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여행자들에게 권하는 책 - 박준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 최정규의 『친절한 여행책』
여행, 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다. ‘어디든 좋다. 그저 떠나보자’라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곧바로 생기는 평범한 걱정들. 돈은 어쩌지? 가서 즐거울까? 몸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며칠 동안 종일 비가 내린다. 빗소리, 상쾌하기는커녕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습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일상에 재를 뿌리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은 지쳐간다.
아주 오랜만에 햇볕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가울 법도 한데 의외로 무미건조하다. 설렘도, 감동도 없다. 그제야 지쳐가는 것이 날씨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렇다면 뭘까? 이 지긋지긋한 일상 때문일까?
여행, 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다. ‘어디든 좋다. 그저 떠나보자’라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곧바로 생기는 평범한 걱정들. 돈은 어쩌지? 가서 즐거울까? 몸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며칠 떠나있는 동안 놓치는 것들은 어떡하지? 영어 단어는? 직장 상사 눈치는?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가슴을 꽉 메워올 때 몸은 다시 축 처진다. 여행은 무슨 여행인가, 하는 체념과 함께.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로망을 꾸역꾸역 참으며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여행 비타민’이다. 이 책은 어째서 힘을 주는가? 여행 책들 사이에서 흔히 ‘염장을 지른다’고 불리는 유혹의 힘, 그것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유혹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어떻게 하면 여행을 할 수 있고, 어떤 경로를 통하면 싸게 갈 수 있는지와 같은 실용적인 것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난 여행 왔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계속된다. 요즘 여행 책에 비하면 구성이 정말 조촐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도 평범하다. 그래서 ‘별것 아닌 것’ 같다. 무슨 유혹이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평범한 이야기가 용기를 주기 때문일까? 나도 할 수 있다는? 그렇다.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이럴지도 몰라, 저럴지도 몰라 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앞서 길을 떠난 똑같은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아주 쉽고, 강렬하게.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확한 안목을 갖추고 있다. 여행을 포장하지 않았다. 여행 한번 한다고 거창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삶의 의의를 얻을 수 있다고, 갈팡질팡하던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말한다. “떠나는 것은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라 돌아와서 일상을 더 잘 살기 위해서”라고. 목을 뻣뻣이 세우지 않고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여행 한번 갈까 말까 고민하던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을 채워주는 여행의 로망, 그것이 의문점들을 대신해 가슴 속을 꽉 메워준다.
자, 그렇다면 이제 실전에 돌입해보자. 떠날 준비를 해보자는 것이다. 일단 떠오르는 것은 책에서 말한 카오산 로드? 그것도 좋다.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박준의 말처럼 첫 테이프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뿔싸! 울적한 마음을 접고 여유 시간이 있는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를 가야할지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울 정도로 정말 어디가 어딘지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보지만 인터넷의 정보들은 소위 ‘알바’들의 것이 많은지라 믿기도 어렵다. 다시 막막해진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럴 때는 친절한 도움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것을 찾아야 한다. 특히 혈액형 불문하고 이럴 때만 소심한 마음이 부쩍 커버리는 사람이라면 그 친절도가 과분할수록 좋은데 그런 이들에게 적당한 것이 있다. 출발에서 도착시간까지 예측해주는 최정규의 『친절한 여행책』이다.
여행 플래너 최정규, 그가 이 책을 만든 동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친구? 친지들에게 1박 2일 혹은 2박 3일 코스의 여행지를 구성하는 여행 플랜을 짜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 만큼 실용적인 내용이 알차다. 매월마다, 전국 방방 곳곳의 ‘멋진 곳’들을 추천해줄 뿐만 아니라 맛집, 숙소까지도 알려준다. 게다가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있으니 이만하면 가히 국내 여행 GPS라고 할만하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이 누군가 정해주는 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낭만적인 여행가들처럼 발길 가는 대로 떠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친절한 여행책』은 여행의 활로를 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책에서 소개한 곳만 가게 만들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처음부터 누가 그렇게 발길을 내딛을 수 있겠는가? 집, 동네, 직장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터. 『친절한 여행책』은 여행 초보자들이 정말 떠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도우미로 여기면 좋다. 실제로 그런 면에서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그런데 떠날 것이 두려운가?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두려움을 씻고 여행의 로망을 훔쳐보자. 그렇게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가? 실용적인 면을 극대화한 『친절한 여행책』으로 첫 발을 떼 보자. 그렇게 한다면 여행의 로망, 그것은 가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몸 곳곳에 스며들리라. 물론!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더 잘 살 것이라는 짜릿한 예감이 찌르르 울리는 것도 느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