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만들어가세요? -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 &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그와 그녀가 보낸 하루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아닙니다. 정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그런 날이지요.
1.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주인공은 남자입니다. 그는 한 여자를 짝사랑합니다. 하지만 ‘짝사랑’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는 그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거든요. 비록 지금은 옆에 없지만, 돌아오기로 약속을 했기에 여자는 그 남자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여자를 지켜봐야 하는 남자의 심정이 어떨까요? 두말할 나위 없겠지요.
2.
전경린의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의 주인공은 여자입니다. 그녀는 유부녀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마을에 사는 남자입니다. 문제가 생길 것은 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자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불륜이라고 하겠지요. 여자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도 함부로 애정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남자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는데, 몸은 돌아서야 합니다. 이런 심정 어떨까요? 이것 역시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을 겁니다.
3.
여기서 엉뚱한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하루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4.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기회가 옵니다. 여자가 사랑하던 남자, 모스크바로 떠난 그 남자가 돌아올 날이 됐음에도 소식이 묘연한 겁니다. 여자는 두렵습니다. 또한 절망합니다. 비탄에 빠졌다는 말을 써도 좋습니다. 이때 남자가 나선 겁니다. 남자는 고백을 하지요.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5.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러브호텔에 들어간다는 건, 법이 문제 삼을 수 있는 겁니다. 여자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몸은 떨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자를 만납니다. 남자와의 접촉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겠지요. 점점 이상한 소문이 납니다. 위험한 단계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끊을 수 없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만납니다. 위험한 연인의 위험한 사랑, 어떻게 해야 할까요?
6.
엉뚱한 질문을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하루 동안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7.
짝사랑하던 남자의 고백을 여자는 받아들입니다. 내친김에 남자는 같이 살자는 말까지 합니다. 여자는 그것도 좋다고 합니다. 이제 이들은 커플이 됩니다. 함께 살 것을 약속하고 산책을 나선 커플이지요. 남자에게 이 날만큼은 어느 날보다 기쁠 것입니다. 가쿠타 미츠요의 『인생 베스트 텐』 식으로 말하자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뒤돌아 생각해봐도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하루로 손꼽힐 겁니다.
8.
불륜을 저지르던 여자는 더 이상 돌아갈 데가 없습니다. 이미 끝장난 것입니다. 더욱이 남자 또한 짜증을 냅니다. 남자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자는 남자를 찾습니다. 이미 여자에게 다른 것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남자를 만나는 것, 두려움 속에서도 남자를 만나려고 하는 열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지요.
9.
같이 살기를 약속하고 산책을 나선 남자는 마냥 행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여자가 기다리던 남자가 나타난 겁니다. 바로 눈앞에 말입니다. 그러자 여자는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뛰어갑니다. 남겨진 남자, 어떨까요? 낙담? 맞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데 남자는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에게 외치지요. “일생을 살면서 이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라고요.
10.
여자의 파멸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파멸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여자는 평화롭습니다. 그리곤 세상을 향해 이렇게 인사합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구요? 글쎄요. 어쩌면 ?건 아주 평범한 일이죠. 문제는 그것이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웠다는 것이에요. 내가 나를 화약처럼 불붙여 상상력의 끝까지 달려갔다는 것이겠지요…….’
11.
누군가에게 하루는 지루해서 미칠 것 같은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발칙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오늘 네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하루다”라고 말하던 사람에게 차라리 어제 죽었기를 바란다, 라고 할지도 모를 그런 하루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그 하루가 어느 날보다 소중한 하루가 됩니다. 아주 잠깐, 사랑했던 남자에게 그렇겠지요. 또한 불륜을 했던 여자에게도 그럴 겁니다. 여자에게 그 하루들은 그녀 속에 있던 감정을 깨우는 준비단계였습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말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폭발해냈고요.
그와 그녀가 보낸 하루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아닙니다. 정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그런 날이지요.
12.
마지막으로 엉뚱한 질문을 하나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하루를 만들고 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