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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은 꼭 악한가? <브이 포 벤데타>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민족의 영웅'이 단순히 '테러리스트'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지. 존 허트의 반문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테러리즘은 꼭 악한가 ?
<브이 포 벤데타> DVD의 서플먼트에서 '빅 브라더'와 유사한 독재자 서틀러를 연기한 영국 배우 존 허트는 '테러리즘이 꼭 악한 것일까요 ?' 라고 반문하면서 '특정 형태의 전쟁 뿐 아니라 모든 전쟁이 나쁜 것인데, 특정 형태의 전쟁(=테러)만 사라져야 한다고 간주되고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테러'는 현 시기에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안중근과 이봉창, 윤봉길을 당시의 일제는 무엇이라고 불렀겠는가 ?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민족의 영웅'이 단순히 '테러리스트'로 이해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지. 존 허트의 반문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아마도 '테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극히 보기 드문 할리우드 상업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는 3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과 같은) 파시스트 국가가 된 근미래(Near Future)의 영국을 배경으로, 형사 재판소의 폭파로 시작해 국회 의사당의 폭파로 마무리 된다.
<브이 포 벤데타>의 배경이 되는 ‘영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사회지만, 동시에 익숙한 사회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가 할리우드의 고전 영화의 비주얼을 재현하는데 주력했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전체주의 시대의 비주얼을 재현한다. 특히 생체 실험이 이루어지는 수용소의 모습은 <쉰들러 리스트> 등의 '홀로코스트 영화들'에서 묘사되는 나치 시대의 수용소를 연상시킨다. 강제로 삭발 당하는 여자들, 구덩이에 내팽겨쳐지는 알몸의 시체들, 동성애자와 유색 인종 등에 대한 탄압 등 나치가 자행했던 '대학살'의 기호들이 그대로 영화 안에서 차용되고 있는 것.
또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국가의 질서'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서틀러 의장(존허트)의 모습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묘사된 독재자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일례로 연설하는 서틀러의 모습을 담은 한 장면은 레니 리펜슈탈의 그 악명 높은 선전 영화 <의지의 승리>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V는 '정의'나 '공공선(公共善)'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그는 '생체 실험'이라는 '고통'의 산물로 태어났고 그로 인해 사적인 '복수(vendetta)'를 행하는 인물이다. V는 최근 등장한 영웅 캐릭터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는 ‘실체 없는 영웅’이다. 미소를 머금은 17세기 실존 인물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늘 쓰고 있는 그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속내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그는 이비(나탈리 포트만)의 생명을 구해 내지만 동시에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유사한 고문을 가하면서 자신을 이해시키는 괴상한 사랑법을 전수하는 이중적인 인물이며 파시즘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파시스트적인 캐릭터다.(그는 늘 혼자 움직인다) 더욱이 V가 벌이는 일련의 복수들은 모두 파시스트 권력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와 암살같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 개인적인 복수 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자신의 창조자들을 제거하려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같은 존재다.
관객의 입장에서 V는 그다지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아니다. 막강한 신체 능력과 셰익스피어극의 대사들을 인용할 정도의 지성과 갖가지 골동품으로 가득찬 자신만의 갤러리를 지니고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V는 기본적으로 잔혹한 복수자이면서도, 내러티브 상으로 그 고통의 밑바닥을 별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건 늘 가면을 쓰고 있어 그의 내면을 알아내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V만큼이나 그의 후계자/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비(나탈리 포트만)와 V의 궤적을 쫓으며 진실에 접근해 가는 핀치 경감(스티븐 레아)의 내러티브 비중이 높다.
영화 안에서 설명되는 이비의 개인사는 곧 V의 과거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반정부 운동을 벌이는 양친을 모두 권력에 잃었고 (V의 조작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죽음의 고통'을 넘어선 '신념'의 가치를 배운다. 그러니까 이비는 V의 계승자이자 동시에 ‘각성하는 민중’과 같은 캐릭터다.(잔 다르크 !!) 공권력에 의해 짓밟힌 그녀는 V에 의해 구원받음으로서 ‘저항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게 된다. 반면 V와 이비의 반대편에 있는 캐릭터인 핀치는 거꾸로 V의 궤적을 뒤쫓으면서 ‘파시즘 사회의 진실’을 찾아간다.
<매트릭스> 3부작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던 워쇼스키 형제들의 각본답게 <브이 포 벤데타>는 ‘전체주의와 저항’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변주해 나간다. <매트릭스> 시리즈가 ‘가상 사회’라는 주제를 다양한 대중문화의 코드들과 결합시키며 현란한 스타일을 구현해 냈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좀 더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외부 조건들을 건드린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엄숙한 파시즘의 속성을 짚어낸다. 영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두 명의 언론인의 등장이 바로 그렇다. 영화의 초반부에 V의 타겟이 되는 '런던의 목소리' 루이스 프로데로(로저 알렌)는 한 나라(미국)의 패망이 '불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적 선동가다. 짐 호버만의 말대로 라면 노골적인 보수주의 선동가인 '팍스 뉴스(Fox News)'의 빌 오라일리같은 인물인, 그는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썩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와 극단적 국가주의 이념을 주입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게이 언론인 고든(스테픈 프라이)은 근본적으로 V와 같은 반체제적 사고를 지니고 있는(V와 그는 같은 요리를 만들고 둘은 모두 이비를 보호한다) 인물인데, 영화 속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그가 독재자를 풍자하는 쇼를 방송해 처벌당하는 장면은 '파시즘 언론'쟀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브이 포 벤데타>는 <매트릭스>처럼 워쇼스키 형제들이 열어 놓은 포스트 모던 액션 스릴러의 전통을 계승하는 영화다. 이 영화 안에는 무정부주의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수사학 그리고 격렬한 액션 시퀀스들이 차이코프스키, 광대극, 몬테 크리스토 백작, 아나키즘 등의 요소들과 뒤섞여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혼합된 요소들은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과 절묘하게 어울어진,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의 폭파 장면의 카타르시스는 대단하다.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의 영역을 꽤 넓은 수준으로 확장시켰음은 분명하다. <브이 포 벤데타>는 <매트릭스>만큼의 새로움을 담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여러 요소들을 모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워쇼스키 형제들의 각본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화려하게 표현되는 V의 복수극만큼이나 파시즘에 대한 세부 묘사가 중요하고 또 그것이 이 영화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인 것이다. 당연히 이 영화는 '킬링 타임'용으로 때울 수 있는 오락 영화이기도 하고 우리를 둘러 싼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브이 포 벤데타>의 V는 이비의 말 대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영화 안에서 V는 일종의 선동가이지만, 조직을 만들어 내는 혁명가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행동가에 가깝다. 왜 영화의 마지막에 대중들은 모두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등장하겠는가 ?
<브이 포 벤데타>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꽤 영리한 영화다. 만약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주변에 침투되어 있는 파시즘의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면 당신은 꽤 현명한 관객일 것이다. ★★★☆
디스크 1 메뉴 화면
파시즘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어둡게 조율된 이 영화의 영상은 검은색의 표현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DVD의 영상 퀄리티는 최신작 다운 만족감을 주는데, 검은색의 표현이 매끄럽고 인물의 음영 처리가 자연스럽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는 배경의 지글거림이 보이지만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는 이상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통제가 잘 된 영상은 매우 선명하고 날카롭게 느껴진다. ★★★★
영어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 역시 나무랄 곳이 별로 없다. 예상에 비해 액션 시퀀스의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챕터 3과 32의 폭파 장면의 임팩트는 꽤 강렬하다. 물론 최상의 서라운드 효과와 강렬함을 전해주는 것은 V와 다수의 경찰들이 대결하는 챕터 30의 액션 시퀀스로, V가 사용하는 단검의 쇳소리와 경찰들의 기관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격음의 표현이 꽤 우수하다. 또 V의 영국식 악센트가 뚜렷이 들리는 깨끗한 대사음의 표현력과 공간에 따른 음향 디자인의 표현이 우수하다. ★★★★
디스크 2 메뉴 화면
Designing the Near Future (17:15)
비주얼이 중요한 영화답게 서플먼트가 담겨있는 두 번째 디스크의 첫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것이다. <매트릭스> 3부작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았던 오웬 패터슨이과 감독 제임스 맥티그 등이 등장해 영화의 비주얼을 어떻게 현실화하였는지 설명하고 있다.
Remember Remember : Guy Fawkes and the Gunpowder Plot (10:07)
영화에서 주인공 V가 늘 쓰고 다니는 가면의 주인공인 가이 포크스에 대한 메뉴다. 영국의 사학자들이 등장해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고 시도했던 가이 포크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교도였던 가이 포크스는, 엘리자베스 시대를 거쳐 제임스 1세까지 이어진 당시의 영국이 구교도들을 탄압하자 국회 의사당을 폭파하려고 했단다. 우리로서는 생소할(특히 한국은 '세계화'를 주장하면서도, '세계사'는 별로 배우지 않는 나라다...) 가이 포크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 흥미로운 메뉴.
England Prevails : V for Vendetta and the New Wave in Comics (14:40)
영미 만화사에서 차지하는 <브이 포 벤데타>의 의의를 알아볼 수 있는 메뉴다. 영화의 제작자인 조엘 실버의 '원작은 걸작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서플먼트에는 대략적인 미국 만화사와 <브이 포 벤데타>의 탄생 과정, 작품이 지니고 있는 정치 지향성과 이 작품의 시도가 미국 만화들에게 준 영향 등을 다양한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어볼 수 있다.
Freedom! Forever! Making V for Vendetta (15:56)
원작의 각색부터 제작 완료까지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담아낸 메이킹 다큐멘터리다. 특히 반가운 것은 영화 속에서 내내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볼 수 없었던 휴고 위빙이다. 이 영화를 '정치적'이라고 평가하는 감독 및 배우들의 목소리가 특히 이채롭다.
그 외 <브이 포 벤데타>의 두 번째 디스크에는 뮤직 비디오와 극장용 예고편, 사운드트랙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두 장의 디스크에 수록하기에는 전체적인 서플먼트의 양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이 포크스의 역사나 만화사에 있어서의 원작의 위치 등을 설명하는 메뉴들은 매우 반갑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메뉴가 충분치 않아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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