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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노처녀를 놔줘! - 박주영의『백수생활백서』 &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그러나 아직 변하지 않은 몇 가지가 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노처녀라는 세 글자다. 노처녀! 참으로 의미심장한 파생 음을 만드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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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독신주의자, 자식 없이 결혼 생활하는 커플도 많다고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친구가 평생 싱글로 살겠다고 선언했다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런다면 ‘얘도 유행타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하기는 변했다.

그러나 아직 변하지 않은 몇 가지가 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노처녀라는 세 글자다. 노처녀! 참으로 의미심장한 파생 음을 만드는 단어다. 먼저 예전의 노처녀에 대한 인식을 보자.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린신부』의 여선생이 아닐까 싶은데, 그것에 따르면 노처녀는 히스테리컬하고 신경과민한 사람, 또한 남자를 좋아한 까닭에 싱그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발랄함으로 무장한 젊은 여주인공들을 질투한 끝에 말도 안 되는 음모를 만들다가 지독하게 망신당하는 사람들이다.

이것도 변하기는 변했다. ‘삼순이’ 같은 여인이 그 현장을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잠깐! 겉포장 말고 안까지 살펴봐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삼순이의 경우, 노처녀가 히스테리컬하지 않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만 결국에는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빠진다. 방법만 다를 뿐, 결론은 여전한 셈.

그 여자가 당당했고 잘 살아서 결국 남자 잘 만났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결혼이라는 것은 노처녀가 ‘노처녀’가 아닌 것이 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삼순이의 행복이 그쪽으로 향한 건 그래서 알싸하기보다는 찝찝하다. 알고 보면 남자 하나 사이에 두고 생기발랄한 여자와 싸움질하다가 결혼했다는 뭐 그런 것이 아닌가!

노처녀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처녀를 보는 관점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노처녀는 여전히 ‘그런’ 노처녀다. 그런데 여기 두 명의 여 작가가 그 관점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박주영과 정이현이 그 주인공. 그녀들은 『백수생활백서』『달콤한 나의 도시』로, 노처녀에 대한 관점이 변했느니 안 변했느니 하며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찬물 한 바가지를 냅다 들이붓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래서 어쩌라고?”

『백수생활백서』의 서연은 노처녀에 백수다. 노처녀에 백수! 정이현 소설의 말에 따르면 이건 ‘남자에 목맨’ 상태거나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서연에게만큼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결코 해당되지 않는다. 서연은 자발적인 백수이며 또한 자발(?)적인 노처녀다. 왜 그런가? 그녀는 책을 보기 때문이다. 일을 하기 싫은 이유? 책을 보기 위해서다. 결혼 안하는 이유, 아니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은 이유? 그것도 책을 보기 위해서다.

서연은 책을 보고 싶어 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책값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는 것과 최소한의 대인 관계 때문에 시간 뺏기는 걸 제외한다면 그녀는 책만 본다. 백수에 노처녀라는 사실이 정말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 그럼 그녀는 어떻게 하느냐고? 미래설립이 당면과제로 떠오른 듯 모두가 미래를 대비하자고 하는 이때에 당연히 그녀의 미래가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그녀의 미래는 어제와 똑같아 보인다. 책을 읽는 것뿐이다.

뭐 이런 사람이 있나?, 하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 표현하려면 말을 바꿔야 한다. 뭐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 있나?, 라고. 그렇다. 서연은 행복하다. 남들처럼 큰 돈 벌고 성공하겠다는 그런 욕심이 없기에, 특히 노처녀니까 결혼해야한다는 둥 하는 선입견들과 벽을 쌓고 살기에 행복하다. 이렇게 평화로운 행복함을 가슴 속에 꾹꾹 담아놓은 주인공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

그러나 『달콤한 나의 도시』의 노처녀 오은수 대리는 좀 다르다. 행복? 꿈 깨라고 말하는 그녀는 조급하다. 고릴라라고 불렀던 옛 남자친구가 결혼을 하고 노처녀 그룹을 유지해오던 친구 하나는 갑작스럽게 결혼한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이때 그녀가 하는 생각은 오직 하나다. ‘난 어쩌지?’하는 것.

은수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사항이 있다. 첫 번째, 영화감독을 꿈꾸는, 그야말로 꿈 먹고 사는 태오. 웃음이 맑고 착하다는 게 장점인데 나이가 한참 어리다는 게 단점이다. 같이 있으면 막내고모 소리 들어야 할 판. 두 번째는 안정된 직장에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영수. 장점이라면 무난하다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또 단점이 된다.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처럼 별다른 특징이 없다.

세 번째는 단짝친구의 친척이자 편한 친구인 유준. 장점은 서로 비슷하다는 것, 그야말로 환상궁합이 될 것만 같다. 단점은 그게 결혼생활에서도 유지될지 모를 뿐더러 결혼한 후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야말로 은수는 ‘고민하는 은수 씨’가 될 수밖에 없다. 이걸 하자니 저게 걸리고, 저걸 하자니 이게 걸리는, 행복과는 거리가 좀 먼 곳에 있는 고민이다.

자, 은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달콤한 나의 도시』는 휘몰아치는 파도마냥 이랬다저랬다 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진다. 세상이 조용해진 건 아니다. 은수의 마음속이 조용해진다. 왜 그럴까? 굳이 선택해야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노처녀라고 해서 꼭 지금 당장 결혼해야 하는 건가? 은수는 아니라고 믿는다. 결혼이 그 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유레카를 외친 철학자만큼은 아니지만 은수는 조용히 그걸 깨닫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웃는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수는 어찌 될 것인가? 32살의 노처녀가 내일이면 33살이고, 그 다음에는 더 심각해질 텐데? 묻지 마시라. 그건 은수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기야 평생 노처녀면 어떤가? 은수가 만족하며 살면 그만 아니겠는가. 『백수생활백서』의 서연도 마찬가지. 누구보다 행복한 그녀, 책을 믿는다는 그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한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조용히 나가 있자. 그녀가 다 알아서 할 것이고 남은 자들은 즐거움이 퐁당퐁당 솟아오르는 그녀의 삶을 듣고 박수나 쳐주면 될 일이다.

노처녀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본다. 알싸한 향기는 없다. 텁텁하다. 그런데 뭐지? 텁텁한 것이 노처녀인가, 아니면 그녀를 두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사람인가? 이제 그녀들을 놔주자. 그녀들이 노처녀든 아줌마든, 중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 언니든 뭐든 간에 알아서 잘 살고 있다. 그러니 그녀들 옷을 붙잡고 “언제 결혼할래?”하는 흰소리 그만두고 그녀들 가시는 길에 꽃이나 뿌려주자. 발병 안 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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