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통하는 지름길이 여기 있다 - 『한국 속의 세계』 &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조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쇄국정책? 당파싸움? 신분제도? 5백여 년에 걸친 긴 세월동안 이 땅에 존재했던 그 국가는 오늘날 결코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세계를 지향하는 우리는 ‘우리 것’에 약하다. 그리스∙로마신화나 인도신화의 구석구석까지 아는 사람들도 ‘우리 신화’에 대해서는 단군 신화를 겨우 꺼내는가 하면 서양의 고대국가를 동경하면서도 우리 선조들이 세운 국가를 창피해하기도 한다.
왜 이럴까? 세상이 어떻게 창조됐는지를 언급하는 신화들에 ‘빠삭한’ 이들이, 어째서 우리 신화를 통해 창세에 대하여 알아보려 하지 않을까? 아틀란티스처럼 신라 또한 아랍인들의 이상향으로 군림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왜 놀라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무관심하기 때문일 게다. 눈을 세계에 맞추다 보니 우리 것이 미비하고 초라해보였기 때문일 게다.
이제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해와 무관심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정수일의 『한국 속의 세계』와 조현설의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의 도움을 얻는다면 우리가 새로이 보이고 자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것을 시작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조선은 세계와 통하였다. 아주 확실하게!
조선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쇄국정책? 당파싸움? 신분제도? 5백여 년에 걸친 긴 세월동안 이 땅에 존재했던 그 국가는 오늘날 결코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한국 속의 세계』는, 그것이 우리를 낮추려는 식민사관과 자기 우월의식에 빠진 서구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선은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국가였건만 조선을 비방하던 말을 그대로 믿어버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욕했다는 말이다.
『한국 속의 세계』에 그려진 조선은 어떠한가? 책에 따르면, 조선은 결코 닫힌 국가가 아니었다. 전쟁과 같은 상황을 제외하고는, 개국 초부터 줄곧 중국이나 일본과 활발한 문화 교류를 나눴을 뿐 아니라 전부터 계속됐던 이슬람 문명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았다. 비록 후반에는 이데올로기적인 학문 때문에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 세계의 흐름을 비켜난 것은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것은 어디인가? ‘조선식 우주론’으로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을 재해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비판하는 ‘세계성’을 보여준 곳은 어디인가? 바로 조선이다. 비록 과학문명에서 서구에 뒤졌을지언정 조선은 결코 동방의 조용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라는 바다 위에서 좌초되지 않을 만큼 튼튼한 키를 갖고 있던 나라였던 것이다.
신라는 알라의 은혜를 받았다?
『한국 속의 세계』에서 만나는 조선의 모습은 낯설다. 마치 또 다른 조선이 있었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인데 조선만 그런 것이 아니다. 통일왕국 신라도 있다. 삼국시대를 통일했지만 외세의 힘을 빌려 통일한 탓에 언제나 한반도를 세계의 변방으로 몰아냈다고 비난받았던 신라, 천년왕국이라는 꿈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무너져 내려 허약한 국가의 대명사가 된 신라는 어떠한가? 신라도 마찬가지다. 정수일은 신라 또한 세계의 하나였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자료를 보자. 최초로 한국명이 적혔다고 알려진 세계지도보다 4백여 년 빠른 시기에 그려진, 중세 아랍 지리학의 거장 알 이드리시가 그린 지도(1154년)에 눈에 띄는 이름이 나온다. 바로 신라다. 1250년에 쓰인 『여러 나라의 유적과 인류의 소식』이라는 책에서는 신라가 ‘동방의 이상향’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먼 땅에서는 이미 신라를 알고 있었으며, 알라의 은혜를 받았다며 신라를 동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하면 중국의 영향력 아래서 맴돌던 국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신라는 독자적으로 그 문화를 세계에 퍼뜨리고 있었고 로마문화와 같이 다른 문화들까지 받아들여 자신의 문화와 적절하게 혼합하여 소화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강대국이었다. 이 사실들이 정녕 놀랍지 않은가? ‘빛 좋은 개살구’처럼 여겨지던 그 국가가 세계 주요 문명의 이상향으로 군림했다는 사실이.
우리 신화를 알면 우리의 가치관이 보인다!
신화는 민족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그렇기에 ‘이성의 시대’에 접어들수록 신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것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우리 신화에 무지했다.
그렇기에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더욱 빛난다. 책은 세계의 다양한 신화들과 비교해가면서 우리 신화가 지닌 인류 보편성을 찾음과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지역적인 것들을 찾아 이야기해 주는데 그 과정이 어느 하나 소홀한 것이 없다. 덕분에 우리 것이지만 외면했던 우리의 신화들을 오롯이 우리 것으로 껴안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단군에 관한 신화를 시작으로 30가지의 신화들을 가지고 우리 신화에 발을 내딛는다. 이런 경우 가장 쉬운 길은 역시 알려지지 않은, 흥미를 끄는 신화를 찾아 소개하는 것일 텐데 조현설은 과감하게 그것을 거부했다. 조현설은 처음부터 단군이 아닌 웅녀를 신화의 초점으로 삼아 “단군을 낳은 웅녀”, “단군을 낳은 뒤에 종적을 감춘 웅녀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여준다.
그 기색이란 무엇인가?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단순히 신화를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남성을 창조했지만 남성에 갇혀 존재감이 사라진 여성의 목소리를 찾고 있다. 또한, 건국신화처럼 유명한 신화들 대신 각 지역의 작지만 의미 있는 신화들을 찾고 있다.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여 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고신화를 볼 때 어떻게 봐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려는 ‘대담한’ 시도를 한 것인데 조현설의 의도는 적중했다.
그러한 시도 위에서 구성된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신화를 알아가는 재미는 물론이고 신화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방법과 우리의 것을 세계의 것과 비교해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해준다. 한마디로 한국 신화에 흥을 붙이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세계로 통하는 지름길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세계와 통하려고 발버둥쳤다. 세계의 것을 잘 알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서 별의별 수를 다 썼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고수해서는 긍정적인 내일을 만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의 것’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도 모른 채 어찌 우뚝 설 수 있을까?
『한국 속의 세계』는 우리 것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실크로드와 한반도를 잇는 작업까지 보여준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자신감을 되살려주기 위해 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세계와 통하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어떤가? 우리 것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이 책은 우리 신화가 얼마나 ‘멋진 신화’인지를 알려준다. 나아가 신화를 통해 우리의 가치관까지 알려주고 세계의 신화와 비교해가며 ‘신화 즐기기’의 참맛을 알려준다.
언제까지 바깥의 눈에 우리의 눈을 맞출 것인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것에 무관심하고, 우리 것을 비난하는 이때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속의 세계』와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로 변해보자. 그리하여 우리 것에 강해진다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세계와 통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파도에 몸을 맡긴 듯 아주 유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