 엄마와 저는 설날 며칠 전부터 여러 번 장을 봐오고 한 광주리 떡을 해오고 몇백 개의 만두를 빚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서로 예쁜 만두를 빚으려고 호기심에 가득 차서 만두소 주변에 모여 있던 우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도 저렇게 많이 만두소가 남았어?”하고 한숨짓곤 했지요. 그렇게 저희 집 설날 맞이는 분주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보다 보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며, 만두 빚다가 지칠 때마다 할머니께서 “만두를 예쁘게 빚어야지 예쁜 딸 낳는다”고 하셨던 말이 떠올라 씁쓸해집니다. 왜냐고요? 아직 아이는커녕 이 마녀는 결혼도 못해봤으니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숲 속에서 동물들과 어울려 사는 손 큰 할머니가 설날을 앞두고 동물들과 같이 만두를 빚는 과정을 그린 것이니까요. 이 할머니는 손이 커서 무엇이든 많이 하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할머니가 준비해둔 만두소가 언덕만큼 솟은 것을 보고 놀라지만 손 큰 할머니가 으름장을 놓아 결국 빙 둘러앉아 만두를 빚습니다. 아무리 해도 만두소가 줄지 않자 동물들은 점점 지루해하게 되고, 이 때 손 큰 할머니는 재치를 발휘해 아주 커다란 만두피를 빚어 세상에서 제일 큰 만두를 만들죠. 마침내 운동장만큼 커다란 가마솥에 만두를 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먹으면서 숲 속 동물들과 손 큰 할머니는 새해를 맞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단순한 이야기가 이억배 선생님의 그림 속에서 장난스러우면서도 쾌활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물들을 의인화한 모습은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고, 깔끔하고 경쾌한 선, 세심한 잔 붓질 등은 시종일관 이야기에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아이들은 서구식 먹을거리에 길들여져 우리 전통 음식조차 제대로 맛보려 하지 않는데요, 토속적인 음식을 소재로 하여 협동 정신을 일깨워준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입니다. 그런 덕분에 이억배 선생님은 이 책으로 1998년 '어린이문화대상'을 수상했고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옛날 깊은 산골에 늙도록 자식이 없던 한 아주머니는 밤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신령님께 빌었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들 하나만 비나이다.” 어느 날 꿈에서 신령님의 계시를 받은 아주머니는 잉어를 구해 먹게 되는데 세 마리를 먹으라고 한 신령님의 말씀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날쌘 고양이가 마지막 한 마리의 반쪽을 한입에 날름 먹어버린 것이죠. 얼마 뒤 아주머니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막내 반쪽이는 눈도 귀도 팔도 다리도 하나씩밖에 없었답니다. 반쪽이는 그런 자신의 겉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온전한 대접도 받지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자신의 두 형을 몰래 뒤따라 나섰지만 자신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형들은 반쪽이를 바위에 묶어버리지요. 그러나 힘이 장사인 반쪽이는 밧줄을 풀고 또 다시 형들을 쫓아가다가 숲 속에서 호랑이 떼를 만나게 됩니다. 호랑이 떼와 싸워 이긴 반쪽이는 호랑이 가죽을 등에 지고 가다가 호랑이 가죽을 탐내는 영감님을 만나게 되는데….
줄거리는 이 정도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반쪽이의 해피 엔딩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는데요, 사실 반쪽이는 가장 모자란 자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한 가지쯤은 가지고 있는 약점을 인격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원근법이 무시된 우리 나라 민화의 특징을 잘 살려서 구수한 옛 이야기를 편안한 느낌으로 그린
『반쪽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옛이야기의 짜임과 해학성을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쪽이가 형들에게 당하는 세 번의 위기, 호랑이 가죽을 갖기 위해 벌이는 세 번의 장기 내기, 영감의 집에서 나오기까지의 삼일 밤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삼세판’, 즉 세 번의 반복은 독자들에게 흥미와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이 그림책은 2004년 ‘한국의 책’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년 프랑크푸르크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에 선정되어 독일어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반세기 전 우리 동화, 새 옷 입었네!
‘우화’하면 흔히 이솝 우화를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빼어난 우화가 있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어린이’지 1949년 5월호에 실린 아동문학가 현동염의
『모기와 황소』가 바로 그것입니다. 1949년 5월이면 벌써 반세기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 속에 담긴 풍자 정신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감각으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놀고먹으면서 남의 피나 빨아먹는 모기와 파리는 늘 열심히 일하는 황소가 미련스러운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순하고 어리석은 녀석들을 등쳐먹는 데 이력이 난 모기는 황소 피쯤 빨아먹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파리 앞에서 으스댑니다. 그러나 황소는 모기의 건방진 태도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꼬리를 휘둘러 한 방에 때려눕히지요. 결국 모기는 끽 소리도 못하고 죽게 되고 이 모습을 본 파리는 그 자리에서 줄행랑을 칩니다. 그러면서 “그 놈이 그처럼 남을 깔보고 남을 속이고 남의 피를 마음껏 탐내더니 그에 소 벼락을 맞고 말았구나”라는 말을 하지요. 이 그림책에서는 황소와 모기, 파리로 내세워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한판 힘겨루기가 오롯이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이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교훈을 담고 있는 이야기는 구수한 입말체로 전개되어 밤마다 어른과 아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기와 황소』를 기획했던 출판사 길벗 어린이의 고대영 씨의 후일담에 따르면, 이 작품을 의뢰받은 이억배 선생님은 “작품은 마음에 들었지만, 주요한 캐릭터인 모기, 파리, 황소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서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고 합니다. 이억배 선생님은 작품 구성을 아주 꼼꼼하게 하는 섬세한 작가로 소문이 나있는데, 흔히 손톱스케치라는 작은 그림으로 전체의 흐름을 잡아보고 기법을 정하면서 캐릭터를 구상한다고 합니다. 사실적인 표현으로 정감이 가는 황소를 그리고, 파리와 모기를 약간 과장되게 세밀화로 그리기로 결정한 이억배 선생님은 1년 동안 작품에 매달려
『모기와 황소』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렇게 정교하고 오랜 시간을 들인 노력 끝에 나온 작품이라서인지, 책장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책장을 펼쳐보고 싶어집니다. 털 한 올 한 올까지 셀 수 있을 듯 황소의 털이 갖는 촉감까지 표현한 감각은 정말 압권입니다 또한 착하고 우직한 소 눈망울은 너무나도 맑고 예뻐서 진짜 외양간에서 ‘음메’ 하고 우는 소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마녀도 ‘개평’, ‘궁통’, ‘본숭민숭’, ‘두우치다’ 등의 예스러운 우리말 표현에 당황했습니다. 물론 반세기 전에 쓰인 현동염 선생님의 원작 동화책 그대로의 맛을 살리고 싶은 편집자의 의도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책의 뒤표지에 예스러운 단어들에 대한 풀이를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어쨌거나 아이들이 “옛날이야기 해줘요”라고 조를 때 함께 펼쳐보면서 구수한 입담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어른들로부터 옛이야기를 듣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슴이 뭉클해질 것 같네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빠
이야기만 보자면 닭이 주인공으로 꼭 등장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억배 선생님은 멋진 벼슬을 가진 힘센 수탉을 통해 한 때의 젊고 멋진 가장이 다음 세대에게 배턴을 넘겨주면서 힘없고 기운이 빠진 서글픈 모습을 의인화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억배 선생님은 마치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와 같은 줄거리를 토종 수탉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전국 방방곡곡의 장이란 장은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고 하니,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멋진 그림책 작가의 열정에 의해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찬은 아닐 듯 합니다.
인생이란 것은 참으로 녹록하지 않은 것이죠. 젊은 시절에는 아름다운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힘자랑 하던 멋쟁이 수탉이 깃털이 하나 둘씩 빠지는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어 거울을 애써 외면할 때가 되면, 어느새 자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강력한 경쟁자에 밀려 2위의 자리로 뒤처지게 됩니다. 바로 인생의 황혼기가 찾아온 것이지요. 그런데 이때 예전처럼 힘이 센 수탉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가족들입니다. 그림책 속에서 수탉의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보세요. 당신 손자, 손녀들이 얼마나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지…”, “당신 아들들은 또 얼마나 힘이 센데요. 물론 당신 한창때보다야 못하지만요.” 이런 칭찬과 사랑이야말로 푸석했던 수탉의 깃털에 다시 윤기가 자르르 돌게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그림책 속에서 자신보다 강한 수탉에 밀리고 실의에 빠져 술을 마시는 장면이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이 그림책은 구석구석에 해학이 숨겨져 있으니 멋들어지게 그려진 수탉의 모습을 바라보는 황홀경에서 빠져나오게 된 후에는 시선이 자연스레 곳곳에 숨어있는 우스운 묘사를 찾아 책장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게 되네요. 코끝에 안경을 걸친 할머니 닭, 얻어맞아 한 눈에 피멍이 든 채로 기둥에 나자빠져 있는 병아리, 책가방을 팽개쳐 놓고 뛰어노는 손녀 닭, 질투어린 시선으로 연적을 경계하는 젊은 암탉들…. 그냥 아무 쪽이나 펼쳐놓고 찬찬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키득키득 웃음 짓게 됩니다.
이 작품을 두고 그림책 작가 류재수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애정 어린 평을 한 바 있습니다.
“한 장의 그림에서 부드러움과 단단한 느낌을 동시에 담는다는 것은 언뜻 상치되는 듯하다. 하지만 간혹 어떤 그림에서는 이 두 감흥이 교묘하게 하나로 엮어지는데,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의 그림이 그 중에 하나다. 이 책의 그림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다듬어져 있으며 매우 단단한 화면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엄숙한 분위기의 화면에서조차도 유머가 곳곳에 보석처럼 감추어져 있어, 독자를 은근히 미소 짓게 하는 부드러움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는 ‘재미’가 있다. (중략) 먼 배경의 나무 잎사귀 하나 하나에도 애정이 배어 있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을 보니 저만치 혼자서 피는 꽃들 중에 한 송이를 보는 것 같다.”
이런 평은 선의의 경쟁자로서 그림책 작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광고의 노랫말처럼 이 책을 아이와 함께 보면서 우리 남편, 우리 아빠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행복하신 거예요. 이 마녀는요, 그렇게 해주고 싶어도… 에구! 처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