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향수 쓰세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 퍼시 캉프의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
먼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로 입지를 굳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주 기묘한 살인자 ‘그루누이’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뛰어난 향수 제조업자입니다.
“어떤 향수 쓰세요?”라고 물으면 참 다양한 이름들이 나옵니다. 신화적인 향기가 가득한 상표부터 한 번 들어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이름의 상표까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향수들은 옆으로 치워보도록 하죠. 여기서 물어보는 향수는 그런 향수가 아니니까요. 네, 소설 속의 향수들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두 작품을 살펴볼까요? 먼저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스테디셀러로 입지를 굳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주 기묘한 살인자 ‘그루누이’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뛰어난 향수 제조업자입니다. 워낙에 독특한 재주를 지녔기 때문이지요. 냄새를 한 번만 맡아도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명석함까지 갖고 있습니다. 그루누이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의 향수업자들은 모두 짐을 싸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루누이는 돈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냄새’입니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향수를 만드는 데만 정성을 쏟습니다. 그에게는 소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살인을 하는 이유이기도 한 그것은 바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향수라? 얼토당토하지 않은 소리 같지만, 소설 속의 그루누이는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공개하지요. 그것도 살인죄로 붙잡혀서 처형 받아야 하는 순간에 말입니다. 향수를 높이 올린 순간, 그루누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위대한 존재가 됩니다. 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의 난리는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 장면은 『향수』의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손꼽힐 정도로 ‘전율’적이지요.
그런데 그루누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열광을 하고, 심지어 그를 신격화해도 만족스럽지가 않은 겁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눈을 돌려 향수를 다룬 다른 작품을 하나 권해볼게요. 마찬가지로 향수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전혀 다른 빛깔의 여운을 남기는 퍼시 캉프의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입니다.
작품의 주인공 엠므 씨는 한 가지 상품, 즉 머스크 향수만 사용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문득 이상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쓰던 향수가 맞지만, 어제 쓰던 향수와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안 거지요.
엠므 씨는 초조해집니다. 그가 그 향수를 고집하는 건, 그것이 자신의 남성성을 최대한 부각시켜주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그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엠므 씨는 그 향수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특히 처음 보는 여자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거든요. 물론 향수가 없다면? 이보다 더 초라해질 수는 없습니다. 만날 보던 여자라 할지라도 말을 더듬을지도 모릅니다.
엠므 씨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향수가 변한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알아내지요. 제조 회사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혹은 도덕적인 문제 등이 있어서 제조성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론 엠므 씨가 전에 사용하던 그 향수는 더 이상 제작되지 않는다는 사실도요.
여기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향수로 바꾼다? 그럴 수도 있지만, 엠므 씨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엠므 씨에는 그 향수가 곧 삶의 자신감이자 자존심이었거든요. 그렇게 쉽게 바꿀 만한 것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엠므 씨는 어떻게 하는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계산합니다. 더불어 하루에 향수를 얼마나 사용하는지 계산합니다. 그리곤 수소문합니다. 이전에 그 향수를 구입해뒀던 사람들을 찾아 동네를 벗어나 대도시로 떠납니다. 또한 대도시를 지나 전국방방 곳곳으로 향합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전 세계로 무대를 넓힙니다. 그야말로 ‘향수 찾아 삼만 리’지요.
여기서, 작품의 질을 떠나 향수에 대한 그루누이와 엠므 씨의 집착을 비교해볼까요? 교차점은 이들이 향수에 집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 다른 향기가 퍼져 나오지요? 그루누이 같은 경우는 안쓰럽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향수란 ‘자기애’의 결핍을 감추려는 발버둥에 불과했거든요.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그루누이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알고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남을 조종할 수 있는 향수도 만들 수 있지만, 자신의 냄새는 모르거든요.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발버둥을 쳤던 것인데 어째 좀 씁쓸하지 않나요? 그루누이의 초라한 뒷모습에서 자기애의 결핍에 절망하고 마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남자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엠므 씨는 다르지요. 당당합니다. 그루누이에 비하면 향수의 ‘향’자도 모르지만, 그래도 엠므 씨는 그루누이가 가장 부러워할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그 방법이란 것을 두고 남들은 ‘겨우 향수?’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그 정도까지 어떤 것에 열정을 쏟고 그것에서 삶의 환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잖아요?
여기서 질문을 다시 던져볼게요. 어떤 향수 쓰세요? ‘자신’은 없고 남의 것들로 뒤범벅해서 만든 그루누이의 향수? 혹은 남들이 뭐라던 내 삶을 활력 있게 해주는 엠므 씨의 향수? 책들과 함께 천천히 살펴보세요. 어떤 향수를 쓰는지는,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