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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재밌게 보기 ② - 소설의 숨겨진 맛, 정치성 찾기 :『스타십 트루퍼스』 & 『영원한 전쟁』

소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소설이야말로 정치성이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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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반지의 제왕>이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하여 소란이 일었다. 소란의 핵심은 간단했다. 백인만 돋보이게 그렸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까 아니면 과대망상일까?

어떤 ‘창조물’이든 현실의 영향을 받는다. 어쩔 수 없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TV를 통해 뉴스를 보고 듣는 인간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창조물에는 인간의 의식, 즉 ‘정치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녹아들어간다.

소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소설이야말로 정치성이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는 공간이다. 허구, 비유, 상징 등 어마어마한 무기들이 가득 탑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볼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야 정치성을 찾아낼 수 있고 그것으로 소설의 ‘숨겨진 맛’을 찾을 수 있다.

머리 아파서 싫다고? 글쎄, 그럴 경우의 미래를 『스타십 트루퍼스』『영원한 전쟁』을 통해 상상해보도록 하자.

『스타십 트루퍼스』는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또한 TV에서도 자주 방영해준 단골 중에 단골인 만큼 웬만한 사람은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글을 보고서야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영화로서 꽤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유명세는 저자가 영어권 SF의 3대 거장으로 알려진 로버트 하인라인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전쟁을 지지한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작품이 전쟁을 지지한다? 그렇다. 이 작품은 정말 놀랍게도 전쟁을 찬양한다. 물론 ‘필요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생명이나 자유, 행복 추구’를 위해서는 전쟁에서 이겨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국민이 기꺼이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에 관해 말하자면, 그 위대한 문서에 서명했던 영웅들은 자기들 자신의 목숨으로 그 자유를 살 것을 서약했던 것이다. 자유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애국자의 피에 따라 회복되지 않는 이상, 자유는 언제나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책 속에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격이지 방어가 아니다.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순수한 ‘국방부’가 전쟁에 이긴 예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 것을 깨닫자마자 방어 전술을 채택하라고 절규하는 것이 표준적인 민간인의 반응인 것 같았다. 곧 그들은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싶어한다. 이건 마치 비상 상태가 일어났을 때 여객기의 승객이 조종사의 손에서 조종간을 뺏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책 속에서)

앞의 문장들만 봐도 『스타십 트루퍼스』가 말하는 바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명백한 ‘전쟁 지지’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다 옳은 말처럼 들리는데 무슨 ‘정치성’이냐는 하는 것이다. 사실이다. 앞에 인용한 내용은 문장만 놓고 보면 멋들어지며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자유가 어찌 공짜인가? 방어가 어떻게 승리를 보장하겠는가? 외계의 적들과 싸우는 지구인들의 맹활약이 담긴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이 문장들을 발견하는 것은 짜릿한 전율마저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저 문장들을 ‘베트남 전쟁’의 것으로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짜릿한 전율이 여전할까? 『스타십 트루퍼스』가 유명세를 타게 된 정치적 메시지의 의미는 일종의 ‘폭력 긍정론’이었다. 소설에 따르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격을 해야 하는데 그건 전혀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죄책감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계산까지 나온다. 그러니 당당하게 폭력을 사용하자는 말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물론 베트남 전쟁에서만 유효한 건 아니다. 이라크전은 어떨까? 아니면 미국의 전쟁 가상 국가로 꼽히는 이란, 북한 등이라면? ‘멋지다’라는 감정을 곱씹어볼 수밖에 없다.

조 ?드먼의 『영원한 전쟁』은 어떨까? 이 작품은 『스타십 트루퍼스』와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일단은 작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영원한 전쟁』 역시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지루한 싸움을 다루고 있는데 아무런 바탕 없이 『영원한 전쟁』을 본다면 작품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최대치는 고작 해야 70%에 불과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라면 응당 ‘우주전쟁’이 화끈하게 벌어져야 제 맛인데 『영원한 전쟁』은 전쟁은커녕 전쟁의 무의미함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저지른 일은 학살이었고, 도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일단 놈들의 대공 무기를 파괴한 후에는, 우린 실제적으로는 어떠한 위험에도 처해 있지 않았다. 토오란들은 개인 대 개인 전투에 관해 아무런 개념도 아직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그냥 그들을 몰아붙인 다음 도살했을 뿐이다.」(책 속에서)

「식민화 초기의 피해가 토오란의 책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내놓은 소위 증거라는 것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만큼 빈약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지적한 몇몇 사람들은 무시당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구의 경제는 전쟁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토오란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돈은 얼마든지 처넣을 수 있는 멋진 구멍이 생겼고, 전쟁은 인류를 분열시키는 대신 통합해 주었던 것이다.」(책 속에서)

『영원한 전쟁』은 김빠지는 소리만 한다. 외계 생명체를 상대로 전쟁을 했는데 이유가 고작 돈 때문이었다고 하니 어찌 밋밋하지 않으랴. 하지만 이 작품도 배경을 ‘베트남 전쟁’으로 옮긴다면 어떨까? 또한 그 이후에 계속되는 다른 전쟁은?

강대국, 특히 미국이 전쟁을 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미국 정권과 군수업체의 공생 관계 때문이다. 정권은 전쟁을 벌이면 전쟁 효과로 지지율이 올라가서 좋고 또한 강력한 후원 세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 좋다. 군수업체는 어떤가? 미사일을 계속 소비해줘야 돈을 번다. 현실에서는 이렇듯 전쟁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 『영원한 전쟁』은 알게 모르게 인류와 외계인의 전쟁을 그것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반전 SF 소설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소설의 정치성을 찾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영원한 전쟁』처럼 노골적으로 알려준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정말 교묘한 것들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법! 더욱이 숨겨진 맛을 찾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소설을 봤다고밖에 할 수 없다. 기껏 읽었는데 반쪽이라면 얼마나 황당한가?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두 눈을 부릅뜨자.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특별한 ‘독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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